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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번 달 칼럼의 "이 사람을 보라!"는 제목의 출처는 기독교의 시조인 예수님께서 살아 계셨던 당시에 유대 나라를 통치 하던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한 후 그를 가리키면서 군중을 향하여 한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의 종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보고 그의 정체를 바로 알아 본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 가운데는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던 것 때문에 신성 모독 죄를 저질렀다는 종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자칭 왕이라 했었다는 이유로 정치적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는 이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로마 황제 외에는 왕이 없다고 외친 자들 중에 자기들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유대인 대제사장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쳤던 속이 썩어 빠진 종교인들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이들 종교인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른 오합지졸 같은 군중들도 그를 죽이라고 합세했습니다. 다수의 외침에 못 이겨 자기의 소견대로 예수를 놓으려고 힘써 무죄 판결을 내리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우유부단한 지도자로서 한 말인지 아니면 비꼬는 말투인지는 잘 몰라도 어쨌든 빌라도가 한 말입니다.
누가 어떻게 말했든 "예수님을 보라"는 말 자체는 참-삶의 방향감각을 잊어버리고 길을 잃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가 빌라도나 그 당시 종교 지도자나 군중 보다 더 낫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자문자답도 해봐야 할 것입니다.
근본 이치는 그 당시와 같이 어떻게 그를 보는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의 차가 생기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들 자신의 됨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는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생명을 귀중이 여기지 못하고 특히 사람의 생명을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파리 잡듯이 죽이라 하고 죽이는 21세기의 정황 가운데 우리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만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의 생명을 수단으로 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 반문하는 방법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저 심각한 얼굴 표정을 짓고 홀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삶 속에서 생명 자체를 경외하고 살아 가는지 아니하는 지를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들에게 묻고 답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순수하고 순진한 어린아이들을 본받기 보다는 이 세상 살아가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은 명예, 권력, 재산으로 이름난 사람, 아니면 일등 해서 금메달을 탄 사람들 만을 우러러 보고 그들처럼 되라고 어린이들을 부추기는 일등 지상주의자들이 아닌 지를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귀한 존재를 무의식으로나 고의적으로 짓밟고 무시하는 비인도적인 승리 지상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양심의 사람들을 꺼려하거나 더욱이 그들에게 욕설까지 하면서 외면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습니다.
무슨 콩깍지가 눈에 씌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고통의 예수님"을 이따금 볼 수 있도록 그 콩 껍데기를 스스로 치우거나 아니면 벗겨줄 사람이 정말로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바로 바라 보고 그 말씀을 귀담아 들어 그대로 살고 싶은 충동을 받을 때도 가끔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 주워진 물질은 - 바르게 잘 아름답게 사랑의 방편으로 사용하라고 우리 인간에게 맡겨진 - 하나님의 소유일 뿐입니다.
물질도 사람의 손을 통하여 돌고 돌아 다니기를 바랍니다. 특히 그 물질이 고난과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면 우리들의 명예나, 명성, 권력, 재산, 성공 까지도 참-삶의 뜰이나 쉼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주는 눈길과 손길-발길에서는 물질이 더욱 큰 웃음을 짓습니다. 물질 지상 주의의 상징인 금관을 쓴 사람보다 미련하게 보이기도 하고 실패한 사람으로 보이는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바라 보면서 조금이라도 그를 닮아보려는 4월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똑바로 바르게 바라 보라는 소리가 지금도 사방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만을 보지 말고 가시관을 쓰신 "사람의 아들"을 바라 보고 그를 닮아가려는 삶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다음 칼럼에서 상면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안녕히 계십시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암 박 오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