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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달 어느 날인가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 보니 초승달이 앙상한 나무 가지 사이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냥 청청한 하늘에 홀로 떠있는 달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서 한참 물끄러미 나무 가지 사이에 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는 새로 갈아입은 초록색 잎 사이에서 숨바꼭질 하는 달을 바라보니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뒤 뜰에 장미 꽃망울도 이제 활짝 열려 붉은 빛깔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칼럼을 읽어 주신 독자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칼럼을 쓸 때마다 일정한 규격이나 특정한 형식 없이 한 달 동안 가졌던 여러 모양의 생각이나 느낌 등을 어떤 특정한 문학 방식(genre)에 구애 받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써왔습니다. 이렇게 적은 글을 굳이 문학 양식으로 말하라면 "수필"이라 할 수 있겠고 아니면 제가 가졌던 느낌이나 생각한 것들을 짤막하게 표현한 "비평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칼럼의 초본을 쓴 후에는 가급적이면 최신 철자법에 맞추어 쓰기 위하여 독자 한 분이 저에게 선물로 주신 "최신 동아 새 국어사전"으로 확인한 후에 "NC 한국인 뉴스" 발행인에게 글을 보내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글을 짓는 햇수로 다음 달이면 만 8 년이 되어갑니다.
지금까지 저의 수필 칼럼을 읽어 주신 독자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미국 대학교 문과 대학에 속한 종교 철학과 교수로서 34 년 넘게 봉직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철학적 사고 방식이 제 칼럼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동시에 교수로 있으면서도 이례적인 목회생활을 25 연간 했었기 때문에 철학 냄새 풍기는 글씨에 기독교 신앙의 향기가 묻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알게 모르게 살아가는데 각자 자기 나름대로 삶의 근본 뜻을 생각해보는 철학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상인들은 돈을 버는 생각이 그들의 철학일 것입니다. 더욱이 철학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철학일 것입니다.
이렇게 철학은 별것 아닌 피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것입니다. 신문 발행인이 계속 허락하신다면 앞으로도 생각하는 믿음을 가슴에 품고 계속 글을 쓸 것입니다. 저의 기독교 신앙은 저의 어머니 뱃속부터 받아 가지고 나온 예수를 향한 소박한 믿음입니다.
대학에서 가르쳤던 종교 철학이 소박한 믿음을 더 깊고 높고 넓게 해서 시야가 좀 더 넓어졌을 뿐입니다. 이 두 요소가 저의 수필을 짓는데 큰 버팀대 작용을 하면서 제가 생각한 것들이 삶에 뿌리를 내려 성장할 수 있도록 믿음이 밑거름 역할을 해왔습니다.
생각 없는 믿음은 앵무새처럼 기계적으로 하는 말에 꾀여 넘어가기 쉽습니다. 생각이 얼마나 믿음에 필요한 것 인지를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생각 없는 믿음이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하여 상식이 아닌 말이나 행동을 조장 시키면서 미신적인 신앙에 빠져들게 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이 세상을 생각 없이 둘로 갈라 놓고 반쪽의 삶만을 거룩 하다고 강조하다가 결국 이중 인격, 가정 파탄, 직장 생활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위 "성지 순례"란 말 자체도 생각 없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 입니다. 그냥 "예수님의 고향에 간다."라고 말하면 좋으련만 억지로 "성지 순례 간다" 란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이외에 어디에 거룩한 곳이 따로 있겠습니까? 웅장하고 거대한 성당이 거룩한 곳이라 하지만 그것들은 그냥 문화 유산일 뿐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가만히 하늘을 우러러 보면 그 자리가 바로 성지일 것입니다. 기도나 찬양을 큰 소리로 하는 것, 교회에 가는 것, 돈을 많이 바치는 것들은 믿는 사람들의 선택일 뿐이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아닌 것을 생각 해보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질보다 양을 강조하게 되면 거짓 신앙일 확률이 많습니다. 물론 믿음 없는 생각도 생동감이 없는 현실 도피적인 탁상공론일 가능성이 많겠지만 생각과 믿음은 둘이 아니라 오직 하나 뿐인 삶의 양면이라고 생각하면 더 올바른 믿음과 믿음직스런 생각이 될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한가지 더 생각해서 알게 된 진리는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있는 치유 은사도 일시적인 연극이나 표적일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세상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병을 완전히 퇴치할 수 없었습니다.
특정한 병의 유무나 증세를 살피고 진찰을 하면서 일시적으로 돕는 역할을 하겠지만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영원한 철학적 진리를 뒤엎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신앙인이 온전히 받아드릴 수만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 세상을 둘로 갈라 놓았던 잘못된 믿음 때문에 괴로워 했었던 삶을 새삼스럽게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6 월 달 칼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풍암 박 오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