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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스스로 中 3대 지도자 올라… 마오쩌둥-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中공산당, 40년만에역사결의채택 - 제대로 가는가?


사진: 11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안건에 대한 찬성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이날 중국공산당은 당 100년 역사상 세 번째역사결의를 채택하면서 시 주석을 공산 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 반열의 지도자로 격상시켰다. <베이징=신화 뉴시스>


중국공산당이 1111일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폐막하면서 40년 만에역사결의를 채택했다. 역사결의는 중국공산당의 중요한 역사적·정치적 분기점에서만 등장하는 일대 사건으로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시기에 이어 세 번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스스로 자신을 마오, 덩과 같은 지도자 반열에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100년간 두 번의 역사결의를 채택했다. 역사결의는 중국공산당이 중요한 분기점에서 택하는, 말 그대로 역사적인 문건으로 중국공산당의 시대를 구분 짓는 일대 사건이다. 1945년의 첫 번째 역사결의는 마오쩌둥을 중국공산당의 유일한 지도자로 격상시켰다. 두 번째 역사결의는 1981년에 있었다. 마오 사후 권력을 쥔 덩샤오핑은 마오의 과오를 분명하게 지적하는 역사결의를 택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중국공산당이 이번에 세 번째 역사결의를 하게 되면 시 주석은 자연스럽게 마오와 덩을 잇는 지도자가 된다.

 


<중국 역사 일견 - 중국은 왜 공산주의를 선택했는가?>

중국은 그 유구한 역사와는 걸 맞지 않는 서구 사상인 공산주의를 받아 들여 1949년 공산국가를 세웠다. 2000년 중국 역사의 바탕을 형성한 유교 사상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 사조이다.

이러한 돌연변이적 변화의 기본적 배경은 19세기 청조의 무능하지만 오만한 국정 운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면서 서양을 깔보던 청조 중국은 오히려 근대화된 서양 무력에 힘없이 굴복하였다. 그리고 이의 결과는 서양 열강의 중국 갈라먹기로 이어졌고, 백성들은 빈곤과 궁핍의 도탄에 빠졌다. 무능한 청조 정부는 인근 소국에 지나지 않는 일본의 침략에도 무릎을 꿇는 모멸감을 인민에 안겨주었다.

그러나 중국은 정신 못차리고 개혁의 기회를 놓쳐 내전과 군벌들 착취에 시간을 보냈다.

결국 공산주의 세력에 기회를 안겨주었다.

빈곤에 신음하던 절대 다수의 무산자 농촌 인민들에겐 농지 무상 배분, 그리고 서구열강 제국주의 세력 배척이라는 기치를 높게 걸고 나타난 공산주의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결국 중국 공산당은 자유민주 세력이나 부패한 국민당 정부와의 내전에 승리하여 1949년 공산당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것이 모택동의 공산정부였다. 그러나 모택동의 공산체제는 다시 인민을 도탄에 빠뜨렸다. 소위 홍위병 난동으로 수많은 지식인들을 숙청했고, 공산주의식 집단농장체제는 농촌 경제의 파탄을 가져왔다. 공산정권 수립 40여 년 후 정신 차린 등소평은 1981년 개방의 기치를 걸고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했다.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은 드디어 21세기 초 세계 강국 G2 반열까지 올랐다.


그리고 다시 40년 뒤 이제 시진핑이 이끈 중국은 다시 사회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부의 창출보다는 인민들에 대한 부의 평등이 우선이라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각급 학교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앞세우며 사회주의 사상 고취를 강조하고 있다.

등소평의 노선에서 새로운 노선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과연 중국의 이러한 신 노선은 성공할 것인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부를 창출하는 기본 요건은 자유로운 창조의 정신이고 국가 발전은 창의성에서 나온다. 그런데 전체주의적 사상 고취라니....

 

<제3차 역사 결의>

1111중국공산당은 나흘간 진행된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를 마치고 관영 신화통신 등을 통해역사결의채택과 내년 20차 당대회 개최 결의 등을 담은 결과 발표문(공보)을 공개했다.

공보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시진핑 동지가 당 중앙의 핵심이 되고, ‘시진핑 사상이 지도적 지위를 확립한 것은 전 군()과 국민의 공통된 염원이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추진에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헌법에도 담긴시진핑 사상은 시 주석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자는 중국공산당의 지도 이념이다.

“‘시진핑 사상을 중화 문화와 중국 정신의 정수라는 평가도 내놨다. 이는 시 주석이 내년에 구성될 새로운 지도부에서도 여전히핵심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합리화할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가을로 예정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3연임(장기집권)을 확정하면 시 주석은 27년간 종신 집권했던 마오쩌둥 사후(1976년 사망) 처음으로 15년 이상 집권하는 지도자가 된다.

 

시진핑 사상, 中정신의 시대적 정수… 덩샤오핑은 상대적 격하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은 중국 역사상 오랫동안 풀려고 했지만 풀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했고,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해내면서 당과 국가가 역사적 성과와 변혁을 이루도록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이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풍족하게 생활하는 것) 사회를 이뤄냈고, 미국과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을 강하게 만든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이번 6중전회에서는 역사결의를 채택하면서 단순히 중국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100년간 중국공산당이 추구해야 할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공보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식 사회주의 현대화와 인류운명공동체를 토대로 한 신인류문명창조와 연결돼 있다. 이 두 가지는 시 주석이 자랑하는 2대 업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 주석의 집권 연장이 필요하다는 논리와 연결된다.

 

8월 중국공산당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시 주석이다 같이 잘살자는 의미로 처음 제시한 공동부유(公同富裕)도 이번 역사결의에 담겼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의 최대 그늘인 빈부 격차 문제의 해결책으로 시 주석이 역점을 두고 있는공동부유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이 같은 내용은 시 주석 장기집권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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