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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오현 박사(Ph. D), 은퇴목사 칼럼 ; 에로스(Eros)와 아가페(Agape)

박오현 박사(Ph. D), 은퇴목사 (PCUSA) 겸 명예교수(Appalachian State University)

 

독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가을을 점점 저물어 가게 하는 초 겨울인 입동(11월 7일)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이런 환절기에는 몸조심을 각별히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이란 무대 위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다가 떠나게 되는 것이 인생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인 잣대인 흑백 논리로 서로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면서 끼리 끼리 서로 잘났다 하고 손가락질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대적인 이 세상 무대에서는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러나 이 무대를 감독하시는 보이지 않는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쓸데없는 죄인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는 얼마의 사람들은 도덕적인 잣대로만 자기 자신이나 이웃의 잘못을 꾸짖기 보다는 높은 차원의 사랑(agape)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절대자 앞에서는 죄인이다”는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대신 폭 넓은 agape 사랑으로 소위 ‘부도덕’한 사람들까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기독교 장로이자 시인이었던 박 목월(1916 -- 1978)과 그의 부인 유 익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박 목월 시인이 마흔 살 안팎의 나이가 되었을 때 자기 부인을 떠나 자기 제자인 여대생과 눈이 맞아 가슴이 뛰는 대로 애정 관계(eros)를 맺고 몇 개월 동안 어디론지 살아졌다 합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이 제주도에서 숨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박 목월의 아내는 남편을 찾아 제주도로 갔다 합니다. 부인은 -- 바람난 남편과 젊은 여인에게 지지고 볶는 행동이나 욕지거리 대신 --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궁한 모습을 보고 하는 몇 가지 말은 “살기가 힘들고 어렵지 않느냐?’ 하면서 돈이 든 봉투와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잘 지내라”며 겨울 옷까지 놓고 다른 말 없이 집으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한마디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딸처럼 대하는 박 목월 부인에게 감동된 젊은 여인은 “사모님”이란 존칭까지 부르면서 결국 시인과 헤어지기를 결심했었다 합니다. 그 여인이 배를 타고 떠나 사라지는 뒷 모습을 지켜보던 시인은 아래에 인용한 “이별의 시”를 지었다 합니다.

 

그리고 김 성태씨가 작곡해서 “이별의 노래”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 아 ~

너도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 아 ~

너도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 아 ~

너도가고 나도 가야지

 

 - 박 목월 -

 

무엇이 바람피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서로 헤어지게 했었는지 객관적으로 꼭 집어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겠지만 그 부인의 아픔 속에서 피어난 따스한 햇볕과 같은 agape 사랑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 “이별의 노래”가 여러 사람들에게 참 아름답게 널리 불려지고 있는 이유도 agape 사랑이 노래속까지 배어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인과 해어진 박 목월은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기독교 경전인 신약 전서 가운데 마태복음 5 장과 고린도전서 13 장을 이런 아침마다 읽었다고 합니다.

 

몇 개월 후에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그의 부인은 한마디도 그를 나무라지 않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합니다.

 

독자 여러분!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세속적인 도덕과 eros가 판치는 이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무대 위에서 agape 역을 한 번 멋있게 해보라고 오늘도 우리에게 호흡과 기력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생각해봅니다.

 

알량한 eros를 넘어선 agape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다음 달 칼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그럼 그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박오현 풍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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