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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정태영 칼럼니스트
문명의 충돌(1996년 출판)로 유명한 사무엘 헌팅턴(1927 – 2008) 사후 10년을 맞아 하바드 대학 후진 교수 3명이 그를 회고하는 세미나를 가졌다. 그리고 결론으로 헌팅턴이 말하고자 했던 요지는 "당신은 상대방이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알기전에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 이해할 수 없다"라고 결론지었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은 이후 9.11 테러가 터지고, 이슬람권과 서구 기독교권의 충돌은 각종 테러와 국지적 전쟁으로 번지면서 주목을 받았었다.
이러한 충돌은 선악을 떠나 상대방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벌어지는 비극인 것이다.
푸틴은 누구인가?
워싱턴 포스트지 칼럼니스트 데이빗 폰 드렐은 지난 3월 22일자 칼럼에서 푸틴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 그의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 사상가 알렉산더 두긴의 정치사상을 조명했다.
* 푸틴이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기 전까지 미국 등 서방은 푸틴의 내면에 어떠한 생각이
작동하는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저 러시아를 장기 집권하고 있는 전직 국가보안국(KGB) 출신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제 갑작스런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발생하자 푸틴에 대한 재 인식이 이루어지고 "푸틴은
스스로를 '유라시아 주의자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결과론적 추론이 가능하게 되었다.
* 그러면 "유라시아 주의"란 무엇인가?
두긴은 1997년 저작 "지정학적 기초"에서 자신의 유라시아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두긴은 또 ‘지정학의 기초’에서 “영토적 야망을 가진 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전체에 막대한 위험이 된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륙 정치를 말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썼다. 그 후 그의 사상은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 두긴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원래 서구와 다른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 정교 (Russian Orthodox Church)가 전통 신앙이었다." 라고 말했다.
1721년 전까지 러시아 정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운영되었다. 즉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동방정교에 속한 자치교회의 지위를 받았다. 그런데 1721년 표토르 대제가 러시아 근대화를 시작하면서 러시아 정교와 콘스탄틴노플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고, 러시아 정교를 러시아 정부 영향을 받는 교회로 바꾸었다. 이러한 러시아 정교와 정부 밀월관계는 1917년 러시아 혁명까지 200여년 동안 계속되었다.
반면 표토르 대제의 근대화에 반대한 일부 정교 세력(고의식파: 옛날 전통과 의식을 존중하는 파)은 우랄산맥 동쪽으로 피신하여 기층민중 운동을 전개했다.
두긴은 표토르 대제가 "근대화를 명분으로 서구화를 추진했다. 표토르 대제는 러시아를 '유럽 국가'라고 못 박았다." 라고 비판했다.
이후 러시아는 근대화에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정치체제는 강압적인 전제군주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즉 시민의식은 고양되어가는데 정치는 구체제에 머문 것이다. 이 결과가 러시아 혁명으로 귀결된 것이다.
표토르 대제에 반대하여 지하화한 소수파 정교 세력(고의식파)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적극 가담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다.
혁명 공산세력은 러시아 정교를 짜르의 전제정치와 함께 상생 부조한 '인민의 적'으로 몰아 교회 재산을 압수하고 성직자를 대거 처형하는 등 핍박하였다. 많은 성직자와 지식인들이 유럽 등 해외로 망명했다.
독실한 정교 신자인 두긴은 정교 소수파가 적극 가담한 러시아 혁명은 "성공하지 못한 혁명이다. 혁명을 도둑맞다. 볼셰비키들이 혁명을 낚아챘다." 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두긴은 러시아 혁명 자체를 그가 경멸하는 또 다른 서구화의 시작이라고 규정했다. 두긴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서유럽의 산물이다. 유럽의 특수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전제로 등장한 이념이다. " 라고 결론지었다.
두긴은 "결국 볼셰비키의 실험은 18세기 이래 추진해왔던 러시아의 유럽화를 더더욱 심화시키고 말았다. 매우 다른 환경과 조건에다가 유럽 기원의 제도를 이식하려다 보니 무리수를 연발한 것이다. 따라서 볼셰비키의 세계혁명이 완수되었다고 해도 그 결과는 유럽으로의 완벽한 동화에 그쳤을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두긴은 "소련 시기에 성당은 폐쇄되고 인간들은 기계적인 프롤레타리아가 되어갔다. 전통은 말소되고 그 광대한 영토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똑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살아가는 끔찍한 시절이었다. 최고의 과학기술과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순식간에 소련이 몰락했던 까닭이다.
러시아의 기층과 전혀 상응하지 않는 외래문명이 겉으로만 군림했기 때문이다." 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러시아의 전통문명은 다시금 부활의 계기를 맞이했다. 물론 초기에는 또 다른 표토르주의자들, 옐친과 같은 우파 서구화주의자들이 집권했다. 그러나 푸틴이 집권하면서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푸틴은 표토르 이래 300년 러시아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고 있다."고 푸틴을 치켜세웠다.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여 러시아를 떠난 러시아 정교 신자 및 망명지식인들이 1920~30년대에 모색한 이념과 사상이 유라시아주의였다.
