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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 달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도 평안하셨는지요!
절대자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만물의 영장인 우리들은 피조물들을 이렇게 저렇게 개량하고 변화 시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문명과 문화를 이룩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교만일 뿐만 아니라 큰 착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런 착각을 착각 인줄 모르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으며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을 끊임 없이 만들어내는 공장 역할을 하면서, 마술사처럼 서로 속고 속이면서,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공장의 이름을 “인본주의”라 칭해봅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문명 문화를 한 편의 영화처럼 희로애락을 누리면서 즐기는 군중들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 공장에서 만들어낸 환상과 공상 영화를 보다가 이따금 지구 촌 위에 나타났던 많은 성인들이라 불리는 분들도 보게 됩니다.
더욱이 눈에 콩깍지가 씌이면 은연중에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숨겨진 인성을 묵살하거나 무시하면서 그들이 행한 불가사의한 이적과 기사들만 보고 신성화하고 우상화하기 시작합니다.
더욱이 우상화된 그 분들을 닮아보려고 이적과 기사를 행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려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만 평생 동안 이런 시도를 되풀이하다가 피할 수 없이 따라오는 불가능에 봉착하게 되면 낙심하거나 아니면 그 분들을 인간이 아닌 신으로 더 모시기까지 우상화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짓은 착각 속에서 인간 스스로 꾸며낸 이야기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성인들의 인간성을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합리화의 가능성을 없이 하기 위하여 충격 요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충격 요법으로 신화를 타파하면서 성인들의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 숨겨졌고 잊혀졌던 “인성”을 되찾아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이 떠나신 후 2000 년이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잊혀지고 숨겨진 그 분의 인성을 새롭게 되찾아 그분의 사랑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만남이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오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30 여 년의 사생활을 청산하시고 마지막 3 년의 공생애를 사신 예수님의 삶 가운데 성경에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변소에 가셨다”입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져섰던 그 분이 안식일 날 제자들과 밀 밭 사이로 지나 가시다가 제자들이 배고파 남의 밀 이삭을 비벼 먹을 동안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급한 볼일을 봤”을 수도 있었겠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은 가능성만이 아닌 사실이였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제가 이렇게 표현한다면 혹시 신성 비하나 모독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대로 까놓고 말한다면, 인간 본성인 “뒷간에 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이며, 예외 없이 다른 모든 피조물도 신진대사를 해야만하는 필수 조건이며 자연의 법칙입니다.
상스러워 신성 모독처럼 간주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이 참으로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셨던 분임을 100% 깨닫게 된다면 그 분을 쉽게 닮아갈 수 있는 길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충격 표현을 했습니다.
더욱이 생사와 직결된 신진대사임을 께닫게되면 오히려 대소변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까지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고쳐보면 신성하다는 것은 특별하거나 하늘에 별 따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만이 아닌 것임을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속 되게 생각했었던 변소라는 곳도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는 은밀하고도 거룩한 곳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충격 요법으로 상스럽게 생각했었던 뒷간 일이 떡을 때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성스러운 성찬식과 맞먹는다고 생각까지 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시각의 무게와 심도가 달라질거라 생각해 봅니다.
아직도 “성스럽다”란 말만 들으면 왠지 사람들이 -- “상스런 말이나 행동”을 피하면서 요란스럽게 거룩한 성직자들이 있는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만 -- 성스러운 척 할 때가 허다합니다.
이런 짓들은 마치 자연스럽게 그냥 있는 본디의 보드라운 모래 따위를 인공으로 물로 개어 엉기게 해서 딱딱한 시멘트-돌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모래가 그냥 있는 그대로 있어야 매우 곱고 깨끗한 본디의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원래 사람 됨됨이도 끊임없이 신진 대사를 하고 있는 그대로 임을 깨닫게 될 때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진대사는 철이든 사람이라면 저절로 어떻게 무엇을 할 것 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무술 년 한해에도 남의 눈치를 살필 것 없이 살아있는 순간 순간이 호흡과 기력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이런 원천적인 깨달음이 있어야만 인공적으로 만든 거룩한 곳과 시간에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없이는 성전은 수라장 같은 곳으로 쉽게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달 칼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그동안 건강하게 안녕히 계십시오! 풍암 박 오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