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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4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는 계획대로 약 13분 만에 최종 목표 고도 700㎞에 도달한 뒤 성능검증위성을 분리했다. 발사 후 약 42분이 지난 시점에 남극세종기지 지상국과의 첫 교신에도 성공했다. 러시아의 도움으로 개발한 나로호 첫 발사의 실패 원인이었던 페어링(위성덮개) 분리도, 지난해 10월 누리호 1차 발사 때 일찍 꺼졌던 3단 엔진도 정상 작동했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이 위대한 전진을 이뤘다”고 밝혔다.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누리호는 꽤나 애를 태웠다. 1차 발사 때는 성공까지 단 46초를 남겨두고 3단 엔진이 종료됐고, 이번엔 강풍과 1단 산화제 탱크의 레벨센서 때문에 발사 연기를 반복해야 했다. “손이 안 간 데가 없어서 자식 같다”, “요즘 잠도 못 잔다”던 누리호 개발진과 참여 업체들의 땀과 노력에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그러나 누리호 성공으로 만족하기엔 앞선 우주 선진국들과의 격차가 너무 크다. 세계 우주시장은 이미 국가가 주도하는 ‘올드 스페이스’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민간기업들이 우주산업에 뛰어들면서 비용이 낮아지고 경쟁도 치열해지는 중이다. 특히 2030년까지 발사될 위성이 1만7,000여 기에 이르는 만큼 상업용 발사체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런 흐름에 뒤처진다면 12년간 2조 원을 투입한 누리호의 성공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국내 우주기술 기업의 대다수가 중소업체인 상황에서 관 주도의 연구개발 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누리호 성공을 국내 산업체 역량 증대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누리호의 발사를 지속하며 성능과 기술 신뢰도를 높이는 한편, 관련 기술을 민간에 적극적으로 이전하고 기업들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과기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누리호 기술을 확장해 작은 위성을 싣고 수시로 발사가 가능한 소형 발사체를 민간 기업들과 함께 만들기로 한 건 그런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누리호의 백미는 아직 남아 있다. 성능검증위성에 들어 있는 큐브위성 4기가 29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차례로 분리되는 게 누리호 발사의 최종 목표다. 발사체 하나에 위성을 여러 개 싣고 가 위성이 위성을 사출하게 하는 이 기술은 상업적으로 활용도가 높다. 큐브위성은 전부 국내 대학들이 개발했다. 미래 우주산업을 이끌 인재들의 꿈이 담긴 큐브위성 4기가 모두 우주에 안착하길 바란다.
[누리호 발사 성공] 누리호 개발·발사 이끈 항공우주연구원 사람들
‘궤도 안착’ 성공하자 껴안고 눈물
21일 오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종합관제실에서 한 연구원이“누리호에 실린 위성과 남극세종기지 간의 교신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21일 오후 3시 59분 49초.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 정적을 뚫고 여성 연구원의 카운트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0, 9, 8, 7… 엔진 점화, 이륙, 누리호가 발사되었습니다.”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과 장영순 발사체책임개발부장 등 연구원 30여 명은 긴장된 표정으로 누리호 이륙을 확인했다.
1단 로켓과 페어링(위성 보호 덮개)에 이어 2단 로켓이 순조롭게 분리될 때마다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연구원들은 이내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발사 875초 만인 오후 4시 14분 36초. “와!” 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리호 3단에서 발사된 성능 검증 위성이 지구 700㎞ 궤도에 안착한 것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지난 12년 3개월 동안 오직 이날만을 위해 달려온 항우연 개발진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 “1차 발사 이후 두 달간 밤샜다”
2010년 시작된 누리호 개발은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웠다.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우주 분야에서 오직 우리만의 힘으로 답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4년 만에 실시한 첫 엔진 연소 테스트의 불꽃은 채 10초도 가지 않았다. 누리호 개발에는 ‘반세기 전 미국은 달까지 갔다 왔는데 이제와 무슨 우주 개발이냐’라는 냉소적인 여론도 늘 뒤따랐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2015년부터 누리호 개발을 진두지휘해온 고정환 본부장은 “이렇게 잘 마무리돼 다행”이라며 “누리호는 이제 첫 발걸음을 뗐다. 우리나라가 우주로 나갈 길이 열렸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미 텍사스A&M대에서 위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0년 항우연에 합류, 러시아와 협업한 나로호 발사 등 7차례의 국내 발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고 본부장은 “러시아와 나로호를 개발할 때 러시아가 ‘너희들이 뭘 아냐’는 식으로 우리를 무시했다”면서 “누리호는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 조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움 없이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누리호의 국산화율은 94.1%에 달한다. 로켓 부품 37만개 중 압력·온도 센서 등 기성품과 일부 소형 부품을 빼면 전부 국산이다.
지난해 10월 1차 누리호 발사 실패 때 고 본부장은 연구원들과 두 달간 밤을 새우면서 실패 원인을 찾았다. 비행 정보를 담은 데이터 2600건을 역추적했다. 그 결과 3단 산화제 탱크 안에 있던 헬륨 탱크 고정부가 로켓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풀리면서 산화제 탱크 내부에 균열을 낸 것을 확인했다. 고 본부장은 “이후 2차 발사를 준비하면서 빠뜨린 게 없는지 늘 생각했고 매일 조각잠만 자느라 꿈조차 꾼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발사체를 언제 만들지 모르는 깜깜한 시절이 있었다”며 “이제부터는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 “누리호의 모든 것이 새로운 기술 성취”
누리호의 핵심 동력인 75t 엔진 개발 과정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상 연소 시험 도중 설비가 폭발해 고장 났고, 엔진은 연소 불안정으로 여러 차례 터졌다. 20차례 넘게 로켓 엔진 설계를 새로 바꾸고, 184회 1만8290초의 연소 시험을 거쳐 엔진을 완성시켰다. 결국 2018년 세계 일곱 번째로 75t 엔진 시험용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그 과정을 이끈 이가 김진한 항우연 전 발사체엔진개발단장이다.
누리호에 처음 도입한 클러스터링(clustering) 기술 개발은 조기주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이 주도했다. 클러스터링은 1단 로켓에 엔진 여러 기를 한 다발로 묶는 기술이다. 조 팀장은 “엔진 4개를 동시에 작동시켜 똑같은 추력으로 작동하는 기술이 중요했다”라며 “누리호의 모든 것은 우리가 새롭게 성취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로켓 발사대도 새로 개발했다. 강선일 발사대팀장은 “발사체가 최대 추력인 300t에 도달할 때까지 고정했다가 풀어주는 ‘지상 고정 장치’ 개발은 민간 기업 엔지니어를 포함해 60여 명의 개발진이 이룬 성과”라면서 “발사대 개발에 참여한 협력 업체가 갑자기 도산해 개발하던 장비를 밤새워 옮기는 일도 있었다”라고 했다. 강 팀장은 “한국의 우주 연구 1세대가 발사체 사업의 기틀을 닦았으니 후배들은 ‘스페이스X’ 같은 선진 우주 기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누리호 사업에는 300여 국내 기업의 엔지니어 500여 명도 참여했다. 누리호 부품 총조립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맡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로켓 액체엔진 개발에 참여했다. 발사대는 현대중공업이 주축이 돼 구축했다. 총사업비의 약 80%인 약 1조5000억원이 국내 산업계에 집행됐다. 국내 기업들이 우주 산업 분야에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