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사스 노예들은 노예해방이 선언되었다는 것을 2년 반 동안 몰라...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알게된 날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노예들이 노예해방선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그날 미국에서는 마지막으로 택사스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1865년 6월 19일 택사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준틴스(Juneteenth)’라는 단어는 기념일인 ‘6월 19일’의 구어체 발음에서 나왔다.
<배경>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월 1일 행정명령 형식으로 서명한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정식으로 발효시켰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는 선언적으로 모든 노예가 해방되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전국 각지에 즉시 알려지는 대신 주에서 주로 서서히 퍼져 나갔다. 이 중요한 소식이 이렇게 느리게 확산된 것은 부분적으로 남북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택사스에 마지막으로 1865년 6월 19일에 전달 선언되었다.
실로 노예해방선언이 발효된지 2년 반 만이다.
이렇게 늦게 전달된 데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첫째, 노예해방선언문을 전달하는 연락병(메신저)이 도중에 피살되었기 때문이라는 설.
둘째, 노예 농장주들이 이 좋은 소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설.
셋째, 미 북부 연방군이 두어 차례 목화 수확시기를 맞추기 위해서 지연시켰다는 설. 당시에는 목화가 주요 산업이었기 때문에 이의 수확에는 많은 노예들이 필요했고, 또 당시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므로 노예를 이용하여 목화 수확기를 마쳐야 했다는 설이다.
어쨋든 1865년 6월 19일, 고든 그레인저 장군과 북부군 군인들이 텍사스 주 갤버스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레인저 장군이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장군령 제3호 형식으로 노예해방선언을 공개적으로 낭독한 것이었다. 장군령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국 [대통령]의 포고에 따라 모든 노예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텍사스 주민들에게 알린다. 이로써 전 소유주와 노예 간에 권리의 절대적인 평등과 재산권이 성립하며 종전에 그들 간에 존재하던 관계는 고용주와 자유로운 노동자 간의 관계가 된다.”
이 발표로 미국에 남아 있던 25만 명의 노예들은 사실상 자유를 찾았다. 그 후 노예의 신분이었던 많은 이들이 텍사스를 떠났다.
이들이 가족을 찾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다른 주들로 옮겨가면서 6월 19일에 있었던 일을 전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노예였던 이들과 그 후손들은 계속해서 6월 19일을 기념했으며 이날의 일을 축하하기 위해 텍사스 주 갤버스턴으로 순례를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1980년 1월 1일에 준틴스는 텍사스 주의 공식 주 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공식적으로 인정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노예해방 기념일이 됐다.
그 이후 준틴스는 미국 전역에서 차츰 지지가 확산되어 오늘날 자기개발과 모든 문화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는 날로 기려지고 있다. 준틴스를 기념하기 위해 퍼레이드, 가족 방문, 바비큐, 역사적 장면의 재연, 교육적인 내용의 연설 등 다양한 행사가 하루, 한 주, 때로는 한 달에 걸쳐 펼쳐진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최근 죠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시위로 다시 한번 흑인인권의 중요성이 부각된 가운데 2020년 6월 17일 준틴스데이를 뉴욕주 공무원 공휴일로 지정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도 6월 19일 기자회견에서 “2021년 6월16일부터 매년 준틴스데이를 뉴욕시 공무원과 공립학교 공식 휴교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남북전쟁은 1861년 4월에 발발했다. 1865년 4월 9일에 남부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항복으로 종료되었다. 링컨은 1865년 4월 15일에 암살되었다. 5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