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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은 친구들’ 실존인물 마피아 두목 법정에 - 범행 46년만에 친척의 밀고로 덜미 잡혀 - 80세 나이

범죄 영화의 고전 중 하나인 ‘좋은 친구들(Goodfellasㆍ1990)’ 속 마피아 두목이 46년 만에 법정에 섰다. 악명 높은 뉴욕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보난노의 하부 조직을 이끌었던 빈센트 아사로(80).

 

사진: 미국 최대 규모의 현금 강탈사건인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에 가담한 강도 마피아 두목 빈센트 아사로. 지난해 5월 23일 경찰에 체포돼 호송되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재판을 받기 위해 뉴욕 법정에 출두하여 재판을 받기 시작했다. 빈센트 아사로는 2014년 1월 23일 자신의 아들 제롬 아사로를 포함한 다른 5명과 함께 뉴욕에서 체포되었다.

 

혐의는 1978년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 공모 및 가담 그리고 1969년 폴 카츠를 살해한 죄, 그 외 도박, 사기, 매춘 등 몇몇 범죄 사실 등이다.

 

경찰은 지난해 아사로와 몇명의 관련자의 기소를 발표하면서 마침내 마피아 조직 위계 질서에 있는 증언자들의 협력으로 아사로 등에 대한 기소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기소는 뉴욕에서 마피아가 한때 흔히 그 범죄가 눈에 보이고, 보다 폭력적이었으며, 강력했던 시대의 종말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뉴욕 경찰은 밝혔다.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 은 1978년 12월 11일 한밤중에 6명의 강도가 뉴욕 JFK 국제공항의 루프트한자 항공 화물터미널에서 현금 500만달러와 보석100만 달러를 불과 한 시간 만에 강탈한 사건이다. 당시 사상 최대의 현금 강탈 사건으로 기록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 이야기는 1990년 재능있는 스콜세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큰 흥행을 거두었다. 작품성도 뛰어나 영화 비평가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영화의 심미안적 부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이들이 체포 기소된 것은 1969년에 살해된 폴 카츠 사건을 지난 2013년 재수사 하는 과정에서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동료 조직원 제임스 버크(사망)가 한때 소유했던 집에서 폴 카츠의 유골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버크<위 사진>는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 과 관련 없는 다른 살인, 강도 등의 혐의로 20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폐암으로 1996년에 옥중 사망하였다.

 

제임스 버크는 수십년 동안 뉴욕 형사들을 당황하게 한 범죄조직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인물로 영화 ‘좋은 친구들(Goodfellas)’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이 인물을 연기했다.

 

<폴 카츠의 피살 사건>

제임스 버크는 빈센트 아사로와 함께 훔친 물건을 폴 카츠의 창고에 보관해 왔었는데 이 창고가 당국의 수색을 받게되자 카츠를 수사 당국의 밀고자로 지목하고 개줄로 목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뉴욕 퀸즈의 빈 집 지하에 묻었다.

 

이후에 이곳이 도시 개발로 허물어질 곳으로 지정되자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그동안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가 2013년에 발견되었다.

 

<빈센트 아사로 체포와 기소>

 아사로는 2014년 루프트한자 사건으로 기소되자 자신은 그 대가를 전혀 받지 못했다며 거짓 증언으로 체포되었다고 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사건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각자 75만달러를 받기로 했는데 사건 이후에 살해당하거나 전혀 받지 못한 채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의 모든 돈을 마피아 루체스 가족의 조직원 제임스 버크가 챙겼다며, 자신은 정당한 몫을 받지 못했다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빈센트 아사로가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은 친척의 ‘배신’ 때문이다. 아사로의 사촌인 가스파레 발렌티(68)가 루프트한자 사건에 대한 정보를 유출해 지난해에 아사로를 살인 강도 도박 방화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데 일조한 것.

 

발렌티는 도청기를 착용하고 보난노 가문의 핵심 인물에 대한 정보를 녹취했고 지난 10월 20일 재판에 출석하여 증언하였다.

