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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영 칼럼 : 8.15 특집 기고 (2) - 8.15 광복 정신의 계승, 독립된 한국 문명권을 세워나가자

중화 문화권에서 벗어나기

 정태영 
전 UNCG Adjunctive Visiting Professor


1945년 ‘8.15 광복’은 하드파워에 의한 하드파워의 해방이었다. 
외세의 무력(하드파워)에 의해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지정학적인 물리적(하드웨어적) 해방이었다. 유감스럽지만 한민족 독자적 힘에 의한 해방이 아니었다. 

광복, 즉 물리적 독립을 이룬지도 75년, 이제 한국은 본격적으로 소프트 파워(문화)에 의한 소프트 파워(문명)의 독립을 선언해 나가야할 시점이다.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은 지난 2018년 4월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정상회담에 앞서 한반도 역사를 오랫동안 설명했다. 그 요지는 “조선은 역사적으로 오랫 동안 중국의 속국(조공국) 이었다” 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진핑의 한반도 역사 교육에 트럼프는 며칠 후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 이야기를 꺼냈다. 
북한이 아니라 (전체) 한국 말이다. 
아다시피 수천년에 걸친 이야기였고 많은 전쟁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실제로 중국의 일부이곤 했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 

10분 동안 듣고 난 다음, 나는 그 문제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이 중국(말실수로, ‘북한’을 지칭하는 듯함)에 대해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정상회담 후 2018년 4월 1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월스트리트 저널” 과 인터뷰한 내용)
 

시진핑의 고도의 소프트 파워 전략에 트럼프가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중국의 소프트 파워 전략에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는 순간이었다.
 

중국은 지난 몇 십년간 급속한 경제력 증대를 기반으로 19세기에 잃어버렸던 동 아시아에서의 패권(hegemony)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중국몽(中國夢)이다. 

그 중국몽 속에 한반도를 중국의 영향권으로 다시 잡아 들이려는 중국의 노력은 집요하다.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비롯한 고구려 역사의 중국화 등등...최근엔 미북 협상을 둘러싸고 더욱 한반도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토인비는 1934년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에서 현존하는 문명권으로 서구, 정교 그리스도, 이슬람, 힌두, 극동(Far Eastern: 중국 한국 일본) 문명 등 5개를 정의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복잡하고 매우 정교한 추적 과정을 통해 죽은 문명을 포함시켜 21개의 문명으로 분류했다.

극동(Far Eastern)은 
<극동: 한국과 일본(Far Eastern: Korea & Japan)>과 <극동: 중국 본토(Far Eastern: main body)> 로 
둘로 나누어 여기에 포함시켰다.  


토인비는 한국과 일본을 중국 본토에서 떼어낸 것은 중국에서 발생한 고대 사회가 한국과 일본에 흘러 들어갔지만, 중국 고대 황하 문명과 한국과 일본의 고대 문명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시공간(time & space)적으로 동시성이 없다는 것(non-coincident)을 그 이유로 들었다.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중국(Sinic) 문명이라 명명하지 않고 극동(Far Eastern) 문명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고대 황하의 작은 지역 문명에만 중국(Sinic)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가 극동(Far Eastern)이라고 명명한 것은 당시 서양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 준다. 
 

60여년 후 사무엘 헌팅턴은 1996년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세계 문명을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정교, 서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8대 문명으로 범주화하였다. 
그는 한반도의 남북한이 서서히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미 통일에의 길로 들어섰다고 예단하면서 통일된 한반도를 통째로 중국문명권(Sinic civilization)에 포함시켰다. 

유교 문명권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전체를 중국(Sinic)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분류하고 있다. 

헌팅턴의 분류는 토인비 이후 수십년이 지나면서 학자들간에 한국은 중국 문명권에 포함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헌팅턴의 문명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역사 주장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헌팅턴의 문명 분류 방식이 떨떠름 하다는 것이다.

문명 담론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두 사람이 한반도를 서로 다른 문명권에 포함시킨 것은 흥미롭다. 


역사도 국제정치역학을 피할 수 없다. 
역사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카(E.H.Carr)는 역사가를 생선을 요리하는 주방장에 비유했다. 

