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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350여 명의 사람들은 현재 영하 196도의 차가운 공간에 잠들어있다.
저마다 사연은 달라도 소망은 같다. 의학기술이 발전한 먼 훗날 다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찾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이들에게 ‘제2의 인생’을 선물할 수 있을까.
인간의 죽음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심장이 기능을 멈추는 ‘생물학적 사망’과 자신이 가진 추억, 기억 등이 사라지는 ‘정보 죽음’이다.
자신의 신체는 사라졌지만 정보는 남아있는, 즉 생물학적 사망과 정보 죽음 사이에 멈춰선 사람들이 바로 냉동인간이다.
신체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모든 활동이 멈추는 온도가 영하 196도다. 극한 저온 환경에 신체를 맡긴 사람들은 미래의 의학기술이 새로운 인생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불치병 환자들에게 냉동 보존은 사망 직전 택할 수 있는 마지막 출구다. 세계 3대 냉동인간 회사 중 하나인 러시아의 ‘크리오러스(KrioRus)’가 올해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한국내 냉동 이식용 장기 연구 전문기업인 휴먼하이테크는 크리오러스와 2017년 11월 9일 한국 내 서비스 제공 계약을 체결하고, ‘크리오러스 코리아(KrioRus KOREA)’를 출범시켰다. 한국에도 냉동인간 서비스가 상륙했다.
사진: ‘크리오러스’에 냉동인간 상태로 보존된 실제 환자의 모습.
냉동보존, 난임 치료에 활용 신체 일부를 동결하고 다시 해동해 살려내는 기술은 세포 수준에서는 이미 상용화됐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는 난임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정자, 난자 혹은 수정센터에는 지름 1m, 높이 1.6m의 ‘바이오 탱크’ 6개가 줄지어 서 있다. 탱크 하나에는 세포 2800개가 냉동된 상태로 들어간다.
세포는 각자의 ‘방’에 해당하는 ‘고블렛(Goblet)’ 속에 보관돼 있다. 2016년 센터가 처음 문을 연 뒤 벌써 탱크 3개가 가득 찼다.
이재호 차의과대 의생명과학과 부교수는 “결혼 시기가 늦어져 난자를 미리 동결해두려는 미혼 여성, 암 치료 등 의학적 치료 과정에서 정자나 난자의 손상을 피하기 위해 동결해 둔 사례 등 병원을 방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고 말했다.
세포를 동결하는 방식은 종류에 따라 다르다. 세포가 클수록 내부에 수분이 많아 동결과 해동이 모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부피가 거의 없는 정자는 표본을 채취한 뒤 30분에 걸쳐 천천히 동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반면 수정을 마친 수정란은 1분 내에 빠르게 동결시킨다.
수정란보다 다루기 어려운 난자의 경우 더 복잡하다. 수분이 얼며 얼음 결정이 생기는 현상을 막기 위해 ‘유리화 동결’ 기법을 사용한다.
난자의 유리화 동결 기법은 차병원이 처음 개발했다. 난자에 동결 억제제를 넣은 뒤 10초 안에 온도를 영하 200도까지 떨어뜨린다.
이렇게 하면 난자의 세포질 내에 있는 수분이 동결억제제와 함께 얼면서 슬러시 같은 상태가 된다. 이렇게 동결된 세포는 1시간 내 임시탱크에 옮겨진 뒤 다시 바이오탱크에 저장된다. 해동도 비교적 간단하다. 빠르게 동결한 세포는 빠르게, 느리게 동결한 세포는 느리게 녹이면 된다.
해동된 이후의 기능이 해동 이전과 유사하다는 사실은 임상적으로 확인됐다. 차의과대 연구진은 10년 전 냉동했던 정자와 난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에 모두 성공했다.
이 교수는 “크기가 작은 세포는 동결과 해동 과정에서 내외부의 온도차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히 냉동 보전을 할 수 있다”면서도 “냉동인간처럼 냉동 보전하고자 하는 기관의 부피가 커질 경우 피를 얼마나 빨리 제거하는지, 어떤 특수 용액을 사용하는지 등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얼지 않는 유전자 섞은 특수 동결액 크리오러스와 함께 미국의 ‘알코르 생명연장재단(Alcor Life Extension Foundation)’ ‘크라이오닉스연구소(The Cryonics Institue)’는 세계 3대 냉동 보존 기업으로 불린다.