 

그는 아사로에 대해 그의 기나긴 범죄 이력 사실을 증언했다. 루프트한자 사건 뿐 아니라 마피아 가문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혈투, 다른 범죄, 무모한 범법 행위 등에 대해서 증언했다.

 

발렌티는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범행시 현장에 있던 6명 중의 하나였다. 조지 베니젤로스 FBI 담당자는 "이 '굿펠라스'들은 자신들에게 절도, 살인 등 범죄에 대한 허가증이라도 있는 줄 안다"고 말했다.

 

사건 담당 로레타 린치 검사는 "아사로는 보난노 패밀리에서 수십년간 범죄를 저질러왔다"며 "그는 늙지도 않고 잔인한 방법이 줄어들지도 않았으며 최근에도 마피아 사업을 하며 폭력을 교사했다"고 밝혔다.

 

 한편 그의 변호사는 미 사법당국이 확실치도 않은 증거에 기반하여 소설을 쓰고 있다면서 비꼬았다. 마피아 전문가 제리 카페시는 “마피아 조직의 비밀은 대부분 영원히 드러나지 않거나 밝혀지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은 서독에서 미국은행으로 이송되는 현금을 강탈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강도사건이다.

 

사진: 당시 톱기사로 보도된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

 

미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당시 500만 달러는 2015년 약 1800만 달러에 해당한다. 이 강도 사건은 당시 뉴욕 5대 마피아 가문 중 하나인 루체스 가문의 소속원인 제임스 버크에 의해서 기획되었다.

 

이의 실행을 위해서 버크는 빈센트 아사로와 함께 6명의 일당을 모아 각각 분담하여 범행을 모의하고 준비했다. 당시 미국은 독일에 근무하고 있는 미군들의 봉급과 재정 운영을 위해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독일 항공편으로 현금을 보내거나 받고 있었다.

 

독일에서 수송된 현금은 뉴욕 죤 에프 케네디 공항의 터미날 금고에 일시 보관되고 있었다. 버크의 친구 헨리 힐(후에 전향하여 FBI에 협조. 영화 굿펠라스에서 나온 헨리 힐의 실존 인물, 2012년 사망)은 마권판매업자인 마틴 크루그먼(후에 살해 당함)으로부터 이러한 정보를 듣고 버크에게 전했다.

 

마틴 크루그먼은 이 정보를 공항에서 일하고 있는 루이스 워너로부터 들었다. 워너는 크루그먼에게 도박으로 $2만의 빚을 진 상태였다.

 

워너는 전에 루프트 한자 항공 창고에서 $22,000(현재 가치로 약 $91,000)을 성공적으로 훔친 경험이 있었다. 워너는 크루그먼에게 모든 계획에 있어 조언을 해 주었다.

 

어디에 주차할 것인지 등. 그리고 범행이 발각될 경우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망가진 차를 대동하고 가서 경찰을 봉쇄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구체적인 범행의 실행 및 모의는 헨리 힐이 공항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 로버트 맥마흔(후에 피살됨)으로부터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가 현금 $500만과 $100만 상당의 귀금속을 항공편으로 들여온다는 정보를 얻고 부터였다.

 

버크는 실행팀으로 토미 디시몬(후에 갬비노 가문 조직원을 살해한 이유로 피살당함), 죠 시빌텔로 시니어, 루이스 카포라(후에 부인과 함께 살해 당함), 안젤로 시페(후에 마피아 조직간 다툼에서 피살됨), 토니 로드리게스, 죠셉 코스타, 버크의 아들 프랭크 버크(후에 마약 딜러에 의해 피살됨) 등을 범죄에 가담 시켰다.

 

시실리 출신 저격수 파올로 리카스트리는 뉴욕 마피아 감비노 가문의 대표로 참여되었다. 감비노 가문은 범죄를 승인하는 대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흑인 파넬 에드워드(후에 피살)가 운전사로 포함되었다. 계획이 끝나자 버크는 자신이 속한 뉴욕 마피아 루체스 가문의 부두목 폴 바리오에게 보고했다. 폴 바리오는 자신의 아들 피터를 보내 훔친 물건을 가져오도록 했다.

