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월 18일 가상 화폐의 일종인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권 틀 안에서 규정하는 ‘지니어스 법안’에 서명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 같은 가상 화폐와 일정한 교환 가치를 갖도록 설계한 가상 화폐다. 

금융시장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던 가상 화폐가 주류 투자 자산으로 격상된 것은 물론, 세계 자금 흐름과 국제 결제 시스템에도 구조적 전환을 촉발할 수 있어 글로벌 금융·통화 질서의 역사에 이정표로 기록될 전망이다. 

달러 패권이 디지털 영역으로도 확장됐다고 할 수 있는데, 트럼프는 “어쩌면 인터넷 탄생 이후 금융 기술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혁명일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J D 밴스 부통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빌 해거티 상원의원 등의 축하를 받는 가운데 법안에 서명했다. 

하원은 17일 찬성 308표, 반대 122표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발행액만큼 미 달러나 단기 국채 같은 안정적 자산을 예치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회계법인을 통해 연 1회 감사보고서를 공시하도록 하는 등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규제 장치도 마련했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 요건, 준비금 관리, 공시 의무 등을 규정한 미국 최초의 연방 차원 규제법이라 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거래가 편리하고 수수료는 은행보다 낮아 해외 송금에 자주 사용되는 등 산업 규모가 급성장했지만,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있어 업계에서는 활성화를 위한 규제 입법을 촉구해왔다.

법안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때 발행액 전액에 상응하는 준비 자산을 현금 또는 만기 93일 이내 미 국채 등 안전 자산으로 보유하도록 하면서 일본·중국 같은 ‘큰손’들이 포트폴리오에서 덜어 내고 있는 국채 수요를 흡수할 기반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이건 미국 국채의 수요를 늘려 금리를 낮추고 수세대 동안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라며 “기축통화는 너무 중요하다. 

우리가 그걸 잃으면 그건 세계대전에서 지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했다. 테더(USDT)·서클(USDC) 같은 주요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1800억달러(약 250조8300억원)가 넘는 미 국채를 들고 있는데 이는 한국 보유량(약 1258억달러)을 크게 넘어서는 규모다. 

베선트는 스테이블 코인이 활성화되면 “약 2조달러까지 국채 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고 했는데 달러 패권 강화에 일조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큰 고민거리인 부채 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그간 중국 등이 ‘위안화 국제화’를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해왔다.

법안은 지난해 대선 캠페인 때부터 “미국을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트럼프가 주도·압박해 의회가 통과시킨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 대선 때 트럼프를 지지하고 막대한 자금을 몰아준 가상 화폐 업계의 로비도 적지 않게 있었다. 

하원은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분류하기 위한 이른바 ‘클래리티 법안’과 연방준비제도(FED)의 디지털 화폐(CBDC) 발행을 금지하는 ‘반(反)CBDC 감시국가법안’도 가결시켜 상원으로 넘겼다. 

“다음 금융 위기의 씨앗이 될 것”이란 일부 민주당 의원 반대를 제외하면 상당수가 법안에 찬성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가 미국민이 개인퇴직연금을 운용할 때 주식·채권 등 전통적 투자 자산 외에도 암호화폐·금·사모펀드(PEF)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조만간 서명할 것이라 보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법안 통과를 놓고 또 하나의 시스템 리스크가 등장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거나 루머가 퍼져 이른바 ‘코인 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시장에 국채가 대규모로 쏟아질 수 있고, 이럴 경우 국채 금리가 급등해 세계 금융시장 전반에 유동성 충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스테이블 코인 거래가 확산하면 은행과 외환시장을 거치지 않은 국경 간 자금 이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환율 안정, 통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외환 당국의 정책 ‘약발’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스테이블 코인이 송금·결제 등을 대체할 수 있어 전통적 은행권에는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글쓴날 : [2025-07-20 06:2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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