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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설 수도, 양치질 할 수도, 가려운데 긁을 수도 없게 되고 말도 못하게 되자...
약 복용후 4시간 만에 숨 거두어
사진: 베치 데이비스 (가운데 휠 체어)가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이별하기 위한 언덕에 가기 위해 한 친구의 테슬라 자동차에 타고 있다.
눈부신 서든캘리포니아의 햇살이 하루의 임무를 다 한듯 붉은 노을을 뿜으며 산속으로 퇴장하고 있었다.
지난 7월 24일 오후 6시45분.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석양이 산 자락에 걸쳐 있다. 베치 데이비스(41·여)는 물끄러미 석양을 바라보았다.
즐겁고 떠들썩했던 파티는 끝이 나고 있었다. 죽음은 슬픈 것인가. 저 석양은 아름다운데…. 삶은 단 한 번 뿐이고,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그의 마음속에서 스며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하이(Ojai) 소도시에 사는 화가 베치 데이비스는 2013년 난치병인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병은 악화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기능을 잃어갔다. 최근엔 얼굴 근육 정도만 간신히 움직일 정도였다.
서 있을 수도, 제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지난 6월 캘리포니아에서 안락사법(Aid-In-Dying Law)이 통과되자 데이비스는 조용히 자신의 최후를 계획했다.
캘리포니아는 기대 생존 기간이 6개월 이하이고, 스스로 약물 복용을 결정할 능력이 있는 환자에 한해 합법적으로 의사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데이비스는 동생 켈리에게 마지막 파티를 부탁했다. 가족이 보고 싶었고, 친구가 보고 싶었고, 재잘거림이 듣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
데이비스는 7월 초 가까운 친구와 친척들에게 이메일 파티 초대장을 보냈다. 특별한 드레스코드도 없고,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파티였지만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 “절대 파티 주인공 앞에서 울면 안 된다(No Crying)” 는 것.
데이비스가 직접 준비한 '생애 마지막 파티'였다. 7월 23∼24일 이틀에 걸친 파티에 미 전역에서 30여 명의 친구들이 초청되어 왔다. 뉴욕에서, 시카고에서 그리고 캘리포이나 인근에서. 삶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자리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춤과 노래, 담소, 웃음 소리가 재잘거렸다.
베치는 오랜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반겼다. 한 친구는 첼로를 가져와 연주했고, 한 남자 친구는 하모니카를 불렀다. 칵테일도 있었다.
데이비스는 좋아하던 동네 피자집에서 사 온 피자를 나눠 먹으며,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 “댄스 어브 리얼리티” 도 함께 봤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옷 중에 친구들에게 어울릴 만한 옷도 나누어 주었다. 친구들은 유쾌한 패션쇼를 벌이기도 했다. 파티에 참석한 친구들은 약속처럼 그녀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베치를 꼭 안아줬다. 두손을 맞잡았다.
눈과 눈을 마주보고 한참을 있었다. 파티가 끝날 무렵 친구들과 작별의 키스를 나눈 데이비스는 한 친구가 가져온 테슬라 자동차를 타고 언덕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석양을 바라보며 가족과 간병인,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에 약물을 투여받았다.
루게릭 진단 후 2013년 일본으로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여행에서 산 기모노를 입은 채였다. 코마 상태 (의식이 없는 상태) 에 들어간지 4시간 후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을 지켜본 동생 켈리는 "우리 모두는 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해왔는지 안다.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한 언니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전했다. "힘든 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힘들다. 눈물을 참기 위해 여러 차례 언니 앞을 떠나야 했다"며 "그렇지만 파티에 모인 사람들 모두 언니를 이해했고 언니의 결정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베치 데이비스가 선택한 건 죽음의 슬픔보다, 기쁜 이별이었다.
미국에서는 1997년 오리건 주가 안락사를 처음 허용한 데 이어 워싱턴, 버몬트, 몬태나 등 5개 주에서 말기 환자에 대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한다는 취지지만, 섣부르게 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인 데다 빈곤층 환자가 치료비 부담 때문에 자살로 내몰릴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리: nc한국인뉴스 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