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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배 교수 칼럼: 한방 성장 클리닉 이야기

만으로 열 살이 넘은 여자 아이가 진료실로 들어 왔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어찌나 맑고 뚜렷했던지 진료가 끝난 뒤에도 며칠이나 기억속에 남아있었습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스스로 판단하여 똑똑하게 답변함이 인상깊었어요. 부모님들로서는 어디에 내 놓아도 자랑함직한 이 아이의 고민은 나이 열살에 몸무게가 45파운드 (20.4 킬로그램 ) 밖에 안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나이에 90파운드 나가는 건강한 아이를 본 지 몇 시간 안이었기에, 부모님들의 고민이 쉽게 이해되었습니다. 성장과 관련된 임상가들이 참고하는 여자아이들의 성장곡선(그림 참조)을 보면, 45파운드는 표본속의 열 살 아이들이 그리는 곡선의 범위안에 없습니다.

 

얼른 보아도 명민함을 알아 볼 만한 이 아이, 같은 반 아이들 가운데 “제일 작은” 자기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아이, 나름대로 여러가지 치료를 시도해 본 부모들에게, 한방 클리닉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궁리하기 위해 한의학적인 진단을 시작했습니다. 쉽게 메쓱거리고, 토하기도 하며, 음식량이 적고, 손발과 배가 차고, 목, 어깨, 등, 하복부와 골반의 위치가 하복부 기혈의 흐름을 최적화하기 어려운 형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은 지금까지 먹고 있던 음식물 가운데 아이들의 소화를 어렵게하는 주범이라 판단한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모두 금하고, 영양가가 높으면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치즈 (Raw Milk Cheese)를 권했습니다. 엄마로 하여금 골반 주변부의 기혈의 흐름을 촉진시킬 수 있는 간단한 운동법을 하게 하고, 아랫배를 따뜻하게 하는 온찜질을 하게 했습니다. 물론 사지의 기혈흐름의 관문을 침으로 자극하는 침치료와 담음을 줄이는 한약을 일 주일 치만 처방했습니다.

 

일 주일뒤에 아이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이가 첫 마디에 “어제는 음식 접시를 다 비웠어요”라고 했고, 엄마는 “내 기억으로는, 태어나서 밥 먹기 시작한 뒤에 처음이에요 ”라 했습니다. 보통은 반 정도 밖에 못 먹었고, 조금이라도 더 먹게 하면, 토했었다 했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리 있음이 분명하지만, ‘태어나고 처음’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했음이 저로하여금 희망에 부풀게 했습니다. 얼마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아이의 진료경험을 통해 음식섭취량을 150% 이상 늘리고, 잠을 더 잘 자는 사례를 경험하였었습니다.

 

또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 (Attention Deficit Hyperactive Disorder, ADHD로 진단받아 약을 먹는 아이)를 치료하여, 약을 먹지 않고도 개선한 사례들을 경험하였던 적이 있었기에, 그 한방 성장클리닉의 가능성에 확신을 더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신문을 읽는 분들 가운데에도 자녀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 많으리라 짐작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성장 유전자가 다르니, 피하기 어려운 개인차는 인정해야 겠지만, 타고 난 유전자가 충분히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주변인자들을 최적으로 조절하고, 그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부모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식물은 생장을 위해 햇빛, 공기, 물과 토양 영양분(질소, 인산, 칼륨, 그밖의 무기질)이 필요합니다.

 

동물도 큰 차이 없이 공기와 물과 영양, 그리고 햇빛이 필요합니다. 동의보감에서 정의하는 생명현상 유지의 4대 요소인 정신기혈 가운데, 정신이 생멸의 핵심 수직축이라면, 기혈은 성장의 수평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영아가 타고 난 기혈을 기초로 움직이며, 그 움직임으로 더 많은 영양을 섭취하여 성장합니다.