이들 3개 회사에 냉동된 사람 수만 352명이며(2017년 4월 기준), 향후 사망한 뒤 냉동하겠다는 회원은 2712명에 이른다.
이들 기업은 의학적으로 이미 숨진 사람들을 시신이 아닌 환자로 부른다. 환자의 사망이 확인되면 곧바로 냉동보전을 위한 수술이 시작된다.
환자가 수술대에 오르면 의료진은 얼음을 부어 신체 온도를 영하로 낮춘다. 이 상태에서 전신의 피를 뽑고, 인공 피와 특수약물을 주입한다. 혈액 대체 작업은 12시간 내에 이뤄진다. 이후 열 차단 기능을 갖춘 공간에 환자를 싸 냉각캡슐에 넣는다.
액체질소가 채워진 냉각캡슐은 영하 196도로 유지된다. 이들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아직 3대 기업에서 인체를 해동한 사례는 없다.
일각에서는 동결 과정에서 이미 신체에 손상이 발생한 만큼 냉동인간이 회생하지 못 할 것이라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물이 얼면서 날카로운 얼음 결정을 만들 듯, 체내에 남은 수분이 신체를 파손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극지생물에서 힌트를 얻어 실험실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 극저온의 바닷물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는 혈액이 얼어 죽는 일이 없다.
진화적으로 저온에서 얼지 않는 유전자를 지녔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들 물고기에서 분리한 ‘결빙방지단백질(AFP)’, 북극 효모로부터 분리한 ‘얼음결합단백질(IBP)’ 등을 실험실에서 배양했다. 이들을 섞어 만든 특수용액을 동결 과정에 활용하면 사람의 몸을 유리화 동결시킬 수 있다.
얼음 결정 걱정 없이 냉동인간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피부, 심장판막, 토끼 뇌는 해동 성공 해동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난임 치료에 사용되는 작은 세포 수준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심장이나 폐 등 인체 장기를 해동하는 기술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세포가 커지면 해동 과정에서 표면과 내부의 온도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고기로 비유하자면, 냉동실에 얼어 있던 고기를 뜨거운 불에 구울 때, 속은 익지 않았는데 겉이 타버리는 것과 유사하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 2017년 3월호에는 급속 해동 기술에 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존 비쇼프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팀은 사람의 피부, 돼지 혈관 및 심장판막을 산화철 나노입자가 든 특수용액에 적셨다가 얼렸다. 녹일 때는 자기장을 가했다.
그러자 마치 전자레인지가 음식물 안에 있는 물 분자를 격렬하게 회전시켜 온도를 올리는 것처럼, 자성을 가진 산화철 입자가 장기 내부에서 빠르게 돌아가면서 열을 냈다.
조직의 내외부가 모두 1분 만에 200도까지 올라갔다. 해동한 뒤 세포나 조직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조직이 해동되는 과정에서 산화철 입자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2016년엔 포유류의 뇌를 완벽하게 얼렸다가 해동시킨 첫 연구 사례도 나왔다. 미국 브레인프리저베이션재단 연구진은 실험용 토끼의 뇌를 냉동 보존한 지 5년 만에 별 다른 손상 없이 해동하는 데 성공했다.
토끼를 대상으로 한 연구지만 뇌는 냉동인간 기술의 난제로 남아있는 만큼 냉동인간 기술의 돌파구가 제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에 들어온 냉동인간 기술이 처음 접목될 분야는 이식용 냉동 장기다. 신장, 폐, 심장 등의 고형 장기가 체외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4~8시간 정도다.
이식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있어도 적시에 이식하지 못해 버려지는 장기만 60%에 이른다. 휴먼하이테크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김시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는 “3년 내 이식용 냉동 장기의 성공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식용 장기는 냉동인간을 실현하기 위한 긴 여정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사진: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에서 연구원이 냉동 세포가 보관된 ‘바이오탱크’를 확인하고 있다. - 차여성의학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