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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서 나락으로 ...살인자로 전락하여 인생을 망쳐버린 두 유명인사

 얼마든지 화려하고 유명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두 사람.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이 살인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피해자 그리고 그 가족에 절망과 고통을 안겨주고, 본인은 평생을 감옥에 지내야 하고 인생을 스스로 망쳐버렸다.

 

가족들에게는 살인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로버트 더스트 미스테리

 

(로버트 더스트)

인터뷰 마친 백만장자 입에서 흘러나온 살인 자백 “모조리 죽여 버렸지...”

 

2010년 연말에 개봉된 앤드루 재러키 감독의 영화 ‘올 굿 싱스(All good things)’는 2000만달러를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65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실패로 끝났다.

 

백만장자인 로버트 더스트의 아내 실종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제작 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개봉이 지연되다가 1년 이상 미뤄진 끝에 세상에 나온 흥행 성적표였다.

 

영화의 실패로 전전긍긍하던 재러키는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는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로버트 더스트였다. 더스트는 재러키에게 인터뷰를 제안했다.

 

이후 재러키와 더스트가 수년에 걸쳐 총 20시간 이상 인터뷰를 했다. 이렇게 만든 것이 미국 케이블채널 HBO의 6부작 다큐멘터리 ‘더 징크스(THE JINX!)’다. 그런데 5부까지 방영되고 최종 6번째 시리즈가 방영되기 하루 전인 3월 14일 로버트 더스트는 뉴올리언스에서 일급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What the hell did I do?(내가 뭔 짓을 한 거야?)” “Killed them all, of course.(물론 다 죽여버렸지.)” 재러키와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고 화장실로 간 더스트는 부지불식 중에 몇 마디를 중얼거린다.

 

이 몇 마디로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당시 그의 가슴에는 녹음용 마이크가 달려 있었고, 그것도 스위치가 켜진 상태였다. 너무나 편안한 나만의 공간, 재러키와 밀고 당기는 오랜 인터뷰도 끝났다. 속이 다 시원하다.

 

저절로 혼잣말이 나올 터. 그의 중얼거림은 고스란히 녹음되었고 재러키는 뜻하지 않게 대어를 낚아채게 됐다. HBO 제작진은 3년 전 녹음된 이 음성파일을 지난해 5월 우연히 발견해 확인 작업을 거친 끝에 6부 방영 하루 전날 경찰에 신고한다.

 

더스트는 3월 14일 뉴올리언스에서 체포된 것이다. 1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72세의 재산가 로버트 더스트, 그는 최소 2건의 살인사건과 1건의 실종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호사가들은 아마도 밝혀지지 않은 살인사건이 더 있을 것이라고 수군댄다. 그는 한때 수십조원 부동산의 상속자였다. 로버트 더스트는 이 부동산을 지배하는 더스트재단의 설립자 조지프 더스트의 장손(長孫)으로 뉴욕에서 1943년 4월 12일 태어났다.

 

오스트리아-헝가리계 유대인 조지프 더스트가 뉴욕에 도착한 것은 1902년. 그의 주머니에는 달랑 3달러가 들어 있었다. 첫 직업은 재봉사 보조. 오늘날 맨해튼 7번 애비뉴와 40번 스트리트에 유대인 남성 재봉사 동상이 놓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느 이민자들과 같이 젊은 조지프 더스트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재봉틀에 매달린다. 그 결과 1912년, 이민 10년 만에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된 봉제공장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가 번 돈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길은 달랐다. 옷을 만드는 사업보다는 부동산이 더 안전하고 오래갈 것으로 생각하고 버는 돈을 부동산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1915년 조지프는 지금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바로 맞은편에 있는 34번 스트리트 1W에 있는 센트리빌딩을 매입한다. 부동산 개발업자 조지프 더스트로 거듭난 것이다. 1974년 조지프 더스트의 사망과 함께 그가 지배하던 더스트재단은 아들 세이무어 더스트에게 상속된다. 세이무어 더스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을 관리하는 것에 집중했다.

