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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 정직과 통합의 리더쉽

여러 가지 위기와 외풍 속에서도 서울대 구성원들이 단결하고 도와주어서 나는 맡은 바 소임을 무사히 마치고 2006년 총장직에서 물러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서울대란 조직은 1천8백 명의 교수 한 분 한 분이 각계의 전문가요 이론가 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변화라도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1천8백 명이 모두 학장이요, 총장인 셈이다. 다른 구성원들도 만만치 않다. 학생회도 있고 교직원들의 모임도 많다.

 

한 사람의 총장이 1천8백 명 가까운 '정신적' 총장들과 다른 모든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함께 나아가게 하는 것은 결국 총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내가 지향하는 통합의 리더쉽 - 그것의 요체는 외유내강이며, 그 뿌리는 내가 삶의 토대로 삼고 있는 정직과 성실이었다. 정직은 외부의 바람과 도전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성실은 예의와 겸손과 맞닿아 있다.

 

정직한 사람은 대나무 처럼 곧고 강한 내면을 가지고 있고 성실한 사람은 죽순처럼 부드러운 외양이 그 특징이다. 총장 재임기간 중에도 나는 누구에게나 정직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으며, 어느 때든 성실할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처음부터 자원봉사자로 내 자격을 규정한 나는 막상 총장이 된 뒤부터는 '내가 학생이라면…' '내가 교직원이라면…' '내가 교수라면…' 이런 식으로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해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다음 직접 당사자들을 만나 그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편의 반대의사를 청취해 보면 내가 미리 그려 본 스케치와 최종답안은 그리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자원봉사의 특징은 자신이 먼저 손해를 자청하는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널찍한 공관을 줄이고 그곳에 교수 아파트를 건립하는 일에 착수한 것도 그런 차원의 결정이었다.

 

집 없는 설움과 가난의 불편함을 절절히 체험한 나로서는 잘 가꾸어진 커다란 공관을 독차지하는 것보다 무주택 교수들을 위한 거주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정직과 성실은 내가 학교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게 해준 데 기여를 한 것 같다. 한편 봉사와 책임은 나에게 모든 구성원들과 화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 유대의 끈이었다. 학과 간. 대학 간 화합, 교수와 학생 간의 화합, 그리고 교수들과 교직원들과의 화합은 내가 이룬 성과 가운데 하나다. 나는 취임하기 바로 전의 여러 가지 학내 갈등을 대부분 해소했다고 자부한다.

 

여늬 학교와 마찬가지로, 학기 초마다 등록금 갈등은 있었지만, 나는 지난 수년간, 학생들로부터 총장실 점거 사태를 겪지 않은, 아마도 유일한 유수 대학 총장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고맙게도 노조에서 미니 냉장고를 퇴임 선물로 주었다. 총장실을 나오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지만, 그 냉장고는 내 연구실 책상 바로 옆에 놓여 있다.

 

손님이 와서 음료수를 꺼낼 때마다 그 냉장고는 나에게 화합의 가치를 가르쳐 주고 있는 듯하다.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선거 당시 내걸었던 공약을 다시 짚어 보니 미완으로 남은 사항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실적만 따지더라도 당초의 약속, 그 이상인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특히 최초로 서울대에 시각 장애인이 입학하고, 몇 개의 건물에 지체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일 등은 미약하게나마 학내 구성원의 다양화와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뿌듯한 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여건이 받쳐 주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계획했다가 미처 추진하지 못한 일들이 더러 있었다.

 

서울대 법인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후임자를 위해 일부러라도 남겨 놓아야 할 사안일 것 같아았다. 임기가 있는 마당에 혼자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을 뿐더라, 내 뒤를 이어받을 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 것이다.

 

4년 - 신입생이 어엿한 학사가 되어 사회를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더욱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굴곡도 있었고, 질타도 받았고, 고뇌도 많았지만, 경험은 늘 나를 새로 태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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