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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불확실한 시대. 불안한 국민

나는 2006년 7월, 4년의 총장 임기를 마치고 내 연구실로 돌아왔다.

내 연구실이 있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2층 계단에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말씀을 쓴 액자가 걸려있다.

 

신용하 명예교수님이 사회대 학장 시절 마련한 것이다. 法古創新 裕民益國 법고창신 유민익국 -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백성을 유복하게 하고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뜻일 것이다. 환경과 역할은 달랐지만, 아담 스미스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대표적 실학자의 정신이 여덟 자 한 구절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아, 드나들 때마다 내 눈길은 나도 모르는 사이 그곳을 바라보게 된다.

 

교단에 서는 가장 큰 기쁨이야 배우고 연구한 것을 젊은 후학들에게 털어놓고 그들의 싱싱한 생각을 들음으로써 나 자신을 재충전하는 것이지만, 방학이 있다는 것 또한 여간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아직도 한 달 가까이 방학이 남아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나른한 잠에 빠졌다가 깨어난 듯, 엊그제 일이 몇 달 . 몇 년이 지난 일처럼 아득했다. 그러나 오래 묵어 손때가 많이 묻은 내 좁은 연구실은 아늑했다. 4년 임기 내내 나는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는 개학 직전의 학생같이 나날이 허덕였다.

 

하지만 이제 여기 서서 되돌아보니, 거기에는 내 삶의 일부인 모교를 성장시키는 기쁨, 나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회를 갖게 된 데에 대한 감사와, 어려운 고비마다 많은 분들이 들려준 조언과 충고와 격려가 있었다. 즐거움과 보람은 번민과 고뇌보다 더 컸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이제 나는 비로소 과제를 마치고 내일 아침을 기다리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다 내려놓지 못한 임무가 있어 그리 홀가분하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나날이 뜨거워지는데, 정작 그들을 맡길 지식인에 대한 적절한 인식과, 시대를 이끌 전문지식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불안한 국민들은 이땅의 지식인들에게 더욱 치밀한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학문적 열정으로 현실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발굴해야 할 무거운 의무를 지워준 것이다. 전문지식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하기 힘들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시간과 공간의 큰 틀 속에서 조망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목표를 달성하는데 급급하여 내실이 채워지지 못했다. 지식인들의 임무가 여기에 있다. 내실을 다져서 허약체질을 극복하는 것이다.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의 확립도 그 방안의 하나일 것이다. 다양한 집단의 첨예한 갈등상황 앞에서 지식인은 이해관계를 예리하고 공평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조정하고 기꺼이 타협하게 만들어야 한다. 교육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뇌를 동반하지 않은 이념적 편향을 버리고 수월성과 평등성이 조화를 이룬 교육의 정도를 찾아내야 한다. 공정하고 생산적인 경쟁을 포용하는 교육제도, 부모의 경제력이 아닌, 학생 자신의 능력으로 경쟁하는 교육제도, 계층 간의 이동을 활성화시키는 교육제도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냉철한 전문지식이 뜨거운 사회의식과 결합해야 한다.

 

 학문을 바로 세우고, 정확한 정보와 숙성된 지식을 사회에 제공해야 한다. 하위부문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발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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