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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

임기동안 내 중요한 화두는 대학의 자율성 보장과 외압으로부터의 보호였다.

나는 공약으로 내세운 여러 가지 개혁 과제를 실천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을 교육기관의 가장 기초적 속성인 자율성을 놓고 정부 및 정치권과 대립해야 했다.

 

2004년 늦봄 무렵, 우리 사회 한쪽에서 '서울대 폐지'를 주장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좀 더 정확하게 그들의 주장을 옮기면 '모든 국립대를 평준화하라'는 것이었다. 공중파 텔레비젼에서도 이 문제를 주제로 특별 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로 힘 있는 인사들이었다.

 

사회자가 한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서울대생으로서, 서울대 폐지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그의 답이 궁금했다. 분노를 냉철한 논리로 승화하여 폐지론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해 줄까? 비(非) 서울대인을 배려한, 사려 깊고 가슴을 파고드는 언변으로 찬성 의견을 개진할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폐지론이 나오게 된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 에대해, 자신만의 해법을 역제안할까?

 

그러나 그 학생의 반응은 내 예상과 사뭇 동떨어진 것이었다. 머뭇머뭇… 짧지만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 던지고서는 총총히 사라졌다.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 아니, 어려서부터 그렇게 열망해서 들어왔을 테고, 그 뒤에도 자신을 주위의 칭찬과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해 준 대학을 다른 학교와 똑같이 만들겠다는데, 이것이 답변의 전부란 말인가!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니…' 무엇을 더 생각해 보겠다는 것인가. 왜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하는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나는 깊은 자괴심이 들었다. 그 학생을 비롯한 서울대생에게 분명한 자긍심 하나 심어 주지 못한 총장이라는 자각이 나를 아프게 했다. 차라리 그 학생이 서울대를 다른 국립대학과 똑같이 만들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의 폐해를 타파하고, 학력(學歷)보다는 학력(學力)이 대접받는 실용주의 사회, 학교 성적보다는 현재 실적이 평가받는 실적주의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면, 나는 그의 성찰과 용기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만에 여권으로부터 서울대 폐지 바람이 불자, 서울대에는 위기가 강풍처럼 휘몰아쳤다. 여당 의원들은 마치 충성 경쟁하듯이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마치 대한민국 교육문제의 주범이 서울대학교인 것처럼 몰아붙였다.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내뱉으며 서울대를 공격했는데, 비판과 비난의 핵심 대상은 결국 나였다.

 

그러나 그것을 촉발한 원인 역시 나에게 있었다. 교육자로서의 소신이랄까, 지구화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식이랄까. 아무튼 나는 총장이 되기 전부터 대학이 가르칠 학생들을 선발하는 권한은 그 대학의 손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3불 정책' 이란 하나의 정부 방침을 마치 변경 불가능한 국시(國是)처럼 떠받드는 것은 전근대적인 교조주의적 발상이다. 본고사를 치르지 못하게 하니까 대안으로 채택한 것이 논술고사였다. 그러나 그 당시 방식은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큰 학생들을 골라내겠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실효성이 크지않았다.

 

그 방식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글쓰기 기술' 을 대학 입시에 그대로 옮겨 적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유명하다는 논술학원이나 값비싼 논술교재에 접근이 어려운 학생들은 소외의식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고교 등급제와 기여 입학제도가 안된다는 것도 억지논리다. 고등학교 사이에 학력차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전혀 인정하지 말라는 것은, 언뜻보면 대단히 평등한 정책 같으나, 사실은 굉장히 불평등한 처사다. 모든 학교의 석차를 동일선 상에 놓고 평가한다면, 평균적으로 우수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입는 손해는 보전할 방법이 없다.

 

국회에 출석했을 때, 고교 등급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이런 요지로 답변했다. "우리는 일부 사립대학처럼 특정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특혜를 준 일은 없으나, 고교 간의 학력 차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여 입학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안 한다" 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서울대 같은 국립대학에서 기부금을 받고 학생들을 입학시킨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나는 그러나 "사립대학에서 한다면, 그것을 비판하지는 않겠다" 고 부연했다. 일부 사립대학들이 주장하듯이 일정한 숫자의 부유층 자녀들을 정원 외에 입학시켜 주는 조건으로 기부금을 받은 뒤, 그 돈으로 공부는 잘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면, 그것도 일종의 윈-윈 전략이며, 사회 전체로 보아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리수는 아니다.

 

재단의 전입금과 정부의 보조금은 한정돼 있고, 무턱대고 등록금을 올려서 충당할 수도 없다. 재정이 풍부하지 않은 사립대학을 그대로 방치해 놓고 학문이 융성하고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학은 투자라는 토양에서, 자율이란 공기를 먹고 커 나가는 생명체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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