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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열
Shepherd대 전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미주 동창회보 논설위원장
지난 2014년 한국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 지 도자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북한의 김정은이 뽑혔다. 한국에 서 가장 인기없는 아베 총리는 지난 12월 14일 치러진 중의원 해산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번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얻 은 의석은 연립정권의 공민당 의 석까지 합치면 3분의 2(317석)를 훨씬 넘는다. 이제 아베 총리는 그의 공약이며 목적이었던 일본 을‘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 드는 정책을 일본 중의원에서 통 과시킬 수 있게 됐다. 구체적으로 그는 헌법 9조(일본 의 정규 군대 폐지)조항을 개정 할 것이며 또한 일본의 침략 과 거사 부정 움직임도 본격화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인의 60%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는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할 것이며 더불어 위안부 강제 동원 도 부정할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반역사적, 반국 제적인 정책을 그는 택하는 것인 가. 물론 그의 첫째 목적은 자민 당 당수로서 대다수 보수적 일본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고 하는 것 이며 또한 그의 극우적인 신념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극우의 전 기시 총리의 외손자로서 그의 정치 이념은 젊었을 때부터 굳어 졌으며 현재 일본은 20년간의 경 제 침체와 중국∙한국∙러시아와 영토 분쟁 때문에 맹목적인 애국 심이 고조돼 있으며 극좌와 진보 성향을 비판하는 것이 일본 국민 의 대다수 여론이다. 이런 성향을 이용해 아베는 더욱 그의 정 책을 우향우로 이끌어 장기집권 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전 수상 고 노와 무라야마 수상의 2차대전의 침략 사과문과 위안부의 강제동 원 연설을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독도(다케시마), 중국의 다오유(센카쿠), 러시아 의 쿠릴 영토 문제에 있어서 아 베는 민감하며 그의 국수주의 정 책 때문에 세 나라와의 관계가 더욱 껄끄러워질 것이다.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 관점에 서 볼 때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것이 자명하다.
아베를 위시하여 일본의 극우파들은 다케시마가 자기들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들 은 독도가 무인도(Terra nullius) 였기 때문에 1905년에 독도를 일 본의 영토로 영입했다고 주장한 다.
그러나 한국의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시대 512년 벌써 우산국(독 도)이 신라에 조공을 바치며 합 병된 것으로 기술됐으며 고려사 에서는 우산(독도)과 무릉도(울 릉도)를 강원도 울진군의 행정구 역 밑에 두었다고 서술하고 있 다.
조선시대 기록에서는 1451년과 1531년의 동국여지승람에서 독도 가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측 문서에서도 1872년 지도 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 토와는 다른 색깔로 한국 영토로 표시돼 있으며 1877년에는 일본 정부의 최고 정책기관인 다이조 관(Council of State)에서 울릉도 와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명기했다.
이런 많은 역사적 고증이 있는 데도 그들은 독도라는 이름이 확 실히 지도에 없고 한국에서도 독 도를 우산국, 석도, 송도라는 여 러 명칭을 썼는데 이 모든 이름 이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 주장한다(조선에서는 1881년 부터 독도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 함). 이렇게 중요하지 않은 이름 혼 동 문제로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고집하여 1905년에 합법적으로 독도가 자기네 것이 되었다고 억 지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에서도 무인도를 발견하 고 가끔 방문한 증거가 있으면 꼭 주민이 당분간 그 섬에 거주 하지 않아도 영토권이 성립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원 칙을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가 1973 년 Minguires and Ecrehos라 는 case에서 판결내렸다.
일본도 한동안은 울릉도를 다케 시마라고 불렀으며 독도를 마쓰 시마라고 명기하였다. 현재는 독 도를 다케시마로 부르고 울릉도 를 마쓰시마라고 고쳐 쓰는등 혼동의 역사가 있다.
그들은 1905년에 무인도인 독도 를 자기 영토로 영입했다고 주장 하는데 벌써 1900년에 고종이 그 의 제국칙명 41조에 의해 독도를 강원도로 편입한다고 칙명을 내 린 것이 역사의 문서로 보존되고 있다. 일본의 1905년 독도 영입 주장 은 국제법에서도 인정할 수 없으 며 국제법에 따르면 ‘다른 나라 의 영토를 강제로 편입하는 조약 같은 것은 법적인 효력이 없다’ 고 1976년의 Vienns조약과 국제 연합 헌장(Charter of UN) 2조에 명시돼 있다.
국제법 원칙에 의 하면‘오래 된 중요한 역사적인 문서와 조약(Treaty)들이 국제재 판소의 판결에 사용된다’고 기 술돼 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독도 는 역사, 지리, 국제법적으로 명 백하게 대한민국의 영토다. 그럼 에도 일본은 학교 교과서에 독도 는 일본의 영토라고 강조하며 아 베 총리의 자민당은 잘못된 애국 심을 불러 일으켜 일본 국민을 선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애국심은 동남아에 분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일본의 침체적인 경제도 고립된 일본을 전환시키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 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전했어도 경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국수주의가 아니라 평화가 오래 지속되고 한국전쟁 으로 군수품을 한미 연합군에 공 급하였고 모든 국력을 경제발전 에 집중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이 군대를 강화해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꿈을 다시 꾸었다면 일본은 세계 경제의 2대 강국으 로 도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국가나 훌륭한 정치 지도 자가 필요한 데 대개 경제 침체 가 계속되거나 위기 의식을 느낄 때 선동적이며 국수주의적인 demagogic한 지도자를 추대해 추 종한다.
