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흐란 맘다니는 지난 2025년 6월 민주당 예비선거가 끝난 이른 아침,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상태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전화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축하 전화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신호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젊은 민주사회주의자인 맘다니는 바로 전날, 앤드루 M. 쿠오모 전 주지사를 예상밖으로 꺾고 뉴욕의 권력 지형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승리를 거뒀다. 너무 갑작스럽고 압도적인 승리였기에, 정작 그 자신조차 완전히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제 뉴욕 기득권층의 거물들이 잇따라 전화를 걸어오며, 뒤늦은 인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목소리는 결코 반가워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뉴욕에 아주 좋은 날입니다.”
맘다니 후보의 26세 정치 고문인 모리스 카츠는 부동산 재벌 윌리엄 C. 루딘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업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과거 많은 민주당 예비선거 승자들은,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이 도시에서 사실상 즉각적으로 ‘차기 시장’으로 당선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뉴욕을 좌지우지해 왔던 권력 실세들과 시민사회 핵심 인사들은 맘다니의 급부상을 마치 적대적 인수합병에 가까운 사건으로 인식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태세임이 몇 시간 만에 드러났다.
쿠오모 전 주지사의 핵심 보좌관은 이미 노조와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맘다니에 대한 지지를 보류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업계의 오래된 지인들은 곧장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락해, 백악관 차원의 개입 가능성을 타진했다.
억만장자 금융가 빌 애크먼도 X(옛 트위터)에 경고 메시지를 올렸다. 그는 젊은 침입자를 11월 선거에서 제압하고 “우리 도시를 구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맘다니의 정치적 부상은, 그의 ‘처음 등장했을 때의 모습’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처음 선거에 나섰을 때는 매우 활기차고, 화려하고, 기존 정치 규칙을 깨는 선거운동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그는 브루클린의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 사는 비교적 부유한 신흥층(브루클린의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 새로 유입된 중산층 및 젊은 전문직 계층)과 퀸즈의 택시기사들(도시의 서민 노동층)의 서로 매우 다른 집단을, ‘뉴욕의 심각해지는 생활비·주거비 위기’라는 공통 문제를 중심으로 하나의 새로운 연합체로 묶어냈다.
즉 두 계층을 하나로 묶은 공통의 문제가 바로 뉴욕의 치솟는 물가와 집값 문제였음을 명확히 했다.이 선거운동은 동시에 큰 잠재력과 영향력을 가진 맘다닌 같은 새로운 정치 스타(‘megawatt talent’)의 탄생을 알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가 화요일 뉴욕시 제111대 시장으로 당선된 과정은, 그 못지않게 믿기 어려운 ‘막후 캠페인’ 덕도 컸다. 미드타운의 대기업 임원실과 비공개 전화 통화에서,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외치며 이름을 알린 좌파 포퓰리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들 일부를 상대로 구애하고, 설득하고, 교묘하게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의 성공 과정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다. 올해 초만 해도 맘다니는 지지율 1%에 머물렀고, 그가 즐겨 말하듯 ‘다른 누구’라는 이름의 후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의 이름을 아는 뉴요커도 거의 없었고, 그의 정치팀조차 당선 가능성을 3% 수준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제 34세에 그는 100년 만에 뉴욕시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가 된다. 동시에 여러 역사적 기록도 세웠다. 최초의 무슬림 시장, 최초의 남아시아계 시장이자,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주사회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선거 전략>
맘다니의 목표는 언젠가 민주당 주류의 장악력을 깨뜨릴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좌파식 캠페인의 ‘템플릿’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던 출마가 어떻게 불붙었는지는 뉴욕과 워싱턴의 정치 분석가들이 이미 충분히 해부해 왔다. 맘다니는 다른 경쟁자들이 딴곳을 바라볼 때 뉴욕시의 감당 불가능한 생활비 위기를 전면에 내세웠고, 바이럴 소셜미디어 영상으로 경쟁 후보들을 압도했으며, 민주당 내부에서 세대교체를 바라는 갈증의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맘다니와 그의 참모진들 중 어느 누구도 시 전역 규모의 캠페인을 운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언론·시민단체·선출직 지도자 등 전통적 ‘문지기들’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그 어떤 전략도 성공할 수 없었다.
