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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오현 은퇴 목사
9 월 달 입니다.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예외 없이 서로 미워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끼리끼리 당 짓기도 하고, 시기도 하고, 따지기도 하고, 속고 속이면서 여러가지 옳지 않고 원치 않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위에 열거한 것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완벽하게 실천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선진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근본적인 인생 문제입니다.
“선”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오히려 원치 않는 “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일본 강점기에 살았던 윤 동주는 이런 실존적인 인생 문제로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특히 재물, 권력, 명예 등을 탐하고 누리고 싶어 “부도덕”한 삶을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면서 아니면 불가능한 것을 모르고 자꾸 가능한 것처럼 노력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하면서 합리화하려는 짓을 부끄러워 할 줄 알고 더욱이 스트레스를 해소해보려고 계속 괴로워한다면 인생 문제의 엉클어진 실마리를 풀 첫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참 평화를 위하여 엉클어진 인생 실마리를 끝까지 풀려하는 다음 시도는 “선”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오히려 원치 않는 “악”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은 상아탑에서 철학을 한답시고 손을 턱에 괴고 앉아 생각에 잠기는 탁상 공론의 질문이 아니고 더욱이 여기 저기 선생들을 찾아다니며 묻는 질문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만 던지는 실존적인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수시로 끊임 없이 물어야 할 해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다른 질문과는 달리 둘로 찢어진 “나”가 누구인가?란 질문은---질문이 저절로 사라져 해소될 때까지--- 끊임 없이 잠잠히 물어야 하는 물음입니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나’가 도대체 누구인가?” 아니면 “어찌할꼬?”란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질문이 생명(삶)과 하나 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무엇보다 먼저 나타나는 현저한 증상은 지금까지 내뱉은 실존적 질문이 눈녹듯이 사라 없어지는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논리적인 이성이나, 믿을 수 없는 감정이나, 강철 같은 의지가 질문을 조종하려 들거나 아니면 그런 것들에 질문이 조종 당하기 쉬웠지만 질문이 사라진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저 한결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삶은 논리나 감정이나 의지가아닌 삶 자체를 경외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생명에 질문이 접목되기만 하면 지금까지 괴롭혔던 실존적인 질문이 눈 녹듯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과거에 가지고 싶어했던 물질의 향기에 더이상 취하지 않게 되고 권력 맛에 연연하지도 않게 되면서 “나”를 존재하게 한 생명 자체에 대한 감탄사로 변할 것입니다.
감사에 넘치는 “나”는 질문했던 “나”와는 달리 우리 주위에 "나"처럼 죽어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향한 측은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입니다.
계속 윤 동주는 아래와 같은 시로 끝마금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 동주 -
다시 강조하면, 실존적인 질문이 생명에 바르게 잘 접목 되기만 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 자체의 뿌리로 부터 샘솟듯 올라오는 생기로 날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을 때에 하면서 살아가는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전과 같이 인생 살이에 많은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겠지만 삶 자체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객관적인 권위나 욕망에도 구애 됨이 없이 생명이 알려주는 그대로 행동을 할 것입니다. 일할 때 일하고, 모기에 물리면 그냥 긁고, 아프면 아파하고, 고프면 먹고, 목 마르면 마시고, 피곤하면 쉬거나 자는 것 뿐이지 “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악"한 것들을 만드셨는가?라는 삶에 해로운 질문을 과거처럼 내뱉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삶이 타락하기 전 에덴 동산을 도로 찾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인간 문제들 속에서라도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다음 달 칼럼에서 독자 여러분들을 다시 뵙겠습니다.
그동안 안녕히 계십시오!
풍암 박 오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