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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성공 신화 :래리 페이지, 24살에 구글을 만들다

IT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중 한 사람을 들라면 주저없이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를 꼽는다.

 

 

현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의 최고경영자이다. 래리 페이지는 1973년 미국 미시건주 이스트랜싱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칼 페이지는 미시건주립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였고, 모친 글로리아도 컴퓨터 교수였다. 페이지 역시 6살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숙제를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해 제출하기도 했다. 12살 페이지는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전기를 읽고, 그처럼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발명가가 되길 꿈꾸게 된다. 페이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시건 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교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해 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한 페이지는 평생을 함께할 친구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게 된다. 동갑내기인 브린과 페이지는 처음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웹 페이지에 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며 친분을 쌓게 된다.

 

 

웹 페이지에 가치를 매기다 페이지와 브린은 막 태동한 월드 와이드 웹(WWW)의 가치에 주목했고, 어떻게 하면 방대한 월드 와이드 웹 속에서 사용자에게 의미있는 웹 페이지를 찾아낼 수 있을지 연구했다.

 

사실 페이지가 처음부터 웹 페이지에 가치를 매기는 작업에 매진한 것은 아니다. 페이지는 모든 월드 와이드 웹을 백업하고 정돈(인덱싱)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하지만 월드 와이드 웹은 연구원 혼자 백업하기에는 너무 방대했다.

 

페이지는 결국 자신의 아이디어보다 친구 브린의 아이디어인 웹 페이지에 가치를 매기는 방법에 대한 공동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가치있는 논문은 많이 인용된다. 웹 페이지도 마찬가지다. 가치있는 웹 페이지는 다른 웹 페이지와 많이 연결(링크)되기 마련이다.

 

둘은 특정 웹 페이지가 어떤 웹 페이지와 링크되어 있고, 얼마나 링크되어 있는지 횟수를 분석함으로써 웹 페이지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이 연구 프로젝트에 '백럽(BackRub)'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어 웹 페이지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웹 페이지를 뒤지는 검색 로봇(웹 크롤러)을 개발했고, 검색 로봇으로 수집한 링크 데이터를 분석할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을 완성했다. 둘은 이 검색로봇과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이 웹 검색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음을 파악했다.

 

구글의 탄생 개발 도중 백럽이라는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는 지적을 받았다. 세상의 모든 웹 페이지를 품겠다는 의미에서 10의 100제곱, 사실상 무한함을 의미하는 구골(Googol)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구골이라는 상표와 도메인은 이미 다른 곳에서 등록한 상태였다. 때문에 유사한 발음을 가진 '구글'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됐다. 1996년 8월, 마침내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 '구글'이 세상에 태어났다.

 

둘은 구글의 초기 버전을 스탠퍼드 대학교의 URL을 이용해 구축했다. 구글은 큰 인기를 끌었다. 결국 둘이 남는 PC 부품과 리눅스를 조합해 얼기설기 만든 서버와 스탠퍼드 대학교의 URL이 구글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을 판매하기로 정하고 야후, 알타비스타 등과 접촉해 매각에 대해 논했다. 매각 대금은 100만 달러 정도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기업가치가 약 6400억 달러(약 732조 원, 지주회사 알파벳 기준)로, 시가총액 전 세계 2위에 이르는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헛 웃음이 나올정도로 초라한 가격이다.

 

당시 검색 엔진은 조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검색 로봇이 웹 페이지를 뒤져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웹 페이지의 소유주가 검색 엔진에 자신의 사이트를 등록하는 식이었다.

 

검색 엔진보다 관문(포탈)이라는 이름이 더 적합한 시절이었다. 구글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정작 구글 판매는 난항을 겪게 된다.

 

구글의 검색 성능이 너무 뛰어나 사용자가 너무 빨리 포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웹 페이지 광고에 목매던 포탈의 입장에선 도입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결국 페이지와 브린은 투자를 받아 구글을 하나의 회사로써 운영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구글에 최초로 투자한 사람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업자 앤디 벡톨샤임이었다. 두 창업자의 열의와 구글의 가능성을 알아본 벡톨샤임은 별다른 설명도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끊어줬다. 투자를 받은 둘은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실에서 독립한 후 수잔 보이치키(현 유튜브 최고경영자)의 집 창고를 빌려 구글을 창업한다.

