박오현 박사(Ph. D),
은퇴목사 (PCUSA) 겸 명예교수(Appalachian State University)
벌써 새해 2월이 다가왔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니라 절대자의 선물인 머리로 "생각"할 수 있어야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동식물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갈대”로 태어나 지난 한 달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주말에 식당에서 줄지어 자기 차례를 초조한 마음 없이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 세계에서만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특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특히 우리 한국인들은 천천히 기다리기를 죽기보다 매우 싫어하는 특징이 있다는 수치가 통계로 집계되었다 합니다. 손자 녀석들과 함께 저녁에 외식하고 한가한 뒤안길로 돌아오는데 자기 차로 저를 뒤따라온 대학에 재학 중인 큰 외손자가 집에 도착한 후에 하는 말이 “할아버지 속도 위반했었!” (Grandpa was speeding!)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주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제 아내가 자주 핀잔을 주고 있었던 터라 손자의 말을 듣고 “속도 조절을 정말 해야겠구나!” 다짐을 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무의식적으로 기다리기를 싫어하고 빨리 빨리 하려는 습관이 저에게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도 해봤습니다. 다른 예를 들면 책을 읽을 때 글씨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았을 경우에 다른 방에 있는 돋보기 안경을 가지려 가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자주 짜증을 내었을 때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시력이 약하게 되었겠지!” 생각을 고치면 짜증을 내지 않고 돋보기 안경을 가지려 가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적인 변화에 순응하는 마음가짐으로 한 생각만 고치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될 수 있어 과속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정 대신 여유롭게 즐거움으로 주어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봤습니다.
다른 한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허기를 면하기 위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간식이나 칼국수 같은 음식이 그리운 이유 중에 하나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 동안 즐거운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반죽한 밀가루를 밀방망이로 얇게 민 다음 칼로 가늘게 썰어서 만든 국수는 길가 포장 점포에서 먹었던 국수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고, 특히 반죽을 썰고 남은 언저리 부분을 부엌 아궁이에서 구워 먹었던 시절을 머릿속에 그리어 보면 기다림으로 인해 즐거웠던 추억들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더욱이 감주(단술)를 걸러서 조청을 쑤던 시간이 지루했었지만 초가삼간 좁은 부엌에서 어머니와 함께 눋지 않게 계속 젓고 있었던 그런 날들을 생각만 해도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향기가 저절로 풍겨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한국식 나이로는 팔십인 내 나이이지만 “어머니”를 불러보고 싶은 동심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과는 달리 “어머니!”를 불러봐도 대답이 없습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어머니”이지만 “예수님”이란 이름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날 때에 꼭 부르고 싶은 이름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몰라보게 모든 것을 인간 두뇌 대신 인공 두뇌로 “빨리-빨리” 하기를 좋아하고 있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젠 한국으로부터 오는 항공 우편을 기다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모든 일을 편리를 위해 자동적으로 빨리-빨리 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손자가 지적한 대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내 스스로 흐름을 따라 운전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슨 일이든지 극성스럽게 생각 없이 빨리 그리고 극단적인 태도로 하다 보면 “이것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스로 마음속에서 번뜩 떠올라 올 때가 있습니다.
그를 때면 저는 그런 내면적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즉각 “하나님의 소리”로 받아들이면서 무리히지 않는 삶을 시도합니다. 저의 외 손자의 말처럼 속도 위반하지 않고 내면적 소리를 따라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되는 일에 서두를 것 없다는 생각으로 다짐을 하면서 한 해를 여유롭게 보내기로 생각해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삶의 흐름을 따라 안전 운전을 위해 함께 달리고, 또 즐겁게 기다릴 줄 아는 망중한의 여유를 만끽해보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라면서….
절대자의 뜻이면 다음 달 칼럼에서 또 다시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평안하시길 빕니다.
풍암 박 오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