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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생활보다 더 끔찍” 최장섭 옹의 '군함도 3년10개월'

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군함도> 가 누적관객수 642만3206명을 기록했다.

 

한편 한국일보는 군함도의 실재 징용자를 만나 실화 이야기를 게재했다.

 

다음은 한국일보 기사 내용 발췌 [지난 8일 대전의 자택에서 만난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자 최장섭(90)씨는, 군함도에서 지내던 3년 10개월이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고 말했다.]

 

 

1943년 2월21일은 최씨가 열여섯의 어린 나이로 군함도에 끌려간 날이다. 고향인 전북 익산(옛 이리)의 작은 면에선 그를 포함해 5명의 소년이 ‘전시 동원 노무자’란 이름으로 징용됐다.

 

동네 주민들은 ‘이렇게 어린 아이들까지 데려가야 하냐’며 항의도 했지만 일본인과 조선인 부역자들이 섞인 모집담당자들의 입에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바닷속 비좁은 탄광에서 일하기 용이한 어린 소년들만 색출해냈던 검은 속내는 숨긴 채 말이다. 최씨가 도착한 장소는 하시마(군함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최대 군수기업인 미쓰비시가 탄광을 운영하던 곳이었다.

 

소년들은 이 곳에서 옷과 소지품을 비롯해 모든 것을 빼앗겼다.

 

굴욕적인 일본식 이름 ‘야마모토(최씨의 일본식 발음)’마저 빼앗아간 일본 관리자들은 그를 ‘로쿠센이찌햐쿠고(6105)’ 라는 번호로 불렀다. 영화 내용의 실재를 묻는 기자에 최씨는 일본군에게 대항하거나 (그랬다간 다 죽는다) 탈출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조선인의 시체를 한데 모아 불태우는 장면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하시마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이 많은데 일본인들은 그 시체를 거둬 잘 정리한 뒤 다 한국으로 보냈다”며 “그거 하나는 참 잘 했다”고 회상했다.

 

아래는 한국일보 보도 기사 링크

http://www.hankookilbo.com/v/80cf25435e634ac596349010b91937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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