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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를 위한 한국어, 한국문화, 2세교육
서 문 원
2012년에는 “싸이”라는 한 사나이가 혜성처럼 나타나 “강남스타일”의 잡스러운 춤으로 폭풍을 일으켜 한국이 유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남오빠” 춤이 아마 국가브랜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음악과 예술이 다방면으로 발달하여 세계 각국에 소개된다는 측면에서 싸이도 공헌을 한 셈이다. 그러나 그런 춤은 한국의 고전 춤도 아니고 나라를 대표할만한 춤도 못 되고 다만 싸이라는 남자가 한국사람이었을 뿐 뭔가 좀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하기야 김정은의 아내도 “조선사람”이어서 나름대로 북한을 홍보하니 말이다. 한국의 영화나 연속극들이 동양 여러 나라에서 팬을 만들고 K-pop이 외국에서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그 때문인지 2012년 12월 말 한국은 역사상 처음 “관광객 1000만 돌파”의 신기록을 세웠다고도 한다.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한류”라고 해서 이것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고유문화나 “신생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하튼 한국이 유명해지고 국가 경제나 수지에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새 시대의 문화/가치 창조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기업에서 쓰는 표어 중 제일 듣기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기업인들이 스스로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10년 후에 무엇을 먹고 사나?” 하는 그것이다. 못 먹고 살아 온 가난의 역사에 원한이 맺혀 잘 살게 된 나라를 유지해야 된다는 뜻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한국만큼 먹다 남은 음식이 지천이면서도 먹고 마시는 일에 급급한 나라도 드물다 하겠다. 한국사람이 먹고, 마시고, 버리는 통계자료를 열거하지 않고서라도 좀 치사할 정도로 심하다.
나는 여기 대응하는 표어로 “그만 좀 먹고 제대로 살아보라” 고 한다. 국가이념이나 기업의 목표가 무역흑자나 연평균 국민소득에만 집착되어 왔기에 기업도 정부도 가정도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게 지상과제가 되어왔다.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차원이 좀 높은 구호는 없을까? 한국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정신적, 윤리적 빈곤과 부패도 이런 일차원적 욕구에서 발원하였기에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지 모르겠다.
모두들 “나는 뭔가 부족하다”는 강박관념에서 자기만족을 찾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 세계 10대 경제국가에 걸맞는 문화국민이 되기 위해서 개인과 가정과 국가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공동목표는 무엇이라야 할까?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외에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진정한 한국인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자랑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참으로 모자라는 것은 무엇인가?
세계에서 스포츠로, TV드라마로, 춤으로, 노벨상으로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려 하는 것 말고 범국민적으로 높여야 할 이미지는 무엇인가?
안에서도 밖에서도 세계가 선망하는 “1등 국민”이 되기 위해서 지향해야 될 것들은 너무도 많이 보인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멀리서 보면서 나는 예전과 꼭 같은 모양을 다시 보았다. 누가 당선되느냐는 투표의 결과일 뿐, 어떤 이유로 표를 던지느냐가 문제이다.
정당들의 이름이 몇 년마다 바뀌고 그 이념도 아리송한가 하면 후보들의 정견이 선거 전날까지 바뀌고 유권자들은 지역, 연령, 빈부의 색깔로 미리 선이 그어져 있어 후보자의 자격이나 정견, 또 국가이념이나 사회정의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치의 후진성이라기보다 한국인의 문화적 후진성이며 한국인이 문화민족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큰 과제라고 하겠다. 세대차와 한국의 세계화 소위 “세대차”는 미국의 이번 선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세대차는 미국과 많이 달랐다.
