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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아이오와 예비선거 중도성향 후보 승리- 민주당 힐러리와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승리

그러나 초 박빙 접전으로 향후 전망 불투명 - 극좌(샌더스) 대 극우(트럼프)의 대결 가능성 도외시 못해

 

샌더스의 급부상 눈에 띄어

 

 

공화당에선 테드 크루즈 후보가 약간 여유있게 1위에 오른 반면,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후보가 사실상 무승부를 기록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레이스의 개막을 알리는 1일 아이오와 공화당 코커스(당원 대회)에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46)이, 민주당에선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승리했다. 크루즈는 28%의 득표수를 얻었고 도널드 트럼프는 24%의 득표로 2위를 차지했다.

 

<지지자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힐러리>

 

그러나 대의원 수 확보는 크루즈가 8명, 트럼프가 7명을 얻어 박빙의 차이를 보였다. 민주당 코커스에선 힐러리가 49.9%, 샌더스(75)가 49.5%를 얻어 박빙의 차이를 보였다.

당원 득표수는 힐러리가 700명, 샌더스가 695명을 얻어 단 5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유세중인 공화당 테드 크루즈>

 

대의원 수에서는 힐러리가 23명을, 샌더스가 21명을 얻었다. 공화당 코커스에선 아이오와주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크루즈에게 몰표를 주며 승리를 안겨준 것으로 분석된다.

 

아이오와 코커스에 대비해 그동안 집중적인 풀뿌리 운동을 벌여온 크루즈는 "첫 출발지에서 승리해 기분이 좋다"면서 "이 탄력을 이어가 경선에서 승리를 거머쥐겠다"고 했다. 최근 아이오와 설문조사에서 1위로 급부상했지만 결국 2위로 밀린 트럼프는 "테드 크루즈에게 축하한다"며 "솔직히 지난해 처음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 아이오와에서 톱10에도 들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2위에 올라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크루즈처럼 역시 쿠바계인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의 '깜짝 급부상'도 인상적이었다.

 

당 지도부에선 '아웃사이더'들인 트럼프와 크루즈 돌풍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대항마'로 루비오를 최종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루비오는 당초 10%대의 득표율이 예상됐으나 트럼프에 불과 1% 포인트 뒤진 23%의 득표율을 기록해 향후 후원금 모금에 큰 탄력을 받게됐다.

 

루비오는 "다들 오늘 결과에 놀란 모습이지만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면서 "여세를 몰아 반드시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되겠다"고 했다. 최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이긴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최종 대선후보로 지명되지 못했다.

 

지난 2008년에는 마이크 허커비, 2012년에는 릭 샌토럼이 각각 아이오와에서 승리했으나 향후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번 경선에서도 크루즈가 공화당 최종후보로 선택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는 게 중론이다.

 

 때문에 결국 공화당 경선이 트럼프와 루비오의 맞대결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주당 코커스에서는 힐러리가 힘겹게 이겨 향후 샌더스와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특히 샌더스는 자칭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로 대학 무상 교육, 전국민의료보험지원, 부자 증세 등 사회주의적인 정책으로 젊은층에 폭발적 지지를 얻고 있어 힐러리의 대세론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그의 정책 때문에 전통적으로 중도적인 미국민의 시각에선 샌더스는 극좌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극우로 평판받고 있는 트럼프가 맞붙을 경우 미국의 사상 초유의 좌 우 대결 속에 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편, 다음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오는 9일 실시된다.

 

<2008년 대선 예비선거의 경험>

 

 2008년 1월 힐러리 클린턴은 거의 모든 전국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힐러리 본인은 물론이고 민주당 지도부나 많은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은 힐러리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경력으로 보나 자금력으로 보나 민주당에서 힐러리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예측과는 달리 전개됐다. 2004년 일리노이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정치 초년병 버락 오바마가 무서운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흑인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느냐’는 일부의 편견은 오바마의 뛰어난 대중 연설과 카리스마에 의해 ‘이제야말로 흑인 대통령이 나와야 할 때’라는 대세론으로 바뀌었다.

 

특히 ‘변화’와 ‘희망’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젊은 층과 구태의연한 클린턴 이름에 식상한 유권자들을 열광시켰다. 이런 유권자들의 마음은 그해 첫 대통령 선거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유감없이 나타났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제치고 1등을 한 것이다.

 

여기서 힐러리는 2등자리도 존 에드워즈에 내주고 3등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올렸다. 그 다음 열린 뉴햄프셔 예선에서는 2% 차이로 힐러리가 간신히 이기기는 했으나 ‘힐러리 대세론’은 자취를 감췄다. 결국 그 해 6월 힐러리는 패배를 시인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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