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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오현 목사 칼럼; 웰빙=잘 계셨습니까!

박오현 목사

 

흩어져 사시는 독자 여러분! 지난 한 달 동안도 댁내 두루 잘 계셨습니까!

잠시 짬을 내어 저의 칼럼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께 다시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4 월이 성큼 다가 왔습니다.

 

봄맞이 나들이가 한창인 계절입니다. 이른 아침에 뒤 뜰로 나가면 이따금 참새 한 마리가 나무 가지에 앉아 '짹짹 지르르..' 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그때마다 저도 "안녕"이라고 답례로 보냅니다. 겨우내 잠자면서 쉬고 있었던 모든 자연이 우리 눈에 현저하게 새 생명으로 약동하고 있음이 보입니다.

 

우리 동네에 피었던 노란 수선화는 본디의 빛깔의 윤기가 사라져 볼 품이 없이 떨어 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잎보다 먼저 피었던 개나리 꽃도 트고 있는 잎사귀에 밀려 다 떨어졌습니다. 뿌리로 물을 뽑아 올리는 장미의 대 줄기가 생기가 넘쳐 짙푸른 초록 색깔로 변하고 동시에 물먹은 잎까지 초록 색깔이 묻어있는 자주 색깔로 변해가면서 마침내 푸른 색깔로 활기차게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솔 잎에서 뿜어내는 꽃가루는 저의 눈을 간지럽게 하면서 못 견딜 정도로 눈물로 채워주기 시작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한 겨울 동안 잿빛으로 변했던 활엽수 나목들은 횐 빛, 보라 빛, 자주 꽃 등등으로 바꾸어 입더니 그 아름다웠던 꽃을 떨치면서 지금은 연두빛 잎으로 단장 하면서 앞으로는 푸르디 푸른 색깔로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땅에서 잠자던 금잔디도 파릇파릇한 색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대 이렇게 형형 색색의 생명의 빛깔을 뿜어내고 있지만 왜 지금까지 검정 풀이나 검정 꽃은 눈에 보이지 않는지 알 것 같다 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아직 찾아내지 못해서 그럴까 아니면 저의 눈이 밝지 못해서 그럴까 생각하면서도 "검은 꽃은 왜 보이지 않는가?" 의문을 또 다시 품어 봅니다.

 

하얗게 내린 눈도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불에 타다 남은 검정 숯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동물들도 자기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자기들 취향대로 절벽, 숲 속, 아니면 나무 가지들을 가려서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동식물과 차원이 다른 우리 인간들도 땅을 갈아 농사를 짓기도 하고 돈을 버는 일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렇게 바쁘지만 동식물이 어떻게 자연 속에서 생존하고 살아가는지 한번 배워보는 것이 어떠할까 생각합니다.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자연에 귀를 기울이면 무엇 보다 먼저 자연을 거슬리는 인간 욕심을 좀 내려놓고 인생의 봄을 맞이해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가까이에 있는 자연과 광대 무변한 우주를 관조 하다 보면 자연의 계절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조금은 터득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자연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을 더 잘 믿겠다는 과욕으로 그 분을 앞세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난의 겨울을 억지로 피하려 하다가 몸/맘을 지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인생의 엄동 설한의 힘든 나날을 감수하다 보면 인류를 위해 인생의 봄을 맛보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시련의 기간 임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겨울인 고난을 피하러 하는 대신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단련으로 알고 자연의 때를 따라 참고 기다리는 능력을 터득하는 길이 결국 행복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대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면 주저함 없이 하지 않는 것이 인생의 행복을 누리는 첩경이라 생각합니다.

 

견디다 못해 죽을지라도 하늘나라에 간다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즐거워지니 이것도 행복일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의 때를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참고 견디기만 할 뿐만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해 능동적이며 자연스러운 행동을 취한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예를 든다면 인간이 만든 식사 시간표에 얽매임 없이 배 고프면 먹고,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물을 마시고, 피곤하면 언제든지 잠자고, 아프면 앓아주는 것입니다. 인공적인 시간표에 따라 자동 기계처럼 행동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몸이 꼭 필요할 때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잠자기도 하고, 아파할 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존을 위해서 자연의 때를 따라 몸/맘이 하나가 되어 기계가 아닌 자연처럼 자발적인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스트레스 없이 자유롭고 참된 삶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이란 것은 자연의 때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고 가고 그리고 잠깐 살고 갈 뿐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인간의 욕망이나 욕심으로 인하여 배 고픔 없이 먹는 음식, 목 마름 없이 마시는 음료수, 피곤함 없이 자는 잠, 피할 수 없는 아픔을 피하려고 먹어 대는 화학 약품과 필요치 않는 과욕 운동 등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결국 생명수에 독이 되는 구정물만 일으킬 확률이 많을 것입니다. 삶의 독소가 되는 구정물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병적인 과욕과 부요는 스트레스를 높게 하기 때문에 행복 지수는 점점 낮아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사는 것보다 필요한 대로 사는 것이 사람 구실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인 호흡과 기력으로 살아가면서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필요한 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을 때에, "내"가 하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 달 칼럼에서 다시 뵐 수 있도록 삶의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 주워진 삶의 삿대와 노를 즐겁게 저어가시면서 댁내 두루 잘 계시길 빕니다. 풍암 박 오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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