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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놀랍습니다.
쉽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남북한의 지도자들이 만나서 하루만에 통큰 합의를 하고 우리민족역사의 많은 문제를 풀어갈 바탕이 될 4.27 판문점 선언을 하였습니다.
정치때문에 생이별했던 가족이 만나게 되었고, 교통과 통신, 경제 교류가 가능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위험이 사라지고 평화가 보장되었습니다. 정말 눈물나는 감격을 주체하기 어렵지만, 그 격한 마음을 다지고 모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기도의 힘으로 모으고자 합니다.
내친 김에 지난 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대표를 맞아 찍은 사진의 배경을 기억해 봅니다. 고 신영복 선생의 ‘통(通)’이란 글자그림과 이철수 판화가의 한반도 판화 작품입니다. ‘통(統)이 완성이라면 통(通)은 과정입니다. 막다른 데서 길을 찾고 길 없는 데서 길을 낼 결심이 분단 극복과 통일로 가는 길에서는 더욱 절실합니다.
소통과 대화, 꾸준한 교류와 이해가 通의 내용이자 방법입니다. 通은 統입니다. 通으로 統을 이루게 되기를’ 삶과 아픔, 치유의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 일인 저에게는 특벽한 배울 거리였습니다.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 은 한의에서 아픔과 치유를 이해하는 큰 원칙입니다. 아플 통 (痛)과 통할 통(通)에 같이 있는 글자는 甬(물솟을 용) 입니다.
살아있는 기운이 솟아오르는 물처럼 있음을 전제합니다. 살아있으니 막힌 것을 뚫으려고 하고, 뚫고자 하는데 막힘이 있으니 아픈 것 아니겠습니까? 막힌 것이 다 뚫린 뒤에는 솟아오르는 힘이 다 할때까지 뻗쳐나갈뿐이지요.
살아 있지 않고, 죽어 있다면 아픔도 없겠지요. 죽지 않았어도, 살고자 하는 솟음이 없다면 아파지 않을거에요. 그래서는 저는 강의할때, 욕통즉통(欲通則痛)이라는 말도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제 외람된 생각으론 서로 통하기만 한다면, 살림의 원칙은 이루어 질텐데, 왜 그 오랜 세월동안 통(統)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의문이 가기도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통일신라시대보다 한민족의 역사의 합으로 보면 춸씬 더 번창한 때가 아니었을까요?
남한과 북한이 서로 존중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교류를 이루어내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살림의 완성일 수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조직력과 통치력을 키워서 하나의 한국을 이룰만하면 그것도 좋겠지만, 살림의 원칙에 필수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여깁니다.
어디까지나 정치논리는 별로 없이, 사람 살림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저의 모자람을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교민여러분, 저는 요즘 고국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촛불 시민운동으로 시작하여 먼저는 남한, 이제는 북한까지 아우르고 재외 교민들을 배려하면서 한국민의 역사와 세계 평화를 다져가는 고국을 더욱더 자랑할 수 있는 5월을 맞이하시기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