 

비네 아사로(감비노 가문의 공항 구역 두목)도 감비노 가문의 구역에 속하는 곳에서 범행을 하는 것을 허용하는 댓가를 받게되어 있었다. 이들은 헨리 힐이 전해 준 공황 터미날 건물 설계도면을 보며 범행 예행 연습도 했다. 문제는 금고가 있는 방으로 가는 도어 키를 가지고 있는 경비원이었다. 이들은 그 경비원이 여자에 약하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들은 그 경비원에게 술 대접을 하고 한 모텔로 유인했다. 모텔에는 남성을 홀리는 미모의 매춘부가 대기하고 있었다.

 

경비원은 샤워를 하기위해 옷을 모두 벗고 욕실에 들어갔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헨리 일당들은 경비원이 차고 있던 열쇄 꾸러미를 몽땅 들고 복사를 했다. 그들은 어느 것이 금고 열쇄인지 몰랐기 때문에 열쇄 꾸러미에 달린 키 전체를 복사했다.

 

그리고 다시 열쇄 꾸러미를 경비원의 벗어논 옷가지에 갖다 놓았다. 물론 경비원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밤 11시 40분,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범행 실행>

범행 당일 밤 이들은 버크의 집에 모였다. 빈센트 아사로도 여기 모임에 참석했다. 아사로는 이들에게 “각자 맡은 일을 확실히 해다. 배신이 없길 바란다.” 라고 당부했다.

 

 버크의 지시에 따라 행동대원들은 검은 스키복에 장갑을 끼고 훔친 밴을 운전하여 케네디 국제공항 터미날에 주차했다. 물론 차 넘버판은 가짜로 교체하였다.

 

사진: 1978년 12월 13일 범행에 쓰인 밴이 발견되어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몇 마일 떨어진 창고안에서는 빈센트 아사로와 제임스 버크가 차를 탄채 기다리고 있었다.

 

1978년 12월 11일 새벽 3시 12분. 공항 화물 보관소 직원 훼일런은 주차장에 이상한 차량이 주차된 것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그 때 괴한 두명이 권총으로 훼일런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타고온 밴안으로 쳐 넣었다. 강도들은 훼일런에게 그의 가족이 어디 있는지 다 안다면서 겁박을 주었고 훼일런은 협조하는 뜻에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들 강도 6명은 워너에게 받은 열쇄로 문을 열고 회랑을 따라 안에 있던 두명의 직원을 제압했다. 이 때 몇몇의 경비 직원들이 식당에 있었는데 강도들은 이들을 모두 총으로 겨누며 위협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지켰다.

 

이들은 피흘리는 훼일런을 보여주며 만일 말을 듣지 않으면 같은 꼴이 될 것이라고 겁박했다. 강도들은 터미날 창고 수석 책임자인 죤 무레이를 협박하여 금고의 비밀번호 조합을 알고 있는 아이리히와 인터폰으로 통화하게 하여 문제가 있으니 카페테리아로 오라고 유인했다.

 

강도들은 카페테리아로 유인해 들어온 아이리히를 앞세워 이중으로 된 금고 방 문을 열었다. ‘ 나중에 아이리히의 증언에 의하면 강도들은 금고 시스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방을 통과해야 하는데 하나의 문을 열으면 반드시 그 문을 닫고 다음 문을 열도록 되어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경찰에 경보가 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스파레 발렌티는 지난 10월 20일 뉴욕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 했다. “토미 디시몬이 금고 안 셀브에 있는 박스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던지고 발로 뭉겠죠. 박스안에서 노란색의 뭉치가 보였습니다.

 

디시몬은 손을 집어 넣어 두 덩어리의 돈 다발을 꺼냈습니다. 한 덩어리 마다 백달라 짜리 지폐로 $125,000이었습니다.