 

세이무어 더스트는 재단을 1992년 둘째 아들 더글러스 더스트에게 물려주고 은퇴한 후 1995년 사망한다. 형인 로버트 더스트는 후계 경쟁에서 동생에게 밀려 2006년 6500만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모든 더스트 가문의 상속과 관련된 권한을 포기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인생이 행복할까. 로버트 더스트는 성취의 기쁨을 별로 느껴보지 못한 채 각종 기행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다.

 

여장 남자 행세를 하기도 하고, 주머니에 500달러의 현금을 가지고서도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훔치기도 하고, 매장 진열대에 소변을 보기도 하고…. 이런 그의 소소한 일탈은 이제 끝나고 말았다. 그는 어쩌다 살인자가 되었을까? 여기서 로버트 더스트의 친구인 수전 버먼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수전 버먼의 할아버지 데이비드 버먼은 흑해 연안에서 비교적 풍족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유대인인 그는 러시아 군대가 집앞까지 쳐들어오자 1904년 미국으로 도망간다. 세탁소 일용직이 미국에서 찾은 그의 첫 직업이었다. 그러다 유대인 단체의 후원으로 시베리아 같은 노스다코타로 이주하게 된다. 농사를 지을 줄 몰랐던 데이비드 버먼은 노스다코타에 정착하지 못하고 아이오와주의 수시티로 다시 떠난다. 수시티는 시카고 깡패들의 도피처로 유명했다.

 

그때 아들 데이비는 네 살.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세상에서 길거리 질서에 먼저 눈을 뜬 데이비는 동년배 유대인 친구들을 모아 조직을 만든 다음 구역 관리에 나선다. 그는 어느덧 거리의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禁酒)정책은 데이비가 뒷골목 주먹에서 두목급 조폭으로 성장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2차 대전 후 데이비는 독일계 미국인 무용수 글래이디스 이왈드와 결혼한다. 수전 버먼은 미네소타에서 1945년 이 부부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바로 그해 조폭과의 전쟁으로 유명한 험프리가 미네아폴리스 시장으로 취임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데이비는 갓난아기 수전 버먼과 부인을 데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한다.

 

유명한 벅시 시갈, 하워드 휴즈 등 거물급 조폭들과 어울리며 전국적 조폭의 반열에 오른 것이 이 무렵이다. 하지만 그는 1957년 수술을 받던 도중 사망하였다. 수전 버먼이 12살 때였다. 2000년 크리스마스 이브, 수전 버먼이 LA 집에서 뒤통수에 단 한 발의 총을 맞고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미국 언론들은 화들짝 놀랐다. 대중은 뭔가 대단한 복수극이 개입되었을 것이라고들 수군거렸다.

 

실제로 LA 경찰은 범죄조직의 사주에 의한 청부살해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수전은 13살 때 고아가 되어 삼촌의 손에 맡겨졌고, 이후 UCLA에서 학사를, UC버클리에서 석사를 받았다.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책을 쓴 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 많은 친구를 둔 극작가이기도 했다. 조실부모로 어릴 때 받은 상처는 그녀를 평생 괴롭혔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밥을 먹기 전 꼭 누군가를 시켜 미리 먹어보게 했고, 다리를 건너는 것도 매우 싫어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난무하던 조직폭력 배후설은 곧 잠잠해지고 곧이어 더스트의 전처 캐서린 맥코맥 실종 사건이 부상했다. 1970년 부동산 재벌 3세 청년 로버트 더스트가 캐서린 맥코맥을 만난 것은 그가 맨해튼의 부동산을 관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맥코맥의 부모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두 사람은 결혼한다. 아직도 현역인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하늘처럼 모시는 아버지의 기에 눌려 힘들게 지내던 로버트 더스트는 결혼과 함께 버몬트주로 이사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도 잠깐. 조부가 사망하자 억지로 뉴욕에 오게 된다. 이후 맥코맥이 의대에 진학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커졌다. 그러던 1982년 1월 31일 로버트 더스트의 아내 캐서린 맥코맥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실종 직후 로버트 더스트가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어 기소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이후 2001년 법원에 의해 그녀의 사망이 공식 선언되었다. 수전 버먼이 더스트를 처음 만난 건 둘이 UCLA에 재학 중이었을 때다. 부동산 재벌의 아들과 조폭의 딸. 두 사람은 그런 각자의 배경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이런 관계가 바탕이 되어 1982년 로버트 더스트의 아내 맥코맥이 실종되었을 때 수전 버먼은 로버트의 대언론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개인 대변인이 된 것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로버트 더스트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맥코맥의 친구들은 더스트가 맥코맥을 살해한 범인이라는 심증으로 끊임없이 경찰에 수사를 촉구한다. 맥코맥 실종 사건은 약 18년이 지난 후인 2000년 재수사가 시작된다. 수많은 수사 대상자 중 수전은 가장 중요 인물로 꼽히고 있었다. 수전 버먼은 바로 그 실종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기 직전 살해되었다. 그는 왜 절친 수전 버먼을 죽여야만 했을까?

