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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낙태합법화 근거되어온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 뒤집어
빌게이츠·유튜브·페북 등 재계 인사 반대 목소리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낙태) 보장 판례 폐기를 결정한 다음 날인 25일, 텍사스주(州) 오스틴에서 임신중지권에 찬성하는 시위자들이 길거리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오스틴=AFP 연합뉴스 |
미국 연방대법원이 50여 년 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 미국 여성 수백만 명이 낙태(임신중단)에 대한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
미 연방대법원이 미 전역의 24주내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1973)'를 결국 뒤집으면서 재계 주요 인사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24일 CNBC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최고경영자(CEO) 그리고 메타(옛 페이스북)의 2인자였던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 수잔 보이치키 유튜브 CEO 등은 즉각 소셜 플랫폼을 통해 낙태합법 폐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팀 쿡 애플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등 과거 서슴없는 정치 발언을 내오던 인사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CNBC는 전했다.
24일 미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州)법의 위헌법률심판에서 '6 대 3' 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미 연방대법원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역할도 수행한다.
이번 판결로 인해 개별 주에서 임신중단을 금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50개 주 중 절반에서는 임신중단 관련 새로운 규제나 금지 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3개 주에서는 법적 효력이 발생하면 임신중단을 자동으로 불법화하는 방아쇠 법(trigger law)들을 통과시켰다.
연방대법원은 또 '로 및 플랜드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 대 케이시' 판결을 폐기할 지 여부에 대한 표결에선 '5대4'로 폐기를 결정했다. 판결 이후 루이지애나, 미주리, 켄터키, 사우스다코타에서는 낙태 금지법이 즉시 발효됐다.
대법관 다수는 임신 24주 안팎의 경우 낙태권 인정한 기존 판례들은 '미국 헌법이 낙태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약 50년간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됐던 '로 대 웨이드' 판결도 공식 폐기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비극적 오류"라고 말하면서 각 주에서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임신중단 수술을 제공하는 의료 기관인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에 따르면 연방대법원 판결로 인해 미국 내 가임기 여성 3600만 명이 임신중단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후 재계 주요 인사들은 낙태 금지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잇따라 냈다.
빌 게이츠는 "오늘은 슬픈 날이다.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은 것은 부당하고 용납할 수 없는 역행"이라면서 "이는 여성의 생명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수잔 보이치키 유튜브 CEO는 "최고 경영자로서 나는 대법원의 판결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서도 "여성으로서 이는 충격적인 역행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여성들은 언제 어떻게 '엄마'가 될 것인지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식권은 곧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기업 소프트웨어 제공업체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CEO는 "최고경영자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직원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면서 "직원들이 위협을 느끼거나 차별을 경험할 때 세일즈포스는 행동한다. 직원들이 최고의 혜택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며, 우리는 항상 (여성권을) 지지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셰릴 샌드버그 메타 COO는 "나의 세 자녀가 내 자신보다도 더 적은 권리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대법원의 판결은 전국 수백만 명의 소녀와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면서 "이는 여성의 경제력을 박탈하고 위협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여성들은 꿈을 이루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번 판결은) 엄청난 역행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자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 낙태권을 보호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클라우드 통신 서비스 업체 트윌리오의 제프 로슨 CEO는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어두운 날이다.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하는 것은 전국에서 가장 취약한 여성들에게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서 "우리는 개혁이 필요하다. 총기 안전이든, 여성의 권리든 정부가 다수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합법성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1973년 1월22일 이뤄진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미국 사회에서 낙태에 관한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낙태 합법화의 길을 연 기념비적인 판결로 여겨져 왔다.
1971년 텍사스주에서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한 여성이 낙태 수술을 거부당하자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노마 매코비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썼다. '헨리 웨이드'라는 이름의 텍사스주 댈러스 카운티 지방검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이 사건은 '로 대 웨이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 대 웨이드'는 1973년 이뤄진 기념비적 판결이다. 대법원은 7대 2 의견으로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가 미국 헌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인해 미국 여성들은 임신 첫 3개월 동안 낙태권을 완전히 보장받았다. 이후 3개월 동안은 제한적으로 임신중단이 가능했으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임신중단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12개 이상의 주에서 임신중단 반대 판결을 내리면서 낙태권이 서서히 축소돼왔다.
앞서 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단을 금지한 미시시피주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돕스 대 잭슨여성보건기구' 사건 심리를 진행해왔다.
현재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인 대법원은 미시시피주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임신중단에 대한 헌법상의 권리를 사실상 폐기했다.
사무엘 알리토와 클라렌스 토마스,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등 5명의 대법관은 이번 결정에 확고한 지지를 보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미시시피주의 판결을 지지하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데는 회의적이라는 내용의 개별 의견을 냈다.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등 다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은 세 명의 대법관은 "슬픈 마음으로 법원을 위해,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 기본적인 헌법적 보호 수단을 잃은 수백만 명의 미국 여성을 위해" 반대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대법원 앞에서 양측 시위대가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로이터)
이번 판결은 이전 대법원 판례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극히 드문 조치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국가 분열을 야기하는 정치적 분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임신중단에 대한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는 곳에서는 선거 결과에 따라 합법 여부가 바뀔 수 있다. 다른 곳에서는 개인이 임신중단이 허용된 주에서 수술받고 오거나 임신중단 약물을 배송받는 것이 합법인지를 두고 법적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면서 임신중단이 금지된 주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임신중단이 합법인 주에서 수술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미시간 등의 여러 민주당 주지사들은 이미 주헌법에 낙태권을 명시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테이트 리브스 미시시피 주지사는 대법원 판결 직후 이를 환영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불의 중 하나를 극복하도록 국가를 이끌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우리가 더 많은 아이들과 유모차, 성적표, 소규모 스포츠 경기 등을 볼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밝혔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오랫동안 비판해 온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생명의 존엄성"이 모든 주에서 법으로 보호될 때까지 멈추지 말라고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공화당이 통제하는 대법원"이 당의 "어둡고 극단적인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미국 여성은 어머니 세대보다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며 "이 잔인한 판결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대법원이 오래전 판례를 뒤집음으로써 다른 권리를 보장한 판례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클래런스 토마스 판사는 "앞으로 사건을 다룰 때 그리스월드, 로런스, 오버게펠 등 대법원 실질적 적법절차를 거친 모든 판례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언급된 대법원 판례들은 각각 피임, 동성 성관계, 동성혼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