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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7일 중국 국영 제약사 시노팜(Sinopharm·중국의약집단)이 만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에 대해 긴급 사용을 승인했다. 중국 시노팜 백신은 미국 화이자(독일 바이오엔테크와 공동 개발),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2종, 미국 존슨앤드존슨, 미국 모더나에 이어 WHO가 긴급 사용을 인정한 6번째 백신이다. 비서구권 국가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 중 WHO 승인을 받은 첫 사례다. 또 다른 중국 제약사 시노백(Sinovac·베이징과흥생물제품)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도 다음 주 WHO가 긴급 사용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시노팜 백신이 WHO의 승인을 얻어내면서 중국 백신이 전 세계에 공급될 길이 넓어졌다. WHO의 긴급 사용 목록에 오르면서 중국 백신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코로나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그램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 포함될 것이 확실시된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시노팜·시노백을 포함한 중국 백신은 현재까지 80개 이상 국가에 원조·수출 등을 통해 공급됐다. 코백스에 추가되면 중국 백신이 원칙적으로 모든 국가에 공급될 수 있다. 올해 3월 한국은 코백스를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5만 명분을 도입하기로 한 바 있다.
중국은 중국 백신이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고 자축했다. 현재 세계는 백신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었다. 미국 등 일부 고소득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는 “WHO의 중국 백신 승인은 ‘메이드 인 차이나(중국 제조)’ 라벨을 보는 국제적 인식을 높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중국 측이 아직까지도 임상시험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중국 백신의 예방 효과와 안전성을 놓고 논란은 여전하다.
시노팜 코로나 백신 |
◇ WHO, 中 시노팜 백신 긴급 사용 승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늘 오후 WHO는 베이징의 코비드-19 백신을 긴급 사용 승인 명단(emergency use listing·EUL)에 올렸으며, 이는 WHO가 안전, 효능, 품질을 인증한 6번째 백신”이라고 했다.
시노팜 승인 이전에 WHO가 긴급 사용을 허용한 백신은 5개였다. WHO는 △2020년 12월 31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공동 개발 백신 △2021년 2월 15일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공동 개발 백신 2종 △3월 12일 존슨앤드존슨 산하 얀센이 개발한 백신(Ad26.COV2.S) △4월 30일 모더나 백신을 긴급 사용 명단에 올렸다. 이 중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종은 한국 SK바이오사이언스와 인도 세럼인스티튜트가 각각 위탁 생산한다.
시노팜 백신(SARS-CoV-2 Vaccine, Vero Cell)은 불활화(滅活·inactivated) 사백신이다. 독성을 약화시킨 ‘죽은’ 바이러스를 인체에 주입해 질병 방어 항체를 생성시키는 기존 방식으로 개발됐다. 불활화 백신은 안정성은 높지만, 항체 방어력의 지속 기간이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점은 영상 2~8℃의 일반 냉장 온도에서 보관·유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모더나 백신은 영하 20℃,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의 극저온 환경에 보관해야 한다. WHO는 “시노팜 백신은 저장이 쉬워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상당히 적합하다”고 했다.
WHO에 따르면, 시노팜 백신은 코로나 백신 중 처음으로 햇빛 노출로 인한 백신 손상 여부를 알려주는 모니터 기능도 갖췄다. 백신 용액을 담은 유리병에 붙인 작은 스티커가 햇빛에 노출되면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접종 전에 백신 훼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시노팜 백신은 시노팜 산하 중국생물기술집단(CNBG)의 계열사 베이징생물제품연구소(Beijing Bio-Institute of Biological Products)가 생산한다. WHO는 시노팜 생산 시설을 방문해 현장 검사를 마쳤다고 밝혔다.
◇ 임상 데이터 안내놓은 中…‘불신’자초
중국 코로나 백신은 임상시험 최종 단계인 3상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아 효능과 안전성을 두고 논란이 많다. 시노팜뿐 아니라 또 다른 중국 코로나 백신 개발사인 시노백(베이징과흥생물제품)도 임상 3상 결과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두 회사가 임상시험을 진행한 외국 일부 국가가 자체 결과를 공개했을 뿐이다.