시장에서 진열대에 놓인 생선(facts)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사다가 적당히 칼질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춰 요리하여 내놓는 것이 역사라고 했다.(저서: 역사란 무엇인가)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를 저작한 시대(1930년대 초)는 중국이 서구 열강에 침식당하고, 강국으로 부상한 일본에 눌려 힘을 쓰지 못하던 시대였다. 

반면 일본은 그들 표현대로 ‘욱일승천(旭日昇天)’ 하던 시대였다. 일본은 한반도를 중국으로부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떼어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연히 토인비의 문명분류표는 일본에겐 불감청이지만 고소원이었다(不敢請固所願)고 볼 수 있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저작한 때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중국의 서서한 부상이 예견되던 시대였다. 한반도가 중국문명권으로 그려진 헌팅턴의 문명세계지도는 중국으로서는 역시 불감청이지만 고소원이었다(不敢請固所願).
중국이 천하중심이라는 구시대의 낡은 생각인 ‘중화(中華)’ 개념을 문명에 끌어들여 중국에 공헌한 셈이다.


토인비 이후 왜 한반도가 중국 문명권에 귀속되었느냐는 의문은 에드윈 라이샤워 전 하바드대 역사학과 교수 (미국 주일대사 역임)의 지적을 보면 암시가 된다. 

라이샤워는 1958년 그의 저서 ‘동아시아 문명사’ 에서 “한국인들은 중국문화를 숭배한 나머지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도외시하였다. 
이에 대해 서구인들은 중국의 크기와 장구성에 현혹되어 중국 그늘에 가리워져 있는 흥미있는 한국 문화를 간과해 버렸다” 고 적고 있다. 

이어 그는 “근세에 내려와서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장막을 둘러쳐 외국인들이 한국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은 모조리 조직적으로 막았다. 이러한 결과로 1945년 한국이 해방되기 전까지는 서방세계는 대체로 한국의 존재에 대해 망각하고 있었다” 적고 있다. 



이제 한국은 국제역학에 따라 이리붙고 저리 붙는 신세에서 벗어날 기회가 왔다. 

역시 한국의 눈부신 경제력의 성장 덕분이다. 
한국은 유사이래 처음으로 중국보다 우월한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다(1인당 GDP 및 GNP 기준). 
유사이래 초유의 한류라는 것도 생겨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까지 넘실대고 있다.

소프트 파워에 의한 소프트 파워(문명)의 독립이 가능한 시점이다. 
문명담론에서 한국 문명의 독창성과 독립 범주화를 논하고 주장하고 연구해야 한다. 



문명의 ‘창조적 소수설’을 주장하는 토인비는 문명과 비문명의 갈림길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체된 국가에서의 지배적 소수자는 산 언턱 중간(ledge)에 누워있는 자와 같고, 문명국가의 소수적 창조자는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운동가와 같다.”(역사의 연구) 

토인비의 인류 문명 21개 안에 들어가 있는 한국은 후자에 해당된다. 이제 한국은 ‘Far Eastern: Korea and Japan’ ⇬ ‘Far Eastern: Korea’ ⇬ Korea 문명으로 정립해 나가는 길을 모색하면 된다. 

미래는 토인비가 말한 현대 생존 문명 5개는 물론이고 헌팅턴의 8개 문명도 모두 죽은 문명이 되어 단일 문명(universal civilization)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고 있는 급속한 지구촌화 현상은 그걸 예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中國夢’ 같은 복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국가가 있어 인접국을 편안하게 두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용어 설명>
* 소프트 파워(soft power): 조지프 나이 하바드 대학 교수가 1990년에 처음 만들어 사용했고, 2004년 “SOFT POWER” 저서에서 이 개념을 발전시켰다. 

무력이나 강요(hard power)보다는 문화, 가치 등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을 뜻한다. 중국 시진핑 주석도 2014년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증대시켜야 한다” 고 천명하면서 중국을 “사회주의 문화 대국”으로 건설해 나갈 것을 선언했다.

* 문명(civilization)이라는 용어는 18세기 프랑스 사상가들이 야만(barbarian)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처음 사용했다. 문화 및 과학 기술이 발전된 상태를 말한다. 



**필자는 1998년에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 그린스보로 캠퍼스(UNCG) 정치학과에 Adjunctive Visiting Professor로 재임하였다. 이메일: taeyung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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