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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오현 박사(Ph. D),
은퇴목사 (PCUSA) 겸 명예교수(Appalachian State University)
추석도 지나고 완연한 가을 날씨에 안녕하셨습니까!
그런데 가난과 전쟁으로 생긴 난민들과 이주자들은 인도주의, 특히 서방 기독교의 인간애를 시험해보는 하나님의 잣대가 되어가고, 각 나라 안에서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몰상식하고 극악 무도한 폭력 사건들이 여기 저기서 일어났다는 뉴스의 톱 기사가 수시로 방영되고 있습니다.
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개개인 삶에도 분통 터지는 문제들로 씨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자연이 인간에게 가르치는 여러가지 사태 까지 가해져 알게 모르게 힘겨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것 같이 메일 매시 매초마다 인간 모두가 나이 들어 병들고 죽어가는 현상입니다.
저 개인 삶의 예를 든다면 작년에 할 수 있었던 운동도 올해는 할 수 없는 힘 빠진 늙은 호랑이 같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삶과 죽음의 체 바퀴를 넘어 서지 못했습니다만 세계 종교들은 고통의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육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해도 초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능은, 아무리 누가 뭐래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만들어가는 인간의 두뇌일 것입니다. 우리 두뇌는 호두 알 모양으로 왼 쪽 뇌와 오른 쪽 뇌가 마디로 연결돼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온 몸을 서로 보완하고 있다 합니다.
다양한 뇌 기능이 연합하여 한 몸과 한 맘을 이루어야 하는데 뇌의 일 부분만 너무 사용함으로 다른 쪽은 알게 모르게 무시 당해 모든 인생 문제가 이런 불균형에서 시작 되는 것입니다.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원활한 인격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두뇌의 모든 부분을 함께 쓸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변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이념적인 생각에만 치우치지 않게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우리들도 변화무쌍한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차원이 높은 생각까지 하며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쪼개지만 말고 돌아가고 있는 세상으로 걸어가면서 다르게 존재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삶과 사물을 쪼개기만 하면 물건 자체를 보기보다는 왼쪽/오른쪽, 위/아래, 앞/뒤, 과거/미래, 남자/여자, 이 세상/저 세상, 나/너, 천사/악마, 혹/백, 선/악 등등으로 구분해서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쪼개다 보면 전체 사물을 보지 못하고 모르는 사이에 서로 대립 되는 부분으로 나누어 좋아하는 한 쪽 만을 선택하는 오류를 법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인공적으로 쪼개서 한 쪽만 절대화하려는 자체가 인생 문제의 시발점일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이차원의 사고 방식을 퍼뜩 초월해야 할 것입니다.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쉼 없이 돌고 도는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다 포용하고 있는 무한 차원인 대 우주를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남김 없이 모든 것을 감싸는 대 우주의 배경 없이 쪼갠 조각만 취급 하다 보면 쩨쩨한 분석적인 두뇌는 발달 할지 모르지만 분석된 억만 가지 것들을 어떻게 처리 할지 몰라 여기 저기 동아리를 만들어 꼼수만 부리는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대범한 사람이 되려면 모든 것을 우주에 비춰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위아래나 좌우로 치우침 없이 온전한 두뇌를 사용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양 손과 양 발이 한 몸 인 것을 알고 또 하늘/땅, 영원/시간이 하나 임을 얼른 깨달아 알 것입니다. 명상이나 기도를 통해 갑자기 두뇌가 호두 껍질이 딱하고 깨어질 때와 같이 퍼뜩 깨닫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는 겉 껍질이 깨지거나 벗겨지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었던 호두 알이 빛을 받아 “너”를 만나 하나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싹 트이게 된 이 순간이 인생 나이에 관계없이 영혼의 동이 트는 찰나일 것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이지 빛과 대항해서 싸우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발톱 잃은 새벽 호랑이 같은 늙은 이들에게도 더 강도 높게 웃음의 새 싹이 트인 순간일 것입니다. 이 웃음이 바로 죽음을 초월한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매일 새롭게 태어나 빙그레 미소 짓는 모습으로 승리의 삶을 사시다가 다음 달 칼럼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풍암 박 오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