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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마지막회) - 사람 사는 나라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해법이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독립국가의 기틀을 갖추자마자 전쟁을 치렀고, 잿더미에서 경제기적을 이룩한 국민이다.

 

우리 앞에 언제 한 번 쉬워 보이는 문제가 주어진 적이 있는가. 우리의 노력 앞에 안 풀린 문제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단합을 해도 쉽지 않은 여건에서, 아직도 여전히 ‘민주화 세력’ ‘산업화 세력’으로 나뉘어 반목과 갈등을 반복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들은 한 시대를 주도하는 화두였음에 틀림없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제 새 비전 앞에 하나로 뭉쳐야 한다. 내일을 향한 우리의 시대정신은 새로운 도약이다. 세계경제의 선두주자인 강중국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정신 앞에서, 얼마전까지 나 역시 현실정치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거듭한 적이 있었다.

 

‘사람 사는 나라.제대로 된 나라. 품격 높은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가슴속에서 꿈틀대던 소망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국격(國格)의 향상은 오래전부터 내 뇌리를 지배하던 과제였다. 긴 세월 내가 의지해 온 인생의 선후배들의 진지한 권유를 받으며, 이러한 꿈을 직접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싶은 강렬한 소망이 내 가슴 속에서 꿈틀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 사회로부터 내가 그동안 입은 그 은혜를 돌려줄 수 있는 기회, 북한산 소나무처럼 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갖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권은 내가 지켜 온 소신과 원칙과 지향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였다.

 

나 스스로도 그곳으로 뛰어 들기 위한 충분한 훈련이나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은혜를 갚고 봉사하고자 하는 나의 충정이 개인적인 권력욕으로 오해 받고 폄하되는 것은 참기 어려웠다. 그러나 정치가 다는 아니지 않는가.

 

이런저런 다른 모습으로 시대정신을 살리고 싶다. 나는 항상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다. 평소 자리나 직책은 물론 돈과 같은 현실적 가치에 비교적 초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내 삶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제의 나의 행동과 다르지 않은,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삶의 모습과 언행과 자세다.

 

알게 모르게 실패나 실수는 했지만 적어도 ‘일관된 원칙과 행동’을 실천하고 살아왔음에 감사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나를 단련시켜 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뒤 나를 만들어 준 수많은 분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면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힘이 들 때마다 내 짐을 함께 들어줄 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고비를 만날 때마다 내 손을 잡고 ‘희망의 나라’ 로 안내해 준 분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영국의 사학자 E.H. 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에서 ‘우연을 매개로 한 필연의 관찰’ 이라는 유명한 역사법칙을 제기한다. 전형 예상하지 못한 우연한 사건이나 개인의 이익추구 행위가 역사적 필연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던 시절, 동숭동 옛 서울문리대 교정을 지나며 교수를 보고 부러워하던 아이가 어느덧 그와 똑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은 -내 개인적으로 보면-역사적 필연 이상의 사건이다. 지나간 그 시절은 아름다웠다. 좁은 골목길은 늘 분주해서 정겨웠고, 누추한 집은 언제나 맞닿은 체온으로 따뜻했다.

 

그때 내가 잘한 일이 있다면, 당시의 여건이 좋았거나, 내 주변에 있던 분들이 모두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때 내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두서없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불민한 내 탓이다. 지난달들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은 아예 나에게 없다. “Let bygones be bygones(과거는 과거로 흘러보내라).”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그래도 마침표를 찍으면서, 서럽도록 그리운 분이 있다. 옛날 그 모습 그대로, 가족끼리 둘러앉아 어머니가 끓여 주는 아욱죽을 나누어 먹고 싶다. 지금도 아욱에서는 그 시절, 사람냄새가 안다. 구수하고 부드러워 목에 저절로 넘어가는 것 같던, 한 그릇 죽…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nc한국인뉴스 발행인 이영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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