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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지역균형 선발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전 국무총리

 

총장에 취임하고 나서 나는 대학 다닐 때부터 생각해 온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는 ‘내가 교수라면••• ’ 이런 상상을 많이 했고, 교수가 된 뒤에는 정작 총장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내가 총장이라면•••’ 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별로 생소한 업무는 아니었다.

 

보직 교수들에 대한 임명을 마치자마자 나는 일의 경중과 사안의 완급을 고려하여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 시간을 두고 연구 검토해야 할 것, 그리고 외부의 의견이나 자문이 필요한 것들로 분류한 뒤 본격적인 집무에 들어갔다.

 

공약 가운데는 지성의 권위 회복과 대학의 역량 강화와 같이 시간을 두고 꾸준히 추구해야 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들도 있었으나, 인적 구성의 다양화, 학문적 기초 강화, 규모의 슬림화, 대학원 강화와 같은 현실적인 사안은 코앞에 닥친 당면과제였다.

 

지난 수십 년 간에 걸쳐 형성된 대학 시스템은 입시제도에서부터 교육체제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전수라는 목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와 같은 낡은 시스템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창조적 지성의 창출이라는 과제를 감당할 수 없다.

 

 지금 세계는 급격히 통합되어 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국내에서나 통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대학 시스템의 대폭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 중 하나가 입시제도 정비였다. 입시제도는 창의적 자기학습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아울러 잠재력을 갖춘 인재가 그 잠재력을 화려하게 꽃 피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이와 같은 생각에서 바로 지역균형 선발제를 도입하였다. 다양한 문화적 • 지역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서 조화를 이룸으로써 대학교육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제도가 가지는 장점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자 예상대로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대도시 학생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반대 논리였다. 그러나 대학 구성원의 다양화는 오히려 정서가 메마른 대도시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 각 지방에서 온 친구들로부터 푸근한 시골 정서를 배우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지역균형 선발제를 확대하고, 조만간 계층별 균형 선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교육을 통한 계층 간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기회의 균등화도 좋지만 더 나아가 기회의 다양화를 통해 도시와 농어촌 • 부유층과 빈곤층이 서울대 안에서 어우러져야 창조적인 지성인이 키워진다고 믿는다. 또 하나는 학생 정원을 축소하여 소수정예를 대상으로 보다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획기적인 캠퍼스 확충과 교수 증원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수월성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학생정원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것은 학장회의 단계에서부터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자기가 프린스턴처럼 규모가 작은 학교 나왔다고 서울대마저 그렇게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나는 서울대가 갖고 있는 인력과 기반시설로 내실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에는 학생의 숫자가 아직도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대형 강의와 감당하기 힘든 지도학생 숫자는 부실한 교육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설득을 거듭하면서, 소신을 가지고 이 문제를 관철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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