나이 든 많은 사람들이 너무 과거에만 집착하고 새로운 변화를 외면하는가 하면 8.15도 6.25도 말로만 들었을 뿐 지척에 있는 북한이 미국보다 더 우호적인 나라라고 믿으며 “깜짝쇼”로 오늘의 한국이 생긴 줄로 착각하는 또 하나의 세대가 있다. 이들은 한국의 근대사를 배우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으며 현재의 세계 정세에도 무감각하다. 강남이 눈부시게 발달한 한국의 상징이라고 믿는가 하면 지금 한국이 세계 1위를 목표로 잘 전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기성세대가 이들을 불신 내지 적대시하기 시작하여 가져 온 대결은 한국의 국가관과 정체성마저 흔들어 왔고 이런 현상은 몇 번의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가정과 사회의 융화와 질서를 깨뜨리고 있다. 다행히도 이런 와중에서도 한국의 기업들은 놀라운 성장을 계속하여 왔으며 “좋은 상품”을 만들어 돈을 벌면서 한국 기업의 가능성과 우수성을 계속 증명해 가고 있다.
오늘의 기업이 있기까지 6.25의 잿더미와 피눈물 가운데서 24시간 공장에서 살며 일해온 기성세대가 있었기 때문인 것은 세대를 초월하여 인정해야 한다. 한편 되풀이 할 수 없는 과거는 뒤로 하고 내일의 기업풍토와 비젼은 젊은 세대에 일임하는 지혜와 관용만이 또 하나의 “한강변의 기적”을 가져올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대차는 다만 묵과해도 되는 하나의 현상이 아니고 한국인 모두가 의식적으로 제거해야 할 암세포이다.
그러면 한국의 세계화와 더 큰 도약을 가로막는 세대차는 어떻게 없앨 것인가? 이를 없애는 첩경은 졺은 세대에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똑바로 가르쳐서 세계 속에서의 한국을 직시하게 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나라와 국민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철학”이 만들어져야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수년 전 작고) 품질관리의 대가 Edward Deming 박사는 80년대 일본에 밀려 맥을 못 추던 미국의 기업과 정부를 향해 “Deming’s 14 Points”라는 지도층을 위한 경영강령을 만들어 줬고 오늘도 그 강령이 미국기업과 세계 1류 기업들의 좌우명이 되고 있다.
그 중에 첫번 강령은 “새로운 철학을 창조하라” 이다. 묵은 철학은 없애고 새 시대에 맞는 새 철학을 만들라는 말이다. 철학의 빈곤, 사상의 빈곤이 오늘날 한국의 빈곤이고 세계화의 거침돌이라 하겠다. 새로운 철학만이 세대차를 극복할 수 있다. 세계화와 한국어, 한국학 세계 여론들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이 세종대왕의 한글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문맹률0%로 한국이 생산성, 창의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향학열이 아니고 오로지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유네스코(UNESCO)는 1989년 문맹퇴치 공로상을 세종대왕의 이름으로 명명하였고 훈민정음을 유네스코가 제정하는 “세계유산”으로 높였는가 하면 세계적 과학잡지 DISCOVER는 1994년 7월호에서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진보적이며 배우기 쉬운 글”이라고 칭찬하기도 하였다. 한국정부는 566번째 한글날을 맞아 지난 10월 24일 세종학당재단을 창설하고 65억을 들여 세계 43개국에 90개의 세종학당을 설립하여 한글과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가르칠 계획이다.
이에 편승하여 롯데마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 해외 진출 국가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다고 한다. 정부의 이런 의도는 다분히 무역증진이라는 경제효과를 노린듯하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획기적인 착상이라 하겠다.
