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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Cha 주한 미국 대사 내정자 가족의 이민 역사

빅터 차 (Victor Cha)가 지난달 주한 미국 대사에 내정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 2세대다. 그의 부친 차문영은 한국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한국을 떠나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으로 유학왔다.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7년간 전공했던 학문의 길을 접고 자영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처음 기프트샵을 오픈했다. 장소는 뉴욕 맨하탄의 57가 5애비뉴와 6애비뉴 사이에 있는 240스퀘어피트의 작은 공간이었다. 위치는 그런대로 좋았으나 구멍가게에 지나지 않는 소규모였다.

 

착수금은 당시 1만 달러 정도였고 취급품목은 일본제 도자기, 한국산 자개, 중국산 병풍 등이었다. 이때가 1961년이었으니까 해방 후 유학생 출신으로는 뉴욕에서 제일 먼저 비즈니스에 진출한 셈이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공부가 끝나면 학위를 얻어 본국으로 돌아가 학계나 공무원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미국에 잔류하는 측은 전공과 관련된 분야의 연구소로 들어가는 것이 그 당시로선 대세였다. 그러나 차문영은 당시 소수민족으로선 미개척분야인 자영사업에 뛰어들었다.

 

석사학위를 받기 전 61년 잠시 귀국했을 때 둘러본 국내 상황은 정치적으로 혼란기였다. 또한 일제시대부터 그의 부친이 경영했던 통조림 군납업체인 조선물산공업주식회사는 6.25때 폭격으로 공장이 파손된 그 후유증에 아직도 허덕이고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60년 줄리어드에서 하프를 전공한 임순옥과 결혼한 후 미국에서 자립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그가 취급한 도자기, 자개, 병풍 등 품목은 문화재에 가까운 수준높은 상품이어서 취급하기도 어려웠거니와 단가가 너무 높아서 일반 대중들에게는 어필하지 못하는 품목이었다.

 

장래성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가 우연히 착안한 품목은 동양식 램프. 램프의 몸통은 화려한 문양의 동양 화병에 갓은 미국제를 얹고 받침대는 중국제 나무를 조립한 훌륭한 동양램프가 출현했다.

 

맨하탄의 일류백화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상품으로 특히 실내장식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개업당시 진열했던 기프트 아이템을 모두 치워버리고 동양램프 일색으로 바꾸고 나니 제법 비즈니스가 되었다.

 

창업 3년만에 길 건너에 3배가 넘는 점포를 새로 열었고 65년 23가 3애비뉴와 67년엔 58가 3애비뉴에 네번째 스토어를 열었다. 이후 그는 5만 달러의 SBA융자를 받아 규모를 확장시키고, 그 동안의 구멍가게 신세를 면하여 한단계 올라서 본격적인 사업체재로 진입하였다.

 

 

이때 세운 것이 아시안 하우스였고 퀸즈 롱아일랜드시티에 비슷한 크기의 창고도 운영했다. 연간 수백만 달러의 매상을 올렸고 생활이 안정되자 60년대 말 한인사회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가 졸업한 경기고 동창회장, 뉴욕한인골프회장, 뉴욕한인회 이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차문영은 2001년까지 40년간 아시아하우스를 운영했고 2005년 타계했다.

 

60년대 초에 출생한 그의 두 아들 빅터와 마이클은 뉴욕 브롱스 리버베일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며 주말에는 뉴욕한국학교에서 한국어도 배웠다.

 

그후 빅터는 컬럼비아대로, 마이클은 펜실베니아대(와튼 스쿨)로 진학했다. 특히 아버지의 전공을 이어받은 빅터(한국 이름 동)는 컬럼비아에서 정치학 학사와 박사를, 옥스포드에서 석사를 취득하며 동아시아 정치를 전문분야로 정하고 학계로 진출했다. 빅터 차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조지타운대 정치학과의 국제관계 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한국담당 책임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 안보 분야의 전문가로서 CNN, ABC, CBS, 폭스뉴스, BBC,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의 객원 해설가로 명성을 날렸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4년 12월 백악관에 입성,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맡아 당시 한국계로서는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최고 요직에 올랐다. 빅터 차는 미국이 중국과 안정된 관계를 취하면서 동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감축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해 왔다.

 

주한 미군 철수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생전에 차문영과 자주 접촉했던 조종무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위원(뉴욕 거주)는 “차문영이 ‘아들 녀석이 백악관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백악관에서 신분조회가 왔다’며 대견해 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고 추억했다.

 

빅터 차의 부인은 한국 농림수산부장관을 역임한 김식의 딸이다. 김식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11대, 1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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