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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KBO* 총재
(전 국무총리, 전 서울대총장)
과연 북한 주민이 남한제체를 ‘통일의 체제’로 선택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다.
편 가르기가 일상화된 사회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선대의 업적에 버금가는 가시적인 성과가 꼭 필요하다. 경제를 발전시켜야 3대 세습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워 자신의 시대를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어야 한다. 결과로 보는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 깊게 뿌리박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남북은 70년을 서로 다른 체제와 다른 이념으로 살아왔다.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 정도로 심리적 간극은 크다.
경제력의 차이는 또 어떤가? 2013년 기준 국민총소득(명목 GNI)이 남한은 1,441조 1천억 원, 북한이 33조 8,440억 원으로 42배 차이가 난다. 이대로 두면 그 격차는 갈수록 커질 것이고 격차가 커질수록 통일비용 역시 비례해서 증가할 것이다.
그 비용의 대부분은 남한 국민의 몫이다. 경제만이 아니다. 정치, 문화, 복지 등 사회운영시스템은 통일 전과 후 북한을 주도적으로 견인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통일은 남북한 모두에게 심각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통일을 이루는 수단은 ‘평화’와 ‘전쟁’으로 크게 나뉜다. 우리가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면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독일의 통일이 서독체제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최종선택을 받아 완성되었듯이 우리의 통일도 결국 북한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과연 북한 주민이 남한제체를 ‘통일의 체제’로 선택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북한체제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지만, 오늘의 한국사회가 통일 한국의 미래냐는 질문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다. 관용과 연대보다는 차별과 배제가 우선하며 무리 지어 편 가르기가 일상화된 사회다. 균형과 공정은 무시되고 그 자리에 독점과 편법이 자리하고 있다.
공들인 경제는 활력을 잃고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는 작동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사회는 지금 매우 유동적이며 혼란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냉전 시대의 낡은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패권주의 엘리트 정치가 그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여야의 유력후보 모두가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그만큼 국민통합이 우리 사회의 절박한 과제라는 방증이다.
우려스러운 건 이러한 갈등이 정치의제를 넘어 모든 의제로 확대되고, 최근에는 세대 간 갈등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기저에 승자독식으로 인한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다. 양극화는 이미 경제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 전 영역에 구조화되고 있다.
이 양극화에 대한 교정조치를 취하지 않는 국민통합은 수사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국민통합은 통일을 추진하는데 기본조건이다. 따라서 경쟁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고, 규칙은 공정하게 적용하며, 패배자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은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야 남한체제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통일 이후의 사회혼란을 막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내가 그렇게 강조하는 동반성장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또한, 통일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남북한 간의 경제력 격차가 커질수록 남한 국민이 책임져야 하는 부담은 커진다.
우리 국민의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내면에는 이러한 통일비용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북한경제가 성장하여 남한과의 격차가 완화되는 길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남한의 협력과 지원은 필수적이다.
이것은 막대한 통일비용의 부담을 분산시키면서 북한체제의 전환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길이기도 하다. 경제는 정치체제의 변화를 추동하는 근본이다.
경제체제가 변화하면 정치체제의 변화가 따라올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사회체제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경제력 격차 해소용 남북경협은 앞에서 언급한 ‘통일기반 조성용 남북경협사업’으로 분류해 추진할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북한 김정은 세습권력은 정치.군사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안정성 확보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 경제문제가 취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추진하리라 기대하긴 힘들다. 개방보다는 여전히 체제수호를 우선할 것이다.
그러나 선대 김정일의 ‘선군’을 대체할 통치 논리의 필요성, 최근 몇 년간 플러스 성장을 하면서 얻은 자신감, 북한 내부의 불안을 우려하는 중국의 개혁개방요구 등은 경제가 김정은 체제의 최우선과제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또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선대의 업적에 버금가는 가시적인 성과가 꼭 필요하다. 경제를 발전시켜야 3대 세습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워 자신의 시대를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더불어 외부의 자본을 유치해야 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든 자본주의 시장경제든 저개발경제에서의 성장은 자본의 증가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현재 북한에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국가는 남한, 중국, 러시아 외에는 없다. 이중 러시아는 경제적 여력을 볼 때 한계가 있고, 중국도 자국의 이익이 걸린 접경지역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결국, 북한 내륙지역의 개발구까지 관심을 두고 투자할 수 있는 국가는 남한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내세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경제의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 첫 단추가 바로 5.24조치 이후 5년째 중단된 남북경제협력과 개성공단의 재가동이다.
남북한 간 경제사업을 통해, 풍부한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개발할 곳은 많은데 돈과 기술이 없는 북한으로 흘러가게 하여 남북경제를 동반성장 시키겠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KBO: Korea Baseball Organization.
<다음호에는 “남북경제 동반성장과 통일” 이야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