지난여름 한 조언자는 커피 자리에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치 전략가들이 머릿속에서 그려낸 뉴욕은 잊어라. 실제 뉴욕시를 중심에 둔 캠페인을 해라.” 그 조언자는 훗날 그의 핵심 참모가 되는 자라 라힘이었다.
민주당 인사 조너선 로즌은 라힘의 전략을 도널드 트럼프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뉴욕에서 사용했던 방식에 비유했다. 그들처럼 “모든 제도와 심판(기존 권력 구조)을 무시하고, 뉴요커들과 직접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채택하라는 것이었다.
“매체는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그 매체를 먼저 이해하는 사람이 이긴다.”
선거 캠프는 많은 후보자들의 수익원이었던 브랜드 상품 판매를 포기하고, "메츠의 흔들머리 상품 전략"을 채택했다. 파란색 비니(beanie), 종이 부채, 반다나 등 한정된 수량으로 특별 상품을 제작했는데, 이는 오직 기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지지자들은 돈이 아닌 시간을 기부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시 전역을 대상으로 한 보물찾기 행사, 코니아일랜드 축구 대회 등 일련의 이벤트를 개최했다. 경쟁 진영은 이를 전부 ‘유치한 쇼’라고 비웃었지만, 현장에는 수천 명의 지지자가 몰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후 그 어떤 캠프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원봉사 대군의 핵심이 되었다.
“지난 9년 동안의 정치 경험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트위터에서 서로에게 못되게 굴기만 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고 캠프 운영을 총괄한 케이티 라일리는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실제 공간에서 함께 세상 속으로 나와 활동하길 바랐다.”
쿠오모 전 주지사와의 대비는 극명했다. 정치 명문가의 후계자인 그는 성희롱 스캔들로 주지사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그러나 올해 초 (2025년 3월) 출마 선언과 함께 그는 여전히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는 좀처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노조와 민주당 인사들에게 압박을 가해 자신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그리고 자신을 지원하는 슈퍼 PAC에 2,500만 달러 규모의 거액 기부에 의존했다.
기업계 설득 공세
맘다니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다.
1970년대 재정 위기 이후 뉴욕시에서 기업 엘리트층의 최소한의 묵인 없이 시장직을 수행한 사람은 없다. 프라이머리에서는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전략이 효과를 냈지만, 여름이 지나 가을에 접어들면서 참모진은 기업계 지도자들이 아담스 뉴욕 시장과 공화당 후보 커티스 슬리와를 모두 출마 포기시키고 단일 대항마를 세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본선 유권자 지형에서 쿠오모와 1대1로 맞붙을 경우 재앙적 패배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맘다니는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뉴욕시 유력 경제단체 대표인 캐스린 와일드에게 연락해 자신이 전화해야 할 주요 기업인 명단을 요청했고, 블랙록의 래리 핑크, 블랙스톤 전 대표 해밀턴 E. 제임스 등을 포함해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저명한 문화예술계 인사 부부의 외아들로 자란 맘다니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핵심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조언을 구하고, 외부에서 알려진 것보다 더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맘다니는 여러 기업·단체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목표는 무료 보육과 버스 서비스 확대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위한 새로운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이미 제안된 증세안을 철회 세금 인상을 철회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8월 초, 미드타운 사무실에서 열린 시민 의식이 투철한 재계 지도자들의 모임인 '더 나은 뉴욕을 위한 협회'와의 만석 회의에서 그는 건설사들이 간절히 바라던 건설 속도를 높이기 위한 규제 개혁을 제안하며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급진적 이념가를 기대했던 이들 중 일부는 감명을 받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가 적어도 맨해튼 엘리트들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던 진보주의자 드 블라지오와 쿠오모의 공격적인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내가 본 어떤 정치인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졌고, 나와 방 안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다.” 조너선 로즌은 이렇게 회상했다.
맘다니는 본선 선거를 위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연합을 굳건히 구축해 두었고, 그 힘은 선거일을 일주일 앞둔 대규모 유세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퀸스의 포레스트 힐스 스타디움을 거의 가득 메웠다.
무대 위에는 버몬트주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 미국 좌파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있었고, 다소 어색해 보였지만 호컬 뉴욕 주지사와 올버니의 주 의회 지도부 핵심 인사들도 함께 자리했다. 모두가 민주당 후보인 맘다니를 중심으로 연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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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2025-11-06 06:4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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