 

늘어난 영양은 더 많은 섭취를 가능하게 하는 움직임의 동력을 늘리고, 더 빨리, 더 멀리 움직여서 더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동물의 성장 원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혈의 원할한 흐름과 성장의 관점으로 동물의 건강을 이해한다면, 온전한 성장은 어떻게 막힘없는 기혈의 흐름을 보장해주는가와 직접적으로 연계됩니다. 기혈의 흐름을 잘 보장해주는 쉬운 방법은 어떤 것들있을까요? 맨 먼저 숨쉬기, 먹고 누기, 움직이고 쉬기 잘 하기를 꼽겠습니다.

 

그 다음이 알맞는 정신적 육체적 자극. 태어나는 순간 사람은 죽을 때 까지 멈추지 않을 심장이라는 엔진에 시동을 겁니다. 물론 우리가 직접 시동을 건다기 보다는 섭리가 하는 것이죠. 그 뒤론, 얼마나 효율적인 풀무질을 허파가 하게 해주는가가 심장과 허파의 수명을 결정합니다. 깊고 천천히, 많은 량의 가스를 한꺼번에 교환하는 허파는 얕고, 빨리, 적은 량의 가스를 교환하는 허파보다 훨씬 오래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런 숨쉬기를 가르치고 익히는 것이 성장을 위한 필수가 아닐까요? 저는 이를 위해 복식호흡을 생활속에서 배우고, 익혀 실천하기를 추천합니다. 개인마다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음식들을 먹고, 최대한 흡수력을 높일 수 있는 장운동을 보장하여, 쾌적한 배설과 깨운한 비움을 유지하는 장운동 관리를 하게 하는 것이 또한 중요해집니다.

 

깨어있을 때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고, 쉬고 잠 잘 때는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잘 수 있는 아이들이어야 기혈의 체내외 흐름이 최적화됩니다. 배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장운동, 복식호흡, 움직이고 쉬기를 할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생활 원칙이 됩니다. 이런 아이들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부모님들께서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더 많은 아이들이 이런 기본 원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런데, 어쩌면 자아가 생기는 아이들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잘 성장해야 할 동기를 깨우치는 것이나 자극을 주는 것 만큼 평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왜 숨을 잘 쉬고, 먹고 누기를 잘 하여, 잘 움직이고 쉬어야 하는지를 깊이 깨닫는 아이는 스스로 자기를 그렇게 관리해갈 것이니 말입니다. 자기 삶의 사명을 발견하는 실로 쉽게 단언할 수 없는 숙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아는 한 친구는, 애초에 자기 생명의 시동을 건 알 수 없는 영적인 존재를 설정하고, 자기와 동행하고, 자기를 비호하는 그 존재가 뿌듯해하고 흐뭇해하게 하는 것을 자기 삶의 사명으로 여긴다고 하더군요. 적지 않은 한의학적 치료제들이 아이들의 성장에 대하여 개발되었습니다.

 

코가 쉽게 막히거나, 숨이 얕고, 갑갑해하거나, 음식을 잘 먹지 못하거나, 먹은 음식을 소화를 잘 못시키고, 장의 움직임이나 흡수력이 떨어져 먹어도 살이 안 찌고, 잠을 깊이 못 자며, 쉽게 짜증을 내고, 왠지 편치않은 아이, 육체적 성장과 지능의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위한 처방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한약 처방과 침뜸, 운동요법들이 쓰여왔어요.

 

그런데, 성장의 원칙을 이해하고 적기에 적절한 법을 가려서 쓰는 데 대한 이해와 신뢰가 충분하지 않아 많은 부모님들이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이 성장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는데 저의 경험과 생각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복식호흡과 배를 따뜻하게 하기는 해가 없는 섭리에 가까이 가는 건강 실천법이라 추천합니다. 끝으로 Thanks Giving 연휴를 보내면서, 감사와 나눔이 기혈의 흐름에 미칠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여러분의 바로 옆에 있는 이, 남편도 좋고, 아내도 좋고, 아이도 좋고, 친구나 이웃도 좋고, “옆에 있어 줘서, 외롭지 않게 해 줘서 고마와” 한 마디만 해 주시고, 따뜻한 미소 한번, 따뜻한 손길 한번 줘 보십시오. 그리고 난 뒤 여러분의 팔 안쪽을 통해 흐르는 따뜻한 찡함을 느껴 보십시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면, 우리 자주 이렇게 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박종배 드림 ©박종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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