2차대전 때 독일의 히틀 러가 좋은 예로 그는 애국주의를 가장하여 유태인을 학살했으며 ‘게르만 민족이 세계 제일의 민 족’이라고 외쳤고 좌충우돌식으 로 영국과 전쟁도 힘에 겨울 때 소련도 동시에 침략해 무참하게 패전했던 것이다.
다행이도 패전 후 서독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나라의 과오를 깨달았으며 세계 특히 유태인의 이스라엘 국가에 진심으로 사과와 보상을 했다. 현재 독일 수상 Andrea Merkle은 이스라엘 국회를 방문해 심심한 사과를 드렸으며 이스라엘은 그 녀에게 이스라엘 명예 시민권까 지 부여했다.
일본 아베 총리는 독일 지도자 와는 반대로 한국과 중국에 사과 대신 전쟁의 과오를 인정도 않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또한 2차 대전 전범을 영치한 야스쿠니 사 원에 가서 오히려 그들을 애국자 들처럼 추모하였다.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영웅시하 는 19세기의 사이고 다카모리 (1827~1877)가 일본의 잘못된 애 국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 다카모리는 조선 침략을 주장 했으며 조선을 정복해야 일본이 대국이 되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 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그의 조 언을 들어주지 않자 자신을 조선 에 보내달라고 했다. 조선이 자 신을 죽이면 그것을 핑계로 조선 을 치라고 한 것이다.
아베 총리 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이고 다카 모리를 영웅시한다. 이런 자칭 애국자는 평화주의에 암적인 존 재가 되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이런 위험한 자칭 애국자나 광적 인 종교 신봉자가 있으며 위험한 인간들이다. 지리적으로 독도는 일본보다 한 국에 더 가까우며 일본도 인정하 는 한국 영토 울릉도에서 87km이 고 일본의 가장 가까운 섬 오키 (Oki)에서는 157km나 떨어져 있 다.
국제법에서도‘영토 근접성 (Territorial Contiguity)이 영토 권을 부여하지는 않으나 영토권 분쟁 때 더 가까운 나라가 발견 과 효과적인 통치 역할 가능성이 더 있다’라는 것을 할 수 있다 고 국제사법재판소가 Palmas Island Case에서 판결한 바 있다. 2차대전 중 1943년 카이로 회담 에서는‘일본이 침략으로 빼앗은 모든 영토를 돌려주어야 한다’ 고 명기돼 있으며 1945년 포츠담 회담에서도 다시 한 번 영토반환 을 강조했다.
패전 후 1946년 연 합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 명의 로‘Liancourt Rock(독도)은 울릉 도와 제주도를 위시하여 한국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시했으며 ‘독도 12마일 해역에서는 일본 은 어업도 할 수 없다’고 경고 하였다.
그후 1951년 샌프런시스코 평회 조약에서는 제주도∙울릉도∙거제 도는 한국의 영토로 서술됐으나 작은 섬인 독도는 특별히 명시되 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독도 를 위시해 2천여개의 작은 섬들 이 특별히 서술되지 않았으므로 독도는 자기 영토라고주장하는 일본의 태도는 억지이며 법률적 으로도 상식 밖의 일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2년 뒤인 1952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독 도를 포함한 동해 연안에 Rhee Line을 설정하고 그 영해 내에서 외국 배는 어업도 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전쟁 중 평화선을 설 정해 영토 근처의 인근해를 설정 하는 많은 예가 있으며 미국도 영토로부터 200마일 떨어진 해협 을 미 국 의 어 업 해 역 (Fishery Zone)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 이후로 네번째 독도 영토 문제를 국제사법재판 소에서 결정하자고 주장하고 있 다. 그들은 현재 한국이 30여 명 의 경찰과 2명의 주민이 거주하 고 있는 독도를 한국의 지배에서 강제적으로 빼앗지도 못하고 이 문제를 국제화시켜 한국이 국제 사법재판소에 못가겠다고 하면 ‘한국이 약점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알려지게 하려는 의 도다.
만약 일본이 지금이라도 독일이 패전후 실행한 것처럼 자신의 침 략과 학살행위를 진심으로 사과 하고 이웃나라인 한국과 협상한 다면 일본은 민주 우방국가로 존 경을 받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안보면에 있어서 동아시아 평화를 유지하려면 밀 접한 우호관계를 맺어야 동아시 아 패권을 잡으려는 중국을 견제 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계속되는 인민해방군의 전쟁준비 태세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도 위험한 북한의 혈 맹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북한의 생명줄이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 시아에서 중국 팽창주의를 막는 민족주의 교두보가 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정권은 국 수주의자들의 퇴폐적인 언동을 삼가야 되고 잘못된 과거사를 인 정하는 것만이 동북아의 민주화 와 평화가 지탱할 수 있다는 것 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