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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보는 서로 다른 눈, 동서양 의학 차이 낳았다

서양 해부도는 근육을 자세히 묘사, 동양은 경맥•경혈 자리마다 점찍어

 

몸의 노래: 동양의 몸과 서양의 몸 구리야마 시게히사 지음|정우진•권상옥 옮김 이음|328쪽

 

우리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고대 서양의 인체 그림이나 조각품에는 수많은 근육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반면 고대 동양의 미술품 중에서 근육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작품은 없다.

 

동•서양 의학의 몸에 대한 인식도 비슷하다. 서양의학은 일찍부터 해부에 몰두했다. 당시에는 해부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질병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수많은 인체해부도가 그려졌고, 대부분 근육을 특히 자세히 묘사했다. 하지만 동양의학에는 도무지 근육의 개념 자체가 없었다. 대신 경맥(經脈)과 경혈(經穴)이 있었다.

 

우리가 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인체 그림에는 여러 개의 선이 몸 곳곳을 지나가고, 선 위에는 여러 개의 점이 찍혀 있다. 선은 맥의 흐름을 뜻하는 경맥이고, 점은 경혈, 곧 침을 놓는 자리다. 동서양의 몸에 대한 인식은 이렇듯 달랐다.

 

고대에는 그리스의 의사들도 진맥을 했다. 의사가 환자 손목 위에 손가락을 얹는 모양도 흡사했다. 맥을 짚음으로써 질병을 진단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냉정하고 합리적인 정확성, 저자의 표현으로는 '선명함'을 지향했기 때문에, 맥박에 심장이 뛰는 횟수 이상의 비밀이 숨어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었다.

 

하지만 중국의 의사들은 2000년 동안 진맥의 가치를 부여잡고 있었다. 동양의학에서 맥의 표현은 지극히 모호하다. 맥이 그득한지, 비었는지, 매끄러운지, 거친지를 살핀다고 하고,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쥐와 같은, 진주가 부드럽게 구르는 것 같은, 비에 젖은 모래와 같은, 물 위의 나무처럼 떠도는, 새의 꽁지를 건드리는 미풍과 같은, 등의 표현들을 구사한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인들에게 존재하는 화사하고 화려한 상상력 때문이며, '최고의 진실은 분명한 표현을 거부한다'는 도가적 전통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오랫동안 '사혈(瀉血, phlebotomy, bloodletting)' 요법이 번성하는 동안 중국에서는 침술이 발달했다.

 

사혈과 침술은 닮은 곳이 많다면서, 침술이 사혈에서 발전했거나 고대 그리스와 중국 사이에 유전적 친족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동서양 비교의학사 분야의 권위자인 구리야마 시게히사가 쓴 이 책은 의학의 역사를 소재로 한 철학책인 동시에, 철학적 방법으로 서술한 의학사(史)이기도 하다.

 

*사혈; 치료목적으로 혈액을 급속히 채혈하는 과정. 이것은 고대 로마나 중국 등에서 약2000년 전부터 시행되어왔고, 중세유럽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몸 안에 쌓여있는 어혈 (피 쓰레기)를 몸 밖으로 뽑아내서 만병을 사라지게 하는 사혈 요법이 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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