 

이후 람 슈리람(벤처 캐피탈리스트, 현 구글 이사), 데이비드 체리턴(스탠퍼드 대학교수, 둘의 은사) , 제프 베조스(아마존의 창업자) 등의 투자를 받아 구글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보기에 페이지는 한 기업을 이끌기에는 너무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다.

 

20대 초반 창업자가 넘치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생각이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해도 통할법한 걱정이었다. 페이지와 브린도 이에 동의했다.

 

구글의 외적 성장을 내부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내적 기틀을 잡고 대외 활동을 지휘할 경험많은 최고경영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둘은 애플의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만이 구글을 이끌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잡스가 애플을 떠날리 없지 않은가. 이내 고집을 꺽고 다른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에릭 슈미트가 물망에 올랐다. 슈미트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거쳐 노벨의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인물이었다.

 

 

수십 년간 IT 업계에 종사하며 경영자로서 연륜도 충분했다. 처음 슈미트는 구글을 탐탁잖게 생각했지만, 페이지와 브린을 만난 후 생각을 바꾸게 된다. 둘의 비전과 통찰력에 감탄한 슈미트는 구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승낙했다.

 

2001년, 페이지는 구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슈미트에게 승계하고 자신은 창업자로서 슈미트에게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구글의 얼굴은 슈미트였다. 페이지는 두문불출했다. 많은 사용자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 페이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유가 이것이다.

 

10년 간 대중 앞에 나서질 않았으니, 그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0년이 흐른 2011년, 연륜을 쌓은 페이지는 구글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했다.

 

슈미트는 회장이라는 직함을 달았다. 최고경영자가 모든 것을 총괄하는 미국 기업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이례적인 결정이다.

 

이후 페이지가 경영을 총괄하고, 브린이 자율주행차, 헬스케어 등 차세대 기술 연구를 담당하고, 슈미트가 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구글의 얼굴로서 활동하며 둘에게 경영에 관한 조언을 제공하는 '삼두정치' 체제를 확립했다. 경영에 복귀하고 래리 페이지는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회사가 실패하는 이유는 야망이 없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의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회사를 운영해나갈 것이다.” 구글의 정체성과 미래 경영방향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지주회사를 만들고 구글을 물려주다 2015년 8월, 페이지는 지속적인 사업 확장을 위해 구글을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하기로 결정했다. 지주회사인 알파벳을 설립하고 구글의 특정 사업부서를 독립 회사로 분사해 사업의 효율성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구글은 검색, 모바일, 광고, 사용자용 인공지능 등을 담당하는 구글(Google), 헬스케어와 바이오 산업을 담당하는 칼리코(Calico), 사물인터넷과 스마트홈을 담당하는 네스트(Nest Labs), 자율주행차를 담당하는 웨이모(Waymo), 이동통신사업을 담당하는 파이버(Fiber), 기업용 인공지능을 담당하는 딥마인드(Deepmind), 벤처 투자를 담당하는 캐피탈지(Capital G), 미래 사업을 연구하는 엑스(X) 등으로 분리되었다.

 

이 모든 회사를 총괄하는 지주회사가 알파벳이며, 현재 페이지는 알파벳의 최고 경영자다. 세르게이 브린은 알파벳의 공동 사장이며, 에릭 슈미트는 알파벳의 회장(이사회 의장)을 담당하게 되었다.

 

페이지는 원래 자신이 담당하던 구글 최고경영자 자리를 크롬 웹 브라우저 개발을 지휘해 인터넷 시장에서 구글의 영향력을 확대한 인도인 개발자 순다 피차이에게 물려줬다. 페이지는 아직 젊다. 이제 겨우 44살이다.

 

그의 혁신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일지도 모른다. 페이지의 생각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지켜볼 일이다. 페이지는 젊은 시절 연구한 월드 와이드 웹을 백업한다는 계획을 결국 실천에 옮겼다.

 

구글을 설립하고 전세계 19위(포브스 2015년 기준)의 부자가 된 그는 구글의 막대한 서버를 이용해 전세계 웹 페이지를 백업하고, 사라진 웹 페이지를 사용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캐시 페이지 보기 서비스). 검색과 함께 어엿한 구글의 주력 서비스다.

 

혹시 특정 웹 페이지가 사라져 곤란함을 겪은 사용자라면, 전세계 웹 페이지를 백업하겠다는 페이지의생각에 감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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