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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은 주한 미국 대사에 내정됐던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지명을 철회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파이낼셜타임스(FT)가 1월 30일 보도했다.
W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당초 주한 미 대사로 지명한 차 석좌가 지난해 12월 말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개인적인 이견을 표명한 뒤 더는 지명될 것으로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차 석좌가 광범위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북한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선제공격을 가하는 방안, 일명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 전략에 대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리들에게 우려를 제기한 것이 (지명 철회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FT도 차 석좌와 가까운 2명의 인사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이 차 석좌에게 ‘한국으로부터 군인이 아닌 미국 시민권자를 철수시키는 작업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을 했고, 이에 차 석좌가 ‘어떤 형태의 대북 군사공격도 위험이 크다’고 우려를 표명한 뒤 백악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FT는 “차 석좌가 지난 주말 백악관으로부터 지명 철회 사실을 통보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차 석좌와 친분이 있는 한 지인은 “차 석좌는 오늘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지명 철회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위협하는 등의 전략을 쓰는 데 대해서도 차 석좌가 반대 의견을 낸 것이 지명 철회에 영향을 미쳤다고 언론들은 분석했다.
WP는 “차 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기업들에 불공정하다고 해온 한국과의 무역협정(한미FTA)을 미 행정부가 파기하려고 위협하는 것에도 반대했다”며 “미 행정부는 지난주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수입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해 한국 정부로부터 비판받았다”고 전했다.
결국 한국계인 차 석좌가 백악관과의 정책 조율 과정에서 백악관 기류와 다른 의견을 냈고,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한국 쪽 입장을 중시하는 것으로 비쳐진 것이 지명 철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차 석좌와 함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했던 마이클 그린 CSIS 일본 실장은 “한반도 문제가 민감한 현 시점에 최고의 한국 전문가를 이렇게 끌어내리는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강경파로 분류됐던 차 석좌의 대북정책을 문제 삼아 지명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워싱턴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군사옵션이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실행계획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마저 나오는 상황이어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과 김정은을 제거하는 ‘외과적 타격(Surgical Strike)’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힘을 점점더 얻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백악관은 지난해 말 ‘북한이 핵을 수개월 후 완성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 이후부터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에 북한이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군사공격’에 대한 구체적 검토를 진행해 왔다”고 전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본토까지 위협하는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기 어렵다고 보고 근본적 해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차 석좌 내정 철회는 한국에 대한 홀대 논란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미 행정부는 지난해 8월 차 교수를 내정하고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모두 거친 뒤 같은 해 12월 한국 정부에 임명동의서(아그레망)까지 보내 승인을 받은 상황이다.
승인 받은 대사 지명자를 상대국에 설명도 없이 언론을 통해 지명 철회 사실을 흘린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외교적 무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미대사관도 언론 보도를 보고 지명 철회 사실을 알게 돼 충격에 빠진 상황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대사관측은 “특이한 동향은 없다.
차 석좌도 왜 인준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지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만 밝혔다. 특히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외교·국방 2+2 고위급 회담’에 참석했던 임성남 외교부 차관은 미 국무부에 차 석좌의 지명 절차를 서둘러 달라고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지명 철회 결정한 데는 트럼프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워싱턴 외교가에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