 

디시몬은 흥분되어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50 다발을 모두 가져가자.’ 그리고 우리는 금괴,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등 다른 보석류가 들어있는 서랍을 함께 차에 실었습니다.” 이들은 $600만의 현금과 귀금속을 가지고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이 때가 새벽 4시 16분이었다.

 

나오면서 이들은 감금다안 터미날 직원들에게 4시 30분 후에 전화를 해도 된다고 하고 떠났다. 당시 기록으로 이날 4시 30분까진 아무런 전화 통화 기록이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떠난 시각과 최초의 신고 시각인 4시 30분 사이가 중요했다고 했다. 즉각 신고를 했더라면 90초 이내에 공항 경찰에 의해 공항 전체 일대가 봉쇄? 수 있기때문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온 범인들은 뉴욕 블루크린에 있는 한 차고에 갔다. 여기엔 범행을 기획하고 총지휘한 제임스 버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당은 여기서 강탈한 현금을 다른차에 옮겨실었다. 그리고 빈센트 아사로의 사촌인 가스파레 발렌티의 뉴욕 블루클린 집 지하에 옮겼다. 며칠 후 아사로와 다른 일당은 훔친 돈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보관했다. 그리고 발렌티와 다른 가담자들에게 소액의 대가가 주어졌다. 그렇지만 일부는 받지 못했고 살해 당했다.

 

<추적>

완전 범죄 같았던 이 사건은 한 가담자의 실수로 경찰에 꼬리가 잡혔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은 당초 뉴저지의 한 폐차장으로 끌고 가 범행에 사용된 넘버판과 함께 압착되어 고철 덩어리가 되기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임무가 일당중 한 명인 파넬 에드워드에 주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차질이 생겼다. 젊은 에드워드는 범행의 성공에 들떠 폐차장으로 가는 대신 걸프렌드 아파트로 방향을 틀었다.

 

일이 틀어질려면 엄친데 덮친격이 되어야 한다. 에드워드는 걸프렌드 아파트 주차장의 주차 구역에 주차를 하지 않고 주차 구역 밖에 무단 주차를 하고 여자친구 아파트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술마시고 마약을 하며 즐기다 잠에 들었다.

 

다음날 폐차장으로 갈 생각이었다. 다음날 아침 에드워드가 잠자고 있을 때 경찰이 순찰을 하다가 주차 구역 밖에 주차된 이상한 차량을 발견하고 추적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 차가 범행에 사용된 차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에드워드는 다행히 이 아파트에서 아무런 제지도 없이 빠져나갔다.

 

경찰은 이 차량을 실마리로 해서 제임스 버크가 범행을 총 지휘했다고 추정하고 증거 수집을 위해 그의 감시에 들어갔다. 도청 장치 등 감시를 했으나 결정적 증거를 잡지 못했다. 결국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제임스 버크는 전혀 기소되지 않았다. 사건 후 강탈 당한 돈은 전혀 발견되거나 회수되지 못했다. 루프트한자 사건 피해액 상당부분의 행방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앤서니 드스테파노 뉴욕 범죄전문 기자는 "그 돈들의 일부는 보난노의 라이벌인 루체스 패밀리와 버크에 돌아갔지만 나머지의 행방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5년 4월에 작가 로버트 스베르나는 보나노 가문의 일원이었던 도미니크 키칼의 협조로 쓴 그의 저서 “루프트한자 항공 강도 사건의 미스터리” 에서 훔친 돈은 버크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했다.

 

후에 버크의 두 딸에 금고의 키가 주어졌는데, 보나노 가문의 두목급인 남편과 함께 다른 두목급에게 전해져 도박 등으로 다 썼다고 썼다. 뉴욕 최대의 현금 강탈 사건인 이 사건은 이후 수십년 동안 풀리지 않았다.

