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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 동반성장에 대한 오해와 이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전 국무총리, 전 서울대 총장, 현 KBO 총재


모두가 함께 잘살자는 의미의 동반성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의 공통된 바람이자 요구였다. 언제부턴가 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동반성장’이라는 용어도 사실 알고 보면 노무현 정부의 ‘상생협력’과 이명박 정부의 ‘공생발전’과 그 취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이름이 왜 이렇게 자주 바뀌느냐”라고 투덜대는 것도 이미 그것들이 같은 의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데 있다.

동반성장이라고 하면 흔히들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래서 부자들은 “왜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하냐!” 반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가 거지냐! 그냥 내가 일한 만큼만 정당하게 달라!”라고 화를 낸다. 하지만 그것은 동반성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오해’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같이 성장하자’는 뜻이다. 즉 ‘더불어’ 살기 위해 네 것을 좀 줄여서 나한테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자’는 것이다. 일정하게 정해진 파이를 두고 한쪽이 더 가짐으로써 다른 한쪽이 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파이를 더 크게 하고 분배도 공정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가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분배도 공정하게 해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살자는 것이 동반성장이다.

나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후 대통령을 찾아가 동반성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다행히도 대통령은 동반성장 정착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나와 상당한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대통령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첫째 임무여야 할 청와대 핵심 관료들은 동반성장에 대해 처음부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 중 일부는 재벌의 크고 작은 도움으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기에 굳이 재벌에게 밉보일 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재벌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잘 알기에 일부에서는 동반성장은 아예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동반성장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재벌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니 아예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력과 예산 측면에서 실질적 도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지식경제부는 동반성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반성장위원회는 인력도 예산도 턱없이 모자랐고 위원회의 활동은 사사건건 발목이 잡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큰 뜻을 품고 나선 길이니만큼 첫걸음이 쉽지 않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었다. 동반성장의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동반성장 문화의 중요성과 공감대 확산이 동반성장위원회의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나는 예산과 인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온 힘을 다했다.

내가 동반성장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은 후 사람들에게 전한 동반성장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동반성장을 통한 위기관리다. 현재 우리나라는 빈부 격차를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한국사회 전체가 붕괴될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이 위험은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못지않은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두 번째는 성장이다. 단순히 양극화를 없애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필수다. 한국경제는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다. 그런데 밝은 면을 더 밝게 하고 어두운 면을 덜 어둡게 하려면 성장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역사상 일곱 나라밖에 없다는 50-20클럽*에 포함됨 정도로 대단한 저력을 지닌 나라다. 이러한 저력을 지속해서 펼쳐가기 위해서는 성장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기적으로는 연구개발Research and Development R&D의 방향을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육의 변화를 통한 창의성 향상으로 첨단핵심기술 개발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모두 상당한 시간이 있어야 하기에 당장 발등의 불을 끌 수 있는 단기적 전략을 함께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다.

지금 대기업은 돈은 있되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투자가 주춤한 상태다. 반면 중소기업은 투자 대상은 있지만 돈이 없어 투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불균형을 단기간에 없애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것이 바로 동반성장이다.

세 번째로 동반성장은 우리의 정서와 맞는다. 제아무리 옳고 좋은 것이라도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으면 거부감부터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동반성장은 더불어 살기를 바라던 우리 사회의 오랜 정서와도 잘 맞는다. 우리 조상은 오래전부터 향약과 두레 등을 통해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함께 성장해왔다. 과거 부자 중엔 경주 최부잣집처럼 자신의 부를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웃과 나누던 존경받는 부자도 적지 않았다.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곳간을 활짝 열어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그렇게 퍼줬는데로 최 부자 가문이 망하기는 커녕 400년을 존경받으며 지탱해 왔다.

동반성장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 인류의 정서와도 잘 맞는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와 같이 나눔을 실천하며 모범적인 삶을 사는 세계적인 갑부들도 있고, 심지어 나눌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아프리카에서조차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전해질 만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임무는 이러한 동반성장의 가치를 널리 알리며 동반성장 문화를 조성하고 확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동반성장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실질적인 방안들에 대해서도 궁리했다. 그 결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 방안으로 다음 세 가지를 내 놓았다.

첫째, ‘협력이익배분제’다. 대기업이거두고 있는 초과이익의 일정 부분을 협력중소기업의 성장기반을 강화하는 데 활용하자는 것이다. 애초에 이 명칭은 ‘초과이익공유제’라고 했는데 우여곡절을 겪으며 협력이익배분제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다. 1970년 도입되어 2006년 없어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 참여 확대를 금지하는 업종을 선정함으로써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으로 중소기업은 제품 개발이나 품질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관해서 시뮬레이션해보니 머지않아 10조 원에 가까운 큰돈이 중소기업의 매출로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정부 발주의 중소기업 중심화’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서 물자를 발주할 때 대기업에 발주하면 대기업이 다시 중소기업에 아래도급을 주는 시스템으로 정부발주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중간에서 중간이유만 챙기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몇 퍼센트 이상, 예컨대 80퍼센트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로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소기업이 현재 겪고 있는 ‘투자 대상은 있지만 돈이 없는 상황’이 많이 개선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계획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영화 속 파라다이스에 불과하다. 현실을 개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크고 거창한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은 실천이다. 단테가 ‘하나의 작은 불씨가 큰 불꽃을 만든다’고 말한 것처럼 미래의 커다란 행복을 위해 지금 우리는 작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불꽃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천을 확장해나가고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진정한 변화의 물꼬를 터보자는 차원에서 앞서 말한 세 가지 대표적인 실천 방안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방안들이 현실에서 더 많이 실천되게 하려고 대기업의 동반성장 노력을 측정하는 수단, 즉 동반성장지수를 만들어 평가를 해보자고 나섰다.

이러한 대기업의 동반성장노력을 측정하여 평가함으로써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지 나쁜 기업인지를 알리는 수단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은 소비자, 아니 국민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 함께 더불어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기업은 설 자리가 없음을 온 국민이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 50-20클럽은 인구 5,000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의 기준을 동시에 충족한 나라를 뜻한다.

*KBO: 한국야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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