문자가 없거나 표기법이 너무 복잡한 세계의 3천여 종족들이 소멸위기에 처한 자기네 말을 보존시키기 위해 유네스코가 한글을 표기문자로 쓰게 만들어주는 작업은 참으로 한국 언어문화의 개가라 아니할 수 없다. 프랑스 빠리에서 한글학교가 인기를 끌고 있는가 하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도 한국어 말하기 대회와 태권무(舞)로 현지인들이 한국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이미 오래 전에 중국어와 중국문화의 적극 보급에 나서고 있어 NC State 에도 Confucius Institute (공자학원)가 생겨 중국정부의 지원 아래 중국문화와 언어의 세계화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의 한인2세와 한국어 나는 트라이앵글한국학교의 12월 15일 종강식에 참석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2세들 “모두”에게 한국말과 글을 알게 하고 역사를 조금이나마 가르쳐 이 미국 땅에서 계획하지 않은 “문명의 고아들”이 되는 것을 면하게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묻게 된다. 이 큰 교포사회에서 미국학생 10명을 포함해서 겨우 100여명이 한 학기를 끝냈다. 이 자리에는 NC Arts Council 에서도 후원하는 책임자가 참석하였지만 몇몇 학부형 외에 우리 교포의 지도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각 가정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구실은 한국학교에 아이들을 왜 보내야 하는가를 잘 인식 못하는 때문이다. 학교에 와야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꼭 같은 상황에 있는 2세 친구들을 만나 “내가 미국에 사는 화성인”이 아니고 떳떳한 문화를 가진 민족의 후예라는 것을 알게 하는 그것이다. 내가 “독립된 섬”이 아니고 다른 아이들과 “역사/문화의 사슬로 엮어져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Assimilation 작업, 그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집에서는 성공하기 힘든 과제이다.
둘째는 “이리 와, 저리가, 밥 먹었니” 같은 초보 회화를 잘 한다고 해서 한국어를 터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한국말과 글의 과학적 체계를 터득하고 한국문화와 예술을 부모 아닌 “선생”을 통해 객관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한국학교에 와 보아야 알게 된다.
셋째로는 한국학교가 지향하는 높은 차원의 목표인 바 “유치한 한국어”가 아니고 수준 높은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그 작업이다. 이것은 그리 쉬운 작업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한국학교만이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지난 12월 종업식에서는 한 미국인 성인 여학생이 김소월의 시를 완전히 이해하여 감정까지 곁들여 서툰 억양으로 읊어 박수를 받았다.
이를 목격한 사람이면 우리가 우리 2세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고 있나 반성하게 된다. 정신차려 한국어와 한국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할까? 우리 2세들이 얼굴만 한국인으로 이 미국땅에서 살아간다 해도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부모의 무관심이나 나태는 하나의 큰 실수가 되기 쉽다. 나는 Harvard 대학을 졸업한 한국학생이 부모를 원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헌터스포인트 뉴욕에서 야채장사를 잘 해서 성공한 부모에게 “돈 버느라 그렇게 바쁘게 굴지 말고 나를 한국학교에 보내줬더라면” 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늦게야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언어는 무엇보다도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식들은 우리의 책임이다. 한국정부의 책임도, 미국 주정부의 책임도 아니다. 외국인들이 40분 만에 한글로 표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우리의 2세들이 말도 못하거나 소리 나는 대로 쓰지도 못 하는가?
미국에 살기 때문에 이래도 괜찮은가?
이런 질문을 심각하게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진정한 “한류”가 흘러야 하는 새해 “한류”는 한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을 모르는 세계 방방곡곡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여기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한국 문화와 한글의 샘이 한류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아무리 잘 살게 되어도, 싸이가 온 세계를 다 누벼도 한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전혀 알지 못하는 2세들에게는 아무 뜻이 없다. 그런데 자부심이 없는 2세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민역사를 가진 모든 민족들이 연구한 과학적인 결론이라 한다. 중고등학교 또는 대학에 자녀를 둔 부모들은 과연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한국을 알며 부끄럽지 않은 세계시민이 될 수 있나를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한국신문의 기사와 쉬운 소설을 읽을 정도까지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해도 너무 큰 욕심은 아닐 것이다.
독일인, 유태인, 중국인, 스패니쉬를 보면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를 알게 된다. 새해 2013년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로 우리 모두가 한류를 만들어 “미국 안의 촌티”를 벗어나야만 하겠다. 한국학교이사장이란 책임을 다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기에 나의 생각을 적었다. Why learn Korean in America?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할 필요가 없게 되어버린 세상이다.
(필자: NC State University 석좌교수, 전 재미한인학교협의회 NAKS 전국회장, 이사장, 현 트라이앵글한국학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