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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 지식은 사람을 아는 것

세계적인 도시 런던에도 굉장히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카크니(Cockney) 지역이라고, 동남부에 있는 곳인데, 제대로 배우지 못해 영어도 엉망이다.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고 악센트가 다르지만, 이곳의 발음은 알아듣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에이’ 를 ‘아이’ 라고 발음하는 것이다.

 

호주에도 그렇게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카크니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천, 수만 킬로미터 배를 타고 가서 미지의 대륙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런던 정경대학에 방문교수로 갔을 때 나도 발음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지하철 노던 라인의 종점 모든(Morden) 역에서 나는 숙소에 가는 버스번호를 물었다.

 

행인은 ‘원 아이틴’ 이라고 했던 모양인데, 나는 그것을 ‘원 나인틴’ 으로 알아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119번 버스는 오지않았다. 은근과 끈기로 버틴 지 무려 한 시간 반 뒤, 다른 행인에게 물어보니 한참을 웃더니, 카크니 발음을 설명해 주며 “원 에이틴(118)” 을 타라고 했다.

 

나는 소외된 지역, 소외된 사람들을 보면 마샬의 얼굴이 겹쳐져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알프레드 마샬은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갖춘 인간이었다. 런던의 빈민가를 마샬과 같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세계적인 학자가 자주 방문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폈다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분이 강조한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 은 그래서 더욱 예사로 들리지 않는 인간적 명제다. 그런 삶의 태도를 간직한 채 세상을 살아간다면, 마샬이라는 사람을 모르면 어떻고, 경제학을 모른다고 또 무슨 대수이겠는가. 두뇌만 가지면 위험하고, 가슴만 가져서는 공허하다.

 

도서관에 불이 켜져 있는 한 미래는 밝다고 하지만, 젊은이의 미래는 들판에도 있고 공장에도 있다. 나는 공부라는 한 우물만 파는 모범생보다는 사회문제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진 비판적 젊음, 방학에는 도서관에 숨어 사는 것도 좋지만 모처럼 농어촌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따뜻한 젊음, 설익은 지식을 뽑내지 않고 귀와 마음이 활짝 열린 개방적 젊음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아는 것[知]은 ‘사람을 아는 것’ [知人]이고, 어질다는 것[仁]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愛人]이라는 논어의 구절은 지성과 감성을 규정한 가장 간결한 정의다. 우리가 안다는 것[知]은 결국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知人]이다. 사람에 대한 지식이 산지식이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지식이 참지식이다.

 

공자가 자신의 수레를 모는 번지에게 가르친 인[仁]은, 나 자신을 사랑하듯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장 뛰어난 제자 안연에게는 인[仁]이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가르친 것을 보면, 이기심을 극복하고 예를 다해야 어질다고 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결국 감성은 덕성의 단계로 발전돼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날카로운 지성은 따뜻한 감성으로 감싸야 하고, 따뜻한 감성은 외유내강의 덕성으로 품어 안아야 한 인간이 완성된다.

 

우리가 지향하는 참교육의 큰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의미 있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치 있는 것은 어느 것이든, 고통과 노력없이는 얻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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