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출신으로 20세기 보도 사진계의 대가가 된 사진가 베르너 비쇼프(Bischof·1916~1954)의 작품 중 기묘한 사진이 한 장 있다. 

복면 쓴 남자들이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서 단체로 춤을 춘다. 포크 댄스의 일종인 스퀘어 댄스 같은데, 다정하게 2인무를 추는 사람도 있다.

그 뒤로 자유의 여신상을 본뜬 조악한 구조물이 보인다. 도대체 이게 뭘까? 1952년 비쇼프가 한국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6·25전쟁 중 수용소를 관리하던 미군 헌병대는 노래와 춤, 뜨개질, 체스 같은 미국 문화를 활용해 포로의 여가 활동을 장려했다.

그런데 당시 수용소는 포로들 사이 극심한 이념 대립이 벌어지던 곳이고, 사방이 트인 공간에서 버젓이 '미제(美帝)의 춤'을 추다가는 친공(親共) 포로들에게 '반동'으로 찍힐 테니 정체를 감춰야 했을 것이다.

<1952년 베르너 비쇼프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

복면을 쓴 채 포크 댄스를 추는 이 장면은 영화 ‘스윙키즈’의 모티브가 됐다. 1952년 베르너 비쇼프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 복면을 쓴 채 포크 댄스를 추는 이 장면은 영화 ‘스윙키즈’의 모티브가 됐다. 

이 사진을 모티브로 최근 개봉한 영화가 '스윙키즈'다. 한 북한군 소년이 포로수용소에서 탭 댄스를 배우며 꿈을 찾는다는 이야기.

친공 포로들이 주인공에게 공연 당일 미군 수용소장을 저격하라고 협박하는데, 이것은 1952년 5월 7일 일어난 '도드(Dodd) 수용소장 피랍 사건'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포로사(史)에서 유례없는 이 사건은 수용소장이 78시간 동안 '포로들의 포로'가 됐던 황당한 일이었다. 포로들은 '제갈공명'이란 별명을 지닌 박상현의 주도로 '부당한 폭행과 수색이 이뤄지고 있다'며 수용소장 도드 준장과 면담을 요청했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면담을 하던 도중 20여명이 출입문을 열고 도드를 철조망 안으로 끌고 갔다.

도드의 후임인 콜슨 준장은 '포로에 대한 학대와 강제 심사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수용해 선전용으로 이용되기 딱 좋은 자료를 제공했으며, 석방된 도드와 함께 대령으로 강등 조치당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당시 많은 포로가 미군의 총격에 희생됐다고 묘사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도주 시도 아니면 총기 발사 금지'란 규정 때문에 미군은 총 한 발 쏘지 못한 채 멀거니 납치를 지켜봐야 했고, 도드의 신변이 염려돼 무력 진압도 할 수 없었다.

• 글쓴날 : [2019-01-04 08:4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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