백신 접종 후 예방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중국 감염병 관리 최고 기관인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수장인 가오푸 주임이 한 공개 행사에서 “현재 나와 있는 중국 백신은 예방률이 아주 높지는 않다”고 말해 논란을 더 키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WHO의 백신·면역 자문기구인 ‘면역 전문가 전략 자문 그룹(SAGE)’은 이번 WHO의 시노팜 백신 긴급 사용 승인 며칠 전 낸 보고서에서 ’60세 이상 성인의 경우, 시노팜 백신 접종 효과에 대한 확신이 낮다‘고 했다. SAGE가 지난달 29일 시노팜·시노백 백신 사용 권고와 관련한 특별 회의를 하고 내린 결론이다. SAGE는 여러 국가에서 진행된 임상 3상에서 시노팜 백신의 전반적 효과가 78.1%였다고 했다. 여기엔 60세 이상 성인 대상 결과는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 연령대의 참여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SAGE는 보고서에서 “18~59세 일반 성인의 경우, 시노팜 백신 2회 접종 후 코로나 예방 효과가 있다고 매우 확신한다(very confident)”고 했지만, “60세 이상 성인은 시노팜 백신 2회 접종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에 대해 낮은 확신(low confidence)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특히 60세 이상 성인의 경우 “1~2회 접종 후 심각한 부작용 위험이 낮다는 증거에 대해 매우 낮은 확신(very low confidence)을 갖고 있다”고 했다.
WHO는 시노팜 백신 긴급 사용 승인을 알리는 자료에서도 “60세 이상 성인은 임상시험 참여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이 연령대에선 효능을 추정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백신이 노년층과 젊은층에서 다른 안전성을 보일 거라 믿을 이론적 이유가 없다”며 “따라서 WHO는 각국이 노년층에 백신을 투약할 때 안전·효과 모니터링을 하길 권고한다”고 했다.
◇ ‘중국 백신 필요하지? 줄게’…코백스 통해 전 세계 공급 가능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는 전 세계 코로나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플랫폼이다. WHO와 백신연합(Gavi), 감염병준비혁신연합(CEPI)이 공동 운영하며, 유니세프가 물류 파트너로 참여한다. 모든 참여국은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동등한 접근을 보장받는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국가별로 인구 규모의 최대 20%까지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다. 7일 기준 코백스를 통해 121국에 5400만 회분의 백신이 공급됐다. 올해 말까지 20억 회분의 백신을 공급하는 게 목표다.
WHO의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백신만 코백스를 통해 공급된다. WHO가 긴급 사용을 승인하면 해당 백신 수입을 위한 각국 승인 절차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WHO는 시노팜 긴급 사용 승인 후 “코백스가 구매할 수 있는 코로나 백신 대상이 늘어난다”며 “시노팜이 코백스에 참여해 보다 공평한 백신 배분 목표에 기여하길 요청한다”고 했다. 중국 백신이 언제 코백스에 포함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상당수 저개발 국가는 백신 접종에서 소외됐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에 따르면, 5일 기준 전 세계에서 11억 회분 이상 코로나 백신이 접종됐는데, 저소득 국가의 백신 접종률은 0.3%에 불과하다. 80% 이상이 고소득 국가와 중상소득 국가 인구가 접종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인도가 코로나 확산으로 수출을 중단하면서 코백스를 통한 공급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시노팜 레바논 베이루트 도착 / 신화 연합뉴스 |
중국이 코백스를 통해 백신을 공급하면 백신 부족 사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진즉 중국 백신을 ‘세계 공공재’라 부르며 개발도상국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이 구원투수처럼 등장해 백신을 나눠주는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 국제 사회에서 중국 백신 외교전이 승리를 거뒀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WHO의 승인은 중국 백신을 의심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서구 언론에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며 “미국과 유럽이 자기들만을 위해 백신을 과잉 구매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 저소득 국가가 중국 백신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신화사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80개 이상 국가와 3곳의 국제기구에 백신 원조를 했고 40개 이상 국가에 백신을 수출했다. 조만간 중국 백신 연간 생산량은 50억 회분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노팜은 6일 베이징 공장의 3단계 건설 완료를 발표했다. 따라서 시노팜의 연간 생산능력은 30억 회분으로 늘어난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시노백은 6월 생산공장 건설이 완공되면 연간 생산능력이 20억 회분으로 늘어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