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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힘 - 말의 힘

"좋은 말을 씁시다. 가정에서 부터 그렇게 합시다."
안철수와 정운찬 케이스


묘한 일치이다. 안철수 원장이 지난 1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자 각 신문은 그의 지나온 삶을 추적했다.
그 중에서 조선일보 19일자 김경화 기자의 안철수 원장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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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원장은 안영모씨와 박귀남(76)씨 사이의 21녀 중 첫째다. 안 원장 가계는 경남 양산 서창에서 대대로 살았으나 목수였던 증조부가 자녀 교육을 위해 부산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조부(안호인)는 부산상업학교(부산상고)를 나와 은행 지점장을 지냈다. 부친 안영모씨는 부산공업중학(부산공고)을 나와 서울대 의대를 갔다. 모친은 안 원장이 어렸을 때부터 존댓말을 했고, 심지어 학교에 가는 안 원장에게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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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정운찬 전 총리의 모친의 어법이 생각이 났다. 정운찬 전 총리는 그의 자전적 회고록 "가슴으로 말한다" 에서 자기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자기에게 존댓말을 썼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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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험한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분이 아니셨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남의 말 하듯이 "저 사람이 왜 저러시나?" 한마디면 모든 게 끝이었다. 자식들에게도 막말을 하시는 법이 없으셨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다.

어머니 또한 막내인 내게도 말을 놓지 않으셨다.

"손이 안 닿은 곳에 있는 음식은 먹으려고 하지 말게."

"새 번 이상 청을 받기 전에는 남의 집 잔치에 가는 것이 아니네."

어느 분이 먼저 그 말을 하시기 시작했는지, 나에게는 명확한 기억이 없다.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는 밥상머리에서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셨다. 그런 밥상머리 교육은 받았지만 정작 우리는 팔을 뻗어야 집을 수 있을 만큼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고, 간곡히 오라고 부르는 잔치도 딱히 없었다(가슴으로 생각하라 29; nc한국인뉴스 2008 12월호에 게재). -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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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돈이 없는 대신, 정으로 가득 찼다. 수제비든 국수든, 형과 내 밥그릇이 가장 컸는데, 형이 그것을 어머니에게 덜어 드리면 어머니는 다시 누나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런 식으로 수저가 오가다 보면 마지막에 가장 수북한 것은 언제나 막내인 내 밥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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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자네'라고 호칭하는 사이,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집안 좁은 건 살아도 마음 좁은 건 못 산다는 옛말을 뒤집어 보면, 집이 좁아도 마음만 넓으면 같이 살기에 그리 불편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집은 그런대로 꽤 살 만한 집이었다(가슴으로 생각하라 57; nc한국인뉴스 2009 6월호에 게재
).-

김경화 기자의 안원장에 대한 기사 중 말에 대한 서술은 다음과 같이 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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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원장은 기초의학인 생리학을 전공했는데, 워낙 내성적인 성격 탓에 환자들과 마주해야 하는 임상과목(내과·외과·소아과 등)은 피했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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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미경 서울대 교수와 만난 것은 본과 3학년 때다. 안 원장에게 김 교수의 첫인상은 '늘 혼자였던 여학생'이었다. 안 원장은 "우리 두 사람은 척 보기에도 무척 닮은꼴이었다"고 회고한다. 두 사람은 1988년 결혼했다. 늘 존댓말을 쓰는 부부는 싸움도 존댓말로 했다고 한다
.-

두 사람의 모친의 어법이 오늘날 이들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지 않나 하는 것이 nc한국인뉴스 편집팀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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