두긴은 1920년에 발간된 트루베츠코이의 <유럽과 인류> 저서를 인용하며, "트루베츠코이는 몽골의 러시아 점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파격적인 역사 해석을 내놓았다. 러시아의 물질적 기반이 아시아를 통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슬라브인, 중국인, 인도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등이 연합하는 진정한 인류애를 통하여 압제자 유럽에 대항하자는 대전략을 제시했다. 이 책자가 망명 지식인들 사이에 대논쟁을
촉발하여 유라시아주의자라고 하는 일군의 사상집단이 형성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두긴은 러시아혁명에 반하여 그들이 추구했던 것이 "러시아 문명" 이라고 말했다.
두긴은 "나는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원하고 항구적인 가치가 있다. 나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한다.
즉 과거를 보존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통을 고수하자는 것도 아니다. 과거보다 현재를,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불평등한 시간관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보수주의이다. 보수주의야말로 영원한 미래파이다." 라며 스스를 보수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푸틴을 지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러시아의 문명적 뿌리에 가닿은 정치를 하고 있다. 푸틴은 좌파나 우파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러시아의 보수주의자이다. 그래서 과거를 위해서 투쟁하지도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이 소련 시대를 낭만적으로 회고하며 과거로 역사를 돌리려고 한다. 자유주의자들이 1990년대를 장밋빛으로 회상하며 역사를 뒤집으려고 한다. 그들이야말로 '보수파'이다. 저와 같은 보수주의자, 유라시아주의자들이 '미래파'이다. 인간과 사회와 국가와 문명의 근본과 근원을 따지기에 영원한 미래파이다." 라고 미래적 보수파 임을 말했다.
이어 두긴은 유라시아 주의자로서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유라시아는 점진적으로 통합과 통일의 과정을 밟아왔다. 스키타이인, 투르크인, 몽골인에 이어서 러시아인에 의해서 대통합의 경험을 해보았다. 문자와 종교에서는 그리스의 계승자로서,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스키타이-투르크-몽골을 잇는 후예로서 러시아를 자리매김한다. 모스크바가 그 상징적인 장소이다. 러시아는 태생적으로 기질적으로 규모적으로 다민족, 다문명, 다문자, 다종교를 아우르는 유라시아적 귀속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서쪽의 가톨릭문명, 남쪽의 이슬람문명, 동쪽의 유교와 불교문명과 대등한 독자적인 세계문명공동체로서 러시아-유라시아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는 일개 국가가 아니다. 문명국가이다. 보수주의와 유라시아주의에 기초한 국가세계(a state-world)이다. 독자적인 문명국가의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 '유라시아 정교대국'이 바로 그런 모델이다. 때문에 러시아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같은 배타성을 배격한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제국이다. 비교의 대상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국민국가가 아니라 EU, 힌두문명, 이슬람문명, 중화문명 등 문명적 단위로 러시아를 접근해야 한다."
"러시아의 공간적 특징은 중앙성에 있다.
동과 서의 상호 접촉을 기반으로 진화해가는 유라시아 문명권의 주체이다.
서구도 아니요, 동방도 아닌, 양자를 아우르는 고유함과 독보적인 성격을 중앙성에서 찾을 수 있다. 가톨릭세계와 이슬람세계와 불교세계와 유교세계를 모두 접하고 있는 지구상의 단 하나의 문명이 러시아-유라시아 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 시절 지도 1922-1991> |
두긴은 소련 해체 이후의 러시아 방향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특히 지정학적 관점에서 그의 의견을 피력했다.
"다극적 세계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첫째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서 유럽과 미국을 분리시켜야 한다. 유럽을 대서양문명이 아니라 지중해문명으로 되돌려야 한다.
지중해를 공유하는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독자적인 외교안보기구를 형성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NATO형 패권질서를 타파해야 한다. 지중해문명공동체로서 대서양동맹을 대체해가야 한다. 둘째, 이슬람문명과의 공존체제를 이루어야 한다. 정교세계와 이슬람세계의 평화공존을 실현함으로써 서구와는 다른 기독교문명의 전범을 러시아가 세워야 한다. 터키와 이란, 파키스탄 세 나라가 핵심이다. 셋째,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 포스트-아메리카 시대의 주축이 중국이 될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유라시아의 독자적인 문명국가라는 점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은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두긴은 "미국이 추구하는 세계의 획일화에 저항한다. 미국은 먼로주의로 돌아가서 아메리카 대륙에 자족해야 한다" 고 미국의 고립을 주장했다.
두긴의 이러한 유라시아 주의적 사고는 다분히 과대망상적이다. 다른 한편으론 문명을 말하면서 신 제국주의적으로 경도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자칫 세계 평화를 크게 위험에 빠뜨리는 사상이다.
그것이 최근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표상화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옛 소련의 연방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서방에 기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쏠림은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이다.
노재봉 전 서울대 교수(전 국무총리)는 월간조선 4월호(2022년)와의 인터뷰에서 "소련 제국에 포함돼 있던 동유럽 옛 위성 국가들이 그 체제에서 벗어나면서 전부 다 유럽 세력 쪽으로 넘어갔잖아요. ‘그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집단적 의사 표시죠. 이제 다시는 이런 전제주의적인 제국주의의 체제에서 억압받고는 살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NATO나 EU에 전부 다 들어가겠다고 난리가 난 거 아닙니까."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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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영 : 전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 그린스보로 캠퍼스(UNCG) 정치학과 객원교수(Adjunctive Visiting Professor) 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