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네라 스키퍼 편집장 방한 간담회
막달네라 스키퍼 네이처 편집장(가운데)이 10월 4일 한국 서울 프레스센터 목련홀에서 기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안전벨트를 착용한 남녀가 탑승한 차가 사고가 나면 여성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는 안전벨트 임상연구가 남성 상반신 기준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연구 설계 시 이처럼 ‘성별’이 간과되는 사례들이 있다. 이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서도 일어나며 편향된 연구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를 늘리기 위한 지침을 마련해 권장하고 있다. 네이처 최초 여성 편집장인 막달레나 스키퍼 박사는 10월 4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성별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연구들이 여전히 많다”며 “신약 승인 시 임상시험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약물 효과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성은 남성과 생리적인 특성이 다르고 약 투여량, 독성학적 특성 등도 달라 반영 안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군·경찰이 착용하는 방탄조끼도 남성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져 여성에게는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며 ”이런 응용 분야뿐 아니라 세포 단위, 동물 연구, 생리학 연구에서도 성별 특성 반영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여성 연구자들이 과거 대비 늘어났지만 더욱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도 설명했다. 스키퍼 박사는 ”현재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인구 대비 적지만 처음 네이처가 창간될 당시 과학은 남성이 주도했던 분야라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발전이 있다”며 ”하지만 대학, 대학원 등에서 연구하는 주니어는 여성이 많지만 경력이 늘어나는 시니어로 갈수록 남성 비중이 높다. 여성 연구자 참여가 늘어야 성별 특성을 반영한 연구들도 보다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는 지난해 5월 18일 성별 특성을 연구에 반영하도록 하는 편집정책을 발표했다. 성별은 생물학적인 성과 사회적인 성인 젠더를 포괄한다. 이 정책은 성별 특성을 연구에 반영해 연구결과의 정확성, 신뢰성, 우수성을
높이고 남녀노소 모두에서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제품 개발 등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과거 과학계는 ‘유럽’과 ‘남성’ 중심 연구가 이뤄졌다. 현재까지 많이 인용되는 다수의 저명한 논문들이 ‘백인 남성’ 중심 연구들이다. 스키퍼 박사는 ”네이처가 투고 논문에 어떤 선행 연구들을 반영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가급적 다양한 연구들이 노출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여러 국가, 성별의 연구자들이 작성한 논문을 반영하기 위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스키퍼 박사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에서 여성 과학자(앤 륄리에 스웨덴 룬드대 교수)가 수상을 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노벨상은 특정 카테고리로 한정돼 있는 만큼, 해당 분야의 학문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에 대한 인정 또한 중요하다고 보았다. 성별뿐 아니라 연구 분야, 국가, 인종 등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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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는 해당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연구에서의 성 평등’ 가이드라인도 배포하고 있다. 이 지침에 의하면 각 연구는 성과 성별의 의미를 정의하고 타당한 과학적 이유가 없는 한 남녀 모두를 연구 모집단에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성별 간 연구결과 차이를 살피고 중요한 차이가 있을 땐 이를 보고하도록 권유하고 제목과 초록에 ‘남성, 여성 모두에게 효과가 있었다’거나 ‘특정 성별에 특정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식의 성별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요청하고 있다.
스키퍼 박사는 이러한 지침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 ”성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으면 불완전하고 한쪽으로 쏠리는 이해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며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연구자들은 남성이 쓴 논문을 인용하는 빈도가 높고 여성의 기여도가 불충분하게 언급되거나 공동연구자에서 제외되는 등의 상황도 벌어지고 있어 논문 관련 행위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개별 연구자의 책임과 역할이 중요하고 지도 교수, 논문 편집자, 연구 지원기관, 대학 등 연구기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