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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도 금주 처리할 듯…상원, 찬반 동수에 부통령 캐스팅보트 행사
기후변화대응 등에 558조원 투자…기업증세 등으로 961조원 재원 확보
조 바이든 대통령이 7일 워싱턴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전용헬기 마린원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
미 상원은 7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 처방약값 인하, 법인세 인상 등을 담은 7400억달러(약 961조원) 규모의 패키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추진한 주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안한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을 수정한 것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18개월의 노력 끝에 거둔 정치적 승리로 평가된다.
로이터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길 바라는 바이든의 중요한 승리"라고 보도했다.
미 상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표결 결과는 민주당 소속 48명, 민주당 성향 무소속 2명, 공화당 50명인 의석 점유 상황을 그대로 반영해 찬성 50표 대 반대 50표의 가부동수로 나왔다. 하지만 당연직 상원 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찬성 51표 대 반대 50표로 가결 처리됐다.
앞서 민주당은 예산조정권을 이용해 공화당의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우회했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려면 하원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미국 언론들은 하원도 이번 주 내에 법안을 처리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상원은 전날 오후부터 회의를 열어 해당 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나 각종 수정안이 제출되면서 격론이 벌어졌고,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27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화당이 제출한 약 36개의 수정안을 부결시키고 통과된 법안은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기 위해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에 3700억달러(약 480조원)를 투자하도록 했다. 미국 역사상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최대 규모 투자다.
또한 특정 고가 약품 가격 억제를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약사들을 상대로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했으며, 건강보험 지원도 확대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은 연소득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가 넘는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고, 연방국세청(IRS)의 과세 기능을 강화하며, 기업의 자사주 매입에 1%의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충당토록 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법안을 처리한 뒤 "길고 험난했지만, 마침내 도착했다. 상원은 역사를 만들었고, 이 법은 21세기 입법 위업 중 하나로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원에서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하원은 이번 주 법안을 처리한 뒤 법안의 서명 및 공포를 위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낼 예정이다.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이 법안의 상원 처리와 관련, 무제한 토론을 통해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상원의 필리버스터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과반 찬성만으로도 법안 처리가 가능한 예산조정 절차를 적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법안 통과 직후 성명을 내고 "오늘 상원 민주당은 특별한 이익을 놓고 미국 가정의 편에 섰다"며 "나는 정부가 미국 가정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대통령에 출마했고 그것이 이 법안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 법안을 신속하게 대통령에게 보내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원 표결은 오는 12일로 예상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양당은 에너지와 기후 대응을 위한 3천690억 달러를 포함해 모두 4천300억 달러(약 558조 원)에 달하는 지출안과 7천400억 달러(약 961조 원) 규모의 수입안을 놓고 격돌을 벌였다. 민주당은 이 법안이 연방 적자를 3천억 달러 이상 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입되는 예산만큼 미국 가정의 비용이 줄어들 것이며, 재정 적자 역시 감소하기에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논리다.
반면 공화당은 이 법이 인플레이션 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오히려 일자리를 축소하고 성장을 저해할 좌파들의 희망 지출 목록이라고 맞섰다.
의회예산국(CBO)은 법안이 향후 10년간 연방 적자 900억 달러를 줄일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민주당은
징세를 강화하면 세수를 2천억 달러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점을 CBO도 인정하고 있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전했다.
법안에는 공공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에서 노인의 본인 부담금을 연간 2천 달러로 제한하고, 1천300만 명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보조금 지급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치솟는 인슐린 비용을 민간 건강보험에서 매달 35달러로 제한하려는 조항을 유지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지난해 제안한 BBB법안에서 출발했다. 10년에 걸쳐 3조5000억달러(약 4545조원) 규모의 재원을 투입한다는 법안이었다. BBB법안과 쌍둥이 법안으로 제안된 인프라법은 지난해 11월 통과됐다. 인프라법은 최대 10년 동안 1조2000억달러를 투입해 주요 도로 및 교량, 철도, 항만, 인터넷망, 상하수도 등 거의 모든 공공 인프라를 개선한다는 내용이다.
BBB법안은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이고 조 맨친·커스틴 시네마 등 민주당 상원의원들도 지출 규모가 너무 크다고 반발하면서 벽에 부딪혔다. 민주당 내 논의 과정에서 유치원 무상교육, 유급 가족 간호 휴가 등 당초 포함됐던 다양한 복지 정책들이 제외됐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맨친 상원의원과 협상을 벌여 지난달 말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으로 이름을 바꾼 법안에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최초 제안했던 것보다 법안 규모는 축소됐지만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뒷받침하고 복지 혜택을 넓히는 법안 통과가 임박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적지 않은 정치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하겠다는 약속을 뒷받침할 제도적·재정적 수단을 확보함으로써 국제적 리더십을 다질 수 있게 됐고, 국내적으로도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책적 추진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오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처방약값, 건강보험,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재정 적자를 줄이는 대신 초부유 기업들에게 공정한 부담을 부과하는 데 찬성함으로써 특수 이익보다 미국 가정들 편에 섰다”면서 하원이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