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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류사회 진출 활발한 인도계
- 중국계도 제쳤다…
미국 주류 사회에 인도계 진출이 눈부시다.
바이든 대통령 후보의 사퇴에 따라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가 오는 11월 5일 미 대선에서 민주당 유력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빌 클린턴, 낸시 펠롭시 전 하원의장 등이 이미 지지 의사를 보냈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식 지명하는
전당대회는 8월 19~22일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열린다.
뉴욕타임스(NYT)는 7월 20일 "인도계 미국인은 현재 아시아계 미국인 중 가장 많고 정치적으로도 가장 활동적인 그룹"이라며 이들이 하나의 정치 세력이 됐다고 진단했다.
<카멀라 해리스>
카멀라 해리스(60)는 모친이 인도계이다. 해리스는 중남미 카리브해 섬나라 자메이카 출신인 부친,
인도 브라만(인도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 최고 계급) 가문 출신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모친은 과학자였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유학 중 흑인 민권운동을
하며 가까워져 결혼했다.
<카멀라 해리스와 그의 남편>
해리스는 7살 때 부모가 이혼해 세 살 아래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 손에 컸다. 자서전에서 “어머니는 미국이 여동생과 나를 ‘흑인 소녀’로 본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를 자신감 있는 흑인 여성으로 키우기로 결심했다”고 썼다.
어렸을 때부터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자란 것이다. 해리스는 박사 학위를 받고 유방암을 연구하던 모친 직장을 따라 캐나다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워싱턴D.C.의 유서 깊은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에 진학해 정치학·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립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90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경찰을 지휘해 범죄자를 기소하는 자신을 ‘톱 캅(Top Cop)’이라 자랑스레 소개하기도 했다. 1994년 캘리포니아주 주의회 의장으로 지역 정가를 꽉잡고 있던 흑인 정치인 윌리 브라운의 연인이 됐다. 해리스보다 서른 살 위인 아버지뻘이고 당시 아내와 별거 중인 바람둥이였지만, 브라운과의 교제를 통해 주 고위직을 지내고 정계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브라운이 최초의 흑인 샌프란시스코 시장에
당선된 직후인 1995년 헤어졌다.
해리스는 2014년 동갑내기
백인 변호사인 더글러스 엠호프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고 이전 결혼에서 얻은 딸이 둘 있다.
해리스는 39세 때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에 출마해 당선됐고, 46세에 법무장관이 됐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흑인 여성 법무장관이었다. 2016년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직에 당선되었다. 2021년 1월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첫 여성·유색
인종 부통령이 됐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한 적이 있다.
<공화당 밴스 부통령 후보 배우자 우샤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연방 상원의원(39, 오하이오)의 배우자 우샤
밴스도 인도계이다.
<우샤 밴스>
우샤 밴스(38)는 7월 17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남편의 부통령 후보직
수락 연설에 앞서 찬조 연설을 했다. 우샤는 "남편은 고기와
감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내 채식 식단에 적응했고 내 어머니를 위해 인도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웠다"며 밴스 의원의 포용력을 칭찬했다.
우샤는 인도 이민 2세대로, 샌디에이고 교외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생물학자이자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학장이며, 아버지는 엔지니어 겸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공과대학
강사이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벌레였으며, 우샤 변호사의 친구들은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리더이자 책벌레"라고 설명했다.
예일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로스쿨 졸업 후에는 변호사로 일했다. 남편이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발표된 이후,
우샤는 가족을 돌보는데 집중하기 위해 로펌 변호사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우샤 밴스와 J. D. 밴스는 2013년 토론 동아리에서 ‘미국 백인의
쇠락’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사귀게 됐다. 이 대화는 밴스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의 토대가 됐다.
밴스는 2016년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에서 "수업 과제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고, 이후 완전히 반했다"라고 적었다. 또한 우샤에 대해 "운이
좋게도, 우리는 첫 번째 주요 글쓰기 과제의 파트너로 할당되었기 때문에 첫 해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밝고, 열심히 일하고, 키가 크고, 아름다웠고 인간이 가져야 할 모든 긍정적인 자질들의 조합인 일종의 유전적 이상처럼
보였다"라고 적었다.
이들은 2014년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우샤 밴스에 대해
"미국 엘리트를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면 우샤 밴스처럼 생겼을지도 모른다"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