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중국계 과학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 정부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 학자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면서다. 미국이 안보와 인재 유출 사이 딜레마에 빠졌다.
미 하버드, MIT, 프린스턴 등 유수 대학들이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400여 명의 중국 과학자들이 미국 대학을 떠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월 23일 전했다. 전년 대비 22% 증가한 수치다. 미국을 떠난 학자들 중 수학과 물리 분야(639명)가 가장 많았고 생명과학(478명), 기계ㆍ컴퓨터 공학 분야(298명)가 뒤를 이었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2018년 수상자인 야우싱퉁(丘成桐)은 지난 4월 하버드를 떠나 중국 칭화대(淸華大)로 옮겼다. 그는 지난해 하버드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미 정부는 (구) 소련의 교육 환경을 비판하곤 했는데 그것이 여기서 부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 애리조나 대학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중국계 과학자 10명 중 4명이 미 정부의 감시 대상에 오를 것을 우려해 미국을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년 넘게 미 명문대에서 일해 온 한 중국인 기계공학과 교수는 “미국 내 정치적 분위기가 너무 긴장돼 다른 과학자들과의 협업을 중단했다”며 “연방 당국의 정밀 조사에 노출되기를 원치 않고 노부모와 가까운 홍콩에 있는 대학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계 학자들의 이탈은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18년 미 법무부가 시행한 ‘차이나 이니셔티브’(China
Initiative) 이후 시작됐다.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연구와 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첩보 행위를 적발하기 위한 국가 안보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니셔티브에 포함된 중국인 범죄 활동은 인터넷 해킹, 스파이 활동 등 60개에 육박한다.
팬데믹 기간 미국 내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증가한 것도 이탈을 부추겼다. 미·중관계
악화 속 중국 우한에서 첫 코로나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중국인에 대한 '묻지마 폭행' 사건이 급등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혹감을 표시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대 인공지능 분야의 한 박사는 “당의 정치적 레드라인을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등 학문의 자유가 제한되고 엄격한 코로나 제한 때문에 당장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은 접었다”면서도 “중국에 갈 수는 없지만 미국에 지내는 것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WSJ는 “미국이 혁신을 주도해 온 집단에 대한 설득력이 약화되고 있는 신호”라며 “학자들이 불합리한 정치적, 인종적 환경에 내몰리면서 바이든 정부가 중국 학자들에 협력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일련의 기소 실패와 인종 프로파일링이란 비판에 따라 지난 2월 차이나 이니셔티브에 기반한 추적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 출신 과학자들이 미 기술력의 원천이 돼 왔다”며 “14억 인구의 재능 있는 인재를 우리나라와 단절시키는 것이 목표가 돼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맷 올슨 미 국가 안보 담당 법무차관은 “연구 기관의 무결성과 투명성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 안보의 문제”라면서도 “미국이 전 세계의 가장 우수한 학자들이 올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사진: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2018년 수상자인 야우싱퉁(丘成桐)은 지난 4월 하버드를 떠나 중국
칭화대(淸華大)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 바이두 캡처
지난 1월 차이나 이니셔티브에 따라 미 법무부 조사를 받은 강 첸(Gang Chen) 미 MIT 기계공학부 교수. 그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기각하는 것이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