 

<범행 가담자의 처형>

루프트한자 사건에 가담했거나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1978년 12월~1979년 6월 사이에 무려 9명이 피살되었다. 일부는 머리뒤에서 총격을 가하는 처형식으로 살해되고 일부는 개 목줄로 교살되기도 했다. 헨리 힐의 증언에 의하면 버크는 운전사 에드워드의 실수로 꼬리가 잡힐 까 매우 예민해졌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는 일당들을 모두 살해 하기로 맘 먹었다.

 

그에 따라 버크가 루프트한자 강도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증인도 증거도 남지않았다. 그 첫 희생자는 운전사 에드워드였다. 에드워드는 범행 일주일 만인 1978년 12월 18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토미 디시몬과 안젤로 시페에게 살해되었다. 토미 디시몬과 안젤로 시페도 얼마 후 살해당했다.

 

이후 사건 발생 6개월 안에 대다수의 사건 관련자가 피살되었다. 일부는 뒤에서 권총으로 머리를 가격한 처형 방식으로 살해되었다. 몇몇은 아직까지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 모두가 제임스 버크가 직접 또는 킬러를 고용해 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10월 20일 재판에서 드러난 증인들에 의한 새로운 사실들> 발렌티의 증언에 의하면 아사로는 자기 몫으로 챙긴 약간의 돈으로 도박, 주택, 보트, 고급차 구입 등에 썼다.

 

어느날 발렌티는 마약 딜러와 아사로, 버크, 버크의 아들 프랭키 버크가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을 보았다. 후에 아사로의 아들이 발렌티의 현관 문을 노크했다. 그는 발렌티에게 구덩이를 파라고 말했다. 이어 아사로와 버크 그리고 다른 사람이 차를 몰고 왔는데 발렌티는 마약 딜러가 살해당한 것을 보았다.

 

<발렌티는 왜 사촌인 빈센트 아사로를 배반했나?>

발렌티(68)는 그의 사촌 아사로와 뉴욕 블루클린에서 서로 길건너에 살고 있을 만큼 친밀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30년이 지난 2008년에 삐걱거리게 되었다.

 

사진: 가스파레 발렌티(왼쪽)와 빈센트 아사로(오른쪽)의 다정한 한때. 발렌티는 아사로의 기소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증언을 하였다. 그는 빈센트 아사로가 마피아 가문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 등에 관여되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돈에 쪼달리던 발렌티는 아사로가 속해 있는 마피아 보난노 가문의 한 사람에게 아사로 승낙없이 $2,000을 빌렸다. 그리고 이 때문에 아사로의 분노를 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결심했다. 그는 “나는 살만큼 살았어요. 그리고 지쳤어요. 범죄계에 빠져 살아온 날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이제 단지 나의 가족들을 돌보고 싶었어요.” 라고 말했다.

 

그는 당초 강도 마약 등의 혐의로 20년 형을 받을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발렌티는 철저하게 증언 준비를 했다. 2010년부터 아사로와 통화하면서 모든 것을 녹음을 했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2014년에 아사로의 체포와 기소에 이르게 했다.

 

<영화 줄거리>

이 사건은 후에 두개의 TV 드라마로 극화되었다. 각각 ‘The 10 Million Dollar Getaway’와 ‘The Big Heist’ 이다. 또 영화 Goodfellas의 소재가 되었다.

 

 

영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일랜드계 이탈리아인 헨리 힐(레이 리오타)와 토미(조 페시)는 열 세살에 마피아에 입문해 갱인 지미(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트럭이나 공항 화물을 훔치는 일을 한다.

 

결혼 후에도 마피아 생활을 계속하는 헨리는 이제 조직에서도 안정된 위치와 경제적 여유를 갖는다. 어느날 헨리는 지미와 함께 폴리의 마약 심부름을 하다 FBI의 추적을 받고 체포되지만 곧 풀려난다.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헨리와 지미는 공항터미널 사건을 모의해 현금 6백만 달러라는 엄청한 돈을 훔친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혈안이 된 지미는 모의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죽이고, 토미는 마피아 조직에 가담했다가 살해당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헨리마저 마약거래로 경찰서에 잡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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