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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癸巳年) 새해를 맞이하며
지청룡
모처럼 원고 청탁을 받고 망설이다가 이제 흑룡의 해도 저물고 새해 계사년(癸巳年) 뱀띠 해가 밝아오니 독자 여러분들께 새해인사를 드리려는 마음으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뱀에 관한 인식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비록 서양 기독교 『성경』속 뱀은 사탄의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양 전통 민속에서 뱀은 흉물로 배척당하기 보다는 오히려 신적 존재로 신앙화 되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겨울잠을 자러 사라졌다가 봄에 다시 나타나고, 또 주기적으로 껍질을 벗는 뱀의 특징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고대 농경문화권에서 뱀은 주로 재생과 불사의 종교적 의미를 띠는 영물로 등장합니다. 특히 거북과 함께 불사와 재생,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보이는데, 이를 입증할 만한 자료들 중 압권은 역시 사진에 보이는 고구려 고분벽화 현무도(玄武圖)가 아닌가 싶습니다.
알아보기 힘들었던 네 발가락과 발톱이 그래픽으로 되살아나 있는 이 사진에서 뱀과 거북이 서로 얽힌 채 서로의 눈길을 마주치면서, 서로 어울리며 뿜어내는 신성한 기운은 고분벽화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고 보겠읍니다. 중국 초(楚)나라의 굴원(屈原)과 그 말류(末流)의 사(辭)를 모은 책《초사(楚辭)》‘원유(遠遊)편’ 보주(補注)에 현무라고 이름을 붙인 까닭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현무는 암수가 한 몸이고 거북과 뱀이 모인 것을 이른다.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현(玄)이라 하고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데기가 있으므로 무(武)라고 한다”라고 번역된다 합니다. 북쪽에 속한 물의 색이 검어서 현(玄)이라 하고 등껍데기가 있어서 공격을 막을 수 있으므로 무(武)라 한다고 부연설명 될 수도 있겠는데,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를 중심으로 쓰여진 역사서《위략(魏略)》에 그러한 기록이 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뱀과 거북이 서로 얽혀 있던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적인 현무 도상은 시대를 흐르면서 변화되어, 결국 조선 영정조시대에 와서는 거북의 몸을 휘감고 있던 뱀이 사라진 형태로 표현되고, 뱀이 빠지면서 생긴 빈자리는 거북의 머리와 서기문(瑞氣紋)으로 채워져 얼굴을 맞대고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던 뱀이 빠지면서 추상적이고 신령스러운 표현이 좀 더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바뀌어 갔다고 합니다 ?.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화원화가들의 회화양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 무기 거북선과 대한민국 국방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크루즈 미사일에도 현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것을 보면, 거북과 현무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그 뿌리가 같지않나 싶습니다.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전주작(前朱雀), 후현무(後玄武)로 일컬어지는 사수(四獸) 또는 사상(四象)의 네 방위신(方位神) 혹은 사신(四神)에게 거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수호하는 역할에 대한 기대 역시 그 뿌리는 결국 같은데서 출발하지 않았을까요? 이제 검은뱀의 해라고 하는 이 계사년(癸巳年)을 맞이하면서 현무를 통하여 등장하게 된 거북은 저 자신을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십년전 쯤 신학교에 들어간 후배로부터 알게된 바다 거북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바다 거북은 해파리를 먹고 사는데 사람들이 버린 투명 비닐 봉투가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르러 해류를 따라 다니다가 물을 머금고 떠 있으면 꼭 해파리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바다거북이 비닐 봉투를 해파리인 줄 알고 먹게 되면 거북이 뱃속에 들어간 비닐 봉투는 소화되지 않고 쌓이게 된다고 합니다. 거북은 배가 불러 먹이를 찾지 않게 되고, 그렇게 지내던 거북이는 결국 영양실조로 죽게 된다고 합니다.
바다 거북이 해파리와 투명 비닐 봉투를 분간하지 못하고 뱃 속을 쓰레기로 채우고 배고픈 줄도 몰라 결국 영양실조로 죽어간다는 이 쓸쓸한 이야기는 저에게 큰 경종이 됩니다. 인간으로서 어떠한 판단을 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해야 사방에 떠돌아다니는 투명 비닐 봉투들을 피하고 인간에게 필요한 올바른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할 수 있을까요? 컴퓨터, 인터넷, 매스컴, … , 등 점점 더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인류 문명의 변화 속에서, 바다 거북에게 해파리와 같은,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의 올바른 영양소를 제대로 분간하고 받아 들인다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신학교에 간 후배는 영혼을 튼튼하고 풍성하게 키울 양식을 제때에 고루 섭취하는지, 크고 화려하고 좋아 보이지만 실은 영혼에 독이 되기만 하는 것을 즐겨 찾지 않는 지 걱정하였습니다. 저 역시 어리석고 불쌍한 바다 거북보다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영혼의 배고픔을 절실하게 느끼고 신학교로 향했던 후배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새해를 맞이하는 이즈음에 소식 전해 봅니다. 보잘것 없는 이 글을 보아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1. 참조: 윤진영의 조선중?후기 虎圖의 유형과 도상 -기년작을 중심으로.
(필자: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물리학 교수. International Light Cone Advisory Committee Chair. 한국 물리학회 학술잡지(JKPS) 해외 편찬위원.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38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