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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느끼고, 울음엔 귀를 기울여야 답을 찾지 않을까?
지난 주에 미국 식약청이 몇몇 진통제 (pain killer)의 포장에 “남용, 탐닉, 과용, 죽음의 위험”을 경고하게 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너무 많이 듣다보니 귀에 익은 진통과 아픔을 죽이기(Pain Killer)를 다시 생각해 보다,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진통은 아픔을 억누른다는 뜻이니, 진압해야 할 대상이고, 살충제, 살균제, 멸균제 들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Killer 를 아픔을 적용하여 쓰고 있으니, 아픔을 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 아픔이 억눌러 죽여할 대상일까요? ‘앗 뜨거워’, ‘앗 따가와’ 하듯이, 아픔은 내 피부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뜨거운 것을 만졌거나, 피부거죽이 찔리거나 헤질때, 더 큰 상처를 피하라는 경고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다쳐서 아픔을 느끼게 하는 경우는 많고, 때론 몸속의 핏줄, 신경, 내장 곳곳에서 온전한 흐름이 방해를 받으면 아프게 됩니다.
몸과 마음, 나와 이웃, 사람과 자연, 사회가 흐르듯이 통(通)하면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결과를 위해서건, 나쁜 연유에서건, 천둥과 번개가 치듯, 태풍과 폭우가 오듯, 흐름은 어지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지럽혀지고, 막힌 흐름이 세상의 종말을 기약하지 않듯이, 막힘(不通)을 이겨내기 위한 다른 모양의 흐름이 뒤를 잇습니다.
따가움과 뜨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다친 곳이 아물기 시작하고, 데인 곳이 욱씬욱씬하면서 피를 몰아와 조직을 재생시킵니다. 이것이 아픔의 기본이라면, 아픔은 정직하게 느껴야 하고, 그 아픔의 울음은 귀를 기울여 들어서, 뭐가 찔렀고, 뭐에 데였는지 알아서 피하고, 다시 되풀이 하지 않으려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얽히고 설킨 아픔의 실타래를 단번에 풀려고 하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안으로부터 찾는 치유 (힐링, Healing)가 아니라 밖에서 주는 치료(Treatment) 에 의존하면, 내몸과 이웃의 마음이 통하기 쉽지 않듯, 불통(不通)은 계속되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아픔 (痛)도 이어집니다.
지금 계속되는 아픔의 문제와 그 아픔을 진통제로 억누르려고 하고, 페인 킬러(Pain Killer) 죽여버리려는 오늘 우리들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때입니다. 아픔도 울음도 나를 위한 느낌이요, 감정을 담아 뜻을 전하는 행동입니다.
내 손발이, 내 머리가 아플때, 아이가 울때, 내 감각을 멍하게 하여 안 느끼려 하지 마세요. 아이의 입을 틀어 막거나 여러분의 귀를 막으려 하지마세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무엇이 아프게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런 답을 함께 찾아줄 의사를 수소문하세요. 우는 아이와 이웃의 울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주세요. 아픔을 이겨나갈 수 있는 몸으로 가꾸어 섬겨준다면, 몸도 여러분이 활력있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섬겨주리라 믿습니다.
불통(不通)의 아픔(痛)으로부터, 아픔에서 자유로운 (不痛) 활력으로 거듭나는 생활은 아파할 줄 아는 나(이웃)를 가엾게 여기며, 왜 아프니 물어보고 듣는데서 부터 시작하면 어떻겠습니까? 노스캐롤라이나 한국 교민들 모두가 진압과 죽임의 치료가 아니라 존중과 경청의 치유를 찾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