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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보로 레이크 제네트, 버팔로 매각돼 - $85만에

향후 개발 여부에 주변 중산층 주택자들 촉각

 

그린스보로 북부의 지역 상징 호수인 레이크 제네트와 버팔로 호수가 매각되었다. 새로운 주인은 그린스보로 주민 제시 워쉬번 (Jess Washburn)과 샬롯 주민 J.윌 델린저 (J. Will Dellinger). 매각측은 콘 데님 (Cone Denim) 회사. 그린스보로에서 한때 세계의 면방직 업계를 선도했던 회사이다.

 

양측은 지난 7월 27일자로 매매 계약을 완성하고 등기소에 등기했다. 매매 가격은 $850,000. 그동안 이 호수의 매각 소문이 무성하자 호수를 둘러싼 주택 단지 주민들은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주민 회의를 개최하는 등 매각에 따른 주민 요구사항을 전하기도 하였다.

 

사진: 레이크 제네트를 끼고 있는 중산층 주택. $1,495,000에 매물로 나왔다.

호수 가격보다 집 값이 더 비싸다.

 

이 호수는 비록 콘 밀의 면방직 공장에 공업용수용으로 건설되었지만 그후 호수 주변에 고급 중산층 주택이 속속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중요한 풍치 경관 겸 휴양, 그리고 위락 시설이 되었다. 낙시와 보트를 타면서 주변 주민들은 휴식과 레크리에이션을 즐겼다.

 

사진: 레이크 제네트의 보트 부두.

 

1952년에 설립된 ‘길포드 야외활동 클럽 (Guilford Wildlife Club)’ 하우스도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호수를 둘러싸고 16개 주택 단지가 있다. 매매가 성사되자 매입자 측은 ‘레이크 제네트 호수 주택 협회 (Lake Jeanette Homeowners Association ; 회원 1,000명 이상)’에 “현재의 경관과 조용한 호수 주변 분위기를 결코 훼손하지 않겠다” 고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수에 추가로 보트 접항 및 출항이 가능한 부두 (dock)를 허용할 방침이어 주민들은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다.

 

매입자중 한 명인 델린저는 지난 6월 한창 매매설이 나돌 때 “호수에서의 보트 속도 상한선 확대, 모래 사장 축조, 보트 정박을 위한 부두 추가 건설 허용 등” 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 향후 호수를 둘러싼 개발 방향에 주민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왜냐하면 이 호수의 풍광이 훼손되면 주민들의 안락처가 크게 위협 받고 또 주변의 중산층 저택 가격이 크게 하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버팔로 레이크는 100에이커 넓이로 1920년대에, 레이크 제네트는 260에이커로 1942년에 모두 콘 밀 (Cone Mills)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 콘 밀의 섬유 방직 공장에 공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였다. 콘 밀은 현재 국제적인 섬유 그룹이다.

 

 ***콘 덴님(Cone Denim)은 어떤 회사?

콘 형제는 드러머(drummer; 세일스맨)로 남부 돌아다니다가 텍스타일 산업의 번성 가능성을 알아차려...

 

그리고 그 중심지로 그린스보로를 꼽아 정착 - 그린스보로는 당시 남부와 북부를 이어주는 교통 중간 요충지

 

그러나 후손들은 현실도 직시하지 못해 실패

 

"시대를 예감한자는 흥하고, 현재도 읽지 못하는 자는 망한다" 는 역사 교훈을 일깨워줘 콘 덴님(Cone Denim)의 전신은 Cone Mills이다.

 

Cone Mills은 그린스보로에 본사 및 공장을 두고 면바지, 골덴 바지, 프라넬(면과 양모 등을 섞어 만든 합성 직물), 기타 면 제품을 생산하는 20세기에 세계 최대의 면직물 생산회사이었다. Cone 가족이 세웠다. Cone 가족의 역사는 18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 허만 칸(Herman Kahn; 1828–1897)은 미국에 이미 가 있는 여동생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1846년 고향인 독일 바바리아 지방을 떠났다.

 

그는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스펠링을 바꿔 성을 미국식으로 Cone으로 고쳤다. 허만 칸은 처음엔 테네시에서 식품과 옷, 구두 등을 파는 잡화 가게를 운영했다. 그는 잡화 가게로 큰 돈을 벌었다.

 

그 후 뉴욕에 건너가 잡화점을 열었다. 그의 두 아들 모세 콘(Moses Cone)과 시저 콘(Ceasar Cone)은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지역 소매상들로부터 주문을 받기위해 남부 지방을 여행했다. 당시에는 현금이 매우 귀해 주로 물물교환 형식의 바터로 장사를 했다.

 

면화와 옷을 바꾸고 상품 대금을 갚지 못하면 땅을 저당잡아 부동산을 취득하였다. 이들은 남부 지방을 다니며 면방직 산업이 장차 크게 번성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바로 Cone Mills을 설립하여 면방직 제국의 건설에 착수했다. 두 형제는 1887년 애쉬빌에 격자무늬 천을 생산하는 한 공장에 파트너로 참여하여 $5만을 투자했다. 이후 이들은 점점 사업을 확장하여 1895년 그린스보로에 첫 면바지 생산 공장을 건설했다.

 

이들이 그린스보로를 면방직 제국의 본부 및 출발지로 삼은 것은 그린스보로가 남부 목화 생산 지대와 가깝고 아트란타-샬롯-워싱턴-뉴욕을 잇는 철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생산품을 뉴욕 등 대도시에 팔기에 적합한 지리적 여건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계속해서 공장을 확장해 나갔고 1899년 그린스보로에 레보루션 밀을 지었는데 당시로선 생산방법이 혁신적이어서 공장 이름을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1908년에는 이미 이들 공장은 세계 최대의 면방직 공장이 되어 있었다. 이들 제품은 튼튼하고 질긴 면바지로 명성을 떨쳤다.

 

1908년 맏형인 모세가 죽자 동생 시저가 회장자리를 이어받았다. 1917년 시저도 죽자 그 밑의 동생들이 사업을 이끌어 갔다. 그리고 1951년 뉴욕 증시에 상장되었다.

 

1956년 형제들의 1세대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자 1956년엔 시저 2세가 사업을 이어받았다. 1983년에는 21개 공장에 10,800여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이후 1990년대 초부터 이윤이 줄고 저임을 쫓아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긴 경쟁자들에 의해 결국 제국은 2003년 끝내 파산을 선언하고 만다. 모든 자산은 W. L. Ross and Company에 매각되었다. 현재는 콘 덴님(Cone Denim)이란 이름으로 그린스보로에 남아있는 White Oak mill에서 고급 면바지만을 생산하면서 이름만 이어가고 있다. 나머지 모든 공장은 문을 닫았다.

 

*1915년 부터 청바지의 대명사인 Levi’s(Levi Strauss) 상표의 청바지 원단은 물론 완제품도 콘 밀에서 만들었고 최근까지도 Levi's brand 501 jeans의 유일한 공급자였다.

 

사진: 한 때 전성기를 누렸던 콘 밀의 레보루션 밀 공장 모습.

내부 공장 기계 시설 등이 철거되고 오랫 동안 방치되다가, 2013년에 빌딩 본 모양은 유지한 채 내부를 리노베이션하여 상가 및 오피스 빌딩이 되었다.

 

많은 비지니스를 끌어들여 콘 밀의 전성기 때 면방 산업의 중심지로 활력을 누렸던 때와 같은 비지니스 중심지로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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