 

수전 버먼은 경찰에서 무엇을 증언하기로 작정했던 것일까? 수전 버먼 살해 사건 이후 더스트는 LA를 떠나 텍사스로 이주한다. 그는 여기서 이웃인 모리스 블랙을 토막살해한 다음 바다에 갖다버린다. 스스로 살인을 자백한 유일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도 그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살인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말이 어눌한 백만장자 로버트 더스트. 그가 다시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즐길 수 있을지, 아니면 세상과 격리된 채 생을 마칠지 미국인은 지금 지켜보고 있다.

 

전도유망­ 풋볼 스타 살인죄로

 

무기 징역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촉망 받는 타이트엔드였던 아론 헤르난데즈가 1급 살인죄에 대한 유죄 판결과 함께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주목 받는 스포츠 스타에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죄인이 된 것이다. 올해 25세인 아론 헤르난데즈는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패트리어츠와 4천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채결할 정도로 뛰어난 스포츠 선수였다.

 

▲한때 NFL 최고의 타이트엔드로 꼽혔던 아론 헤르난데즈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대학 시절 플로리다 게이터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NFL 데뷔 이후에도 전천후로 활약이 가능한 리그 최고의 타이트엔드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헤르난데즈는 2013년 6월 17일, 자신의 약혼자 언니의 남자 친구였던 오딘 로이드(27세)와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다툼을 벌였다.

 

 정원사로 일하면서 주말에 아마추어 풋볼 선수로 경기를 하던 로이드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로이드의 살인 용의자로 헤르난데즈를 지목하고 즉각 체포했다. 로이드의 옷 주머니에서 NFL 선수가 렌트한 자동차의 열쇠가 발견되었고 살해 장소가 헤르난데즈의 집 근처였기 때문이다. 헤르난데즈의 체포 소식이 알려지자 패트리어츠는 바로 그를 팀에서 제명했다.

 

사건 담당 검사는 헤르난데즈가 살던 집의 CCTV 기록과 통화 내역, 목격자의 증언 등을 통해 로이드가 살해 당시 헤르난데즈와 함께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로이드는 6발의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헤르난데즈는 범행 당시 친구 2명과 함께 있었다.

 

이들은 헤르난데즈의 살인 행각에 충격을 받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고 증언했다. 범행 현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에 대한 재판은 차후에 열릴 예정이다. 헤르난데즈는 로이드 외에도 2012년에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사람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로이드가 헤르난데즈의 2012년 살인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 당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헤르난데즈의 2012년 살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로이드 살인 사건과 별개로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헤르난데즈는 2012년에 차를 탄 상태에서 2명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헤르난데즈의 변호인은 경찰이 헤르난데즈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표적 수사를 했고, 성급한 수사로 섣부른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사 측은 헤르난데즈가 시체를 운반할 친구 2명을 미리 부른 점을 들어 사전에 범행이 계획되었다고 밝혔다. 헤르난데즈가 살던 집 CCTV에는 로이드가 살해 당한 직후 헤르난데즈가 총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지 불과 몇 시간 뒤에는 같이 범행을 한 친구들, 사건 당시 아직 아기였던 자신의 딸과 함께 수영장에서 파티를 즐기는